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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A 중보기도 운동 대표 강순영 대표(목사)가 디트로이트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거짓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목사라는 호칭이 적합하지 못하므로 '강순영 목사'라고 호칭하지 않고 '강순영 대표'로만 호칭함을 양해바랍니다). 미시간에서 JAMA 중보기도 컨퍼런스를 열었던 강순영 대표가 자신의 비성경적인 중보기도 사상을 비판한 나에 대한 반박의 글을 썼던 모양이다. 오늘 어떤 분이 강순영 대표의 글을 나에게 포워드하여 주시어, 그의 반박의 글이 나만 빼고 다른 모든 미시간의 목회자들에게 이미 오래전에 발송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강순영 대표는 아직도 자신의 비성경적인 중보기도 사상에 대해 반성하거나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강순영 대표의 반박의 글에서 나타난 주요 주장을 열거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1. 강순영 대표는 피터 와그너의 이단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강순영 대표사는 자신이 억울하게 피터 와그너 이단신학교를 졸업했다고 오도되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이철 목사님의 글에 강순영목사가 피터 와그너의 이단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하시며, 신사도 이단사상에 물들어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신학교 강의를 한 강좌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JAMA 집회에 피터 와그너박사나 채안 목사를 강사를 초청한 적도 없고, 각 지역의 존경받고 기도 많이 하는 건전한 목사님을 항상 강사로 모셔왔습니다 ... (중략) 차세대들의 신앙전수와 차세대 지도자들을 훈련하기에 전신전력하는 단체의 대표로 섬기는 공인을 허위사실로 모함하는 것 계속 그러신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강순영 대표)


현재 미시간 교협의 회장 배헌석 목사(앤아버 소망교회, JAMA 중보기도 강사)의 주선으로 수년 전 강순영 목사와 그의 부인, 그리고 나와 다른 한 두 사람이 만나 식사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신학교에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 강순영 목사 부인(목사)이 그 학교에 다닌다는 내용을 내가 잘못들었던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사과드리며,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고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나는 거짓 사도 피터 와그너, 채안 등이 JAMA의 중보기도 컨퍼런스의 강사로 초빙되었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 강순영 대표도 다른 사람의 오해를 유발시키는 말을 하면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더 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강순영 대표의 신앙에 대해 더욱 더 심각한 신앙의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강순영 대표는 변명의 글에서 스스로 피터 와그너 신학교를 ‘이단신학교’라고 언급하며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단 신사도사상과 자신은 전혀 관련없는 것처럼 말했다. 피터 와그너 신학교가 이단신학교라는 그 말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학교에서는 성령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과 하나님의 말씀을 즉석에서 얻어내는 ‘예언’ 등의 매우 비성경적인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강순영 대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싶다.


“부인이 그런 이단신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남편 강순영 목사는 부인의 신앙을 어떻게 지도했는가?

“과연 지금 강순영 목사의 부인은 피터 와그너 이단 신학교에서 배운 비성경적인 사상들과 완전히 결별하였는가?”

“만일 부인이 피터 와그너의 이단 사상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다면, 이단에 빠진 부인과 함께 다른 교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도운동을 벌이고 다니는 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가?”
 


2. 딤전 2:1,2절에 '중보기도'하라고 기술되어 있다?


강순영 대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성경에 중보기도를 가르치는 내용이 있다고 하였다.


“성경에 어디에도 중보기도 하라는 가르침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 2:1-2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 도고라고 번역된 말씀이 NIV에 ‘intercession’하라고 했고, 새 번역, 쉬운성경, 우리 말 성경, 한글 킹제임스번역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와 간구와 중보기도와 감사기도를 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라는 강력한 분부입니다.”(강순영 대표)


강순영 대표는 단지 영어 번역들과 한글 번역들을 가지고 성경이 중보기도 사상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성경의 전반적 가르침을 이해하였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매우 아쉽다. 성경 원어와 라틴어, 불어 성경,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대해 정통한 조직신학자 서철원 교수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주해하여 주신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신약 성경은 중보기도를 가르치지 않는다. 


  


"딤전 2:1에 기도의 종류들이 나와 있습니다. δεήσεις(데에세스, petitons), προσευχὰς(프로슈하스, prayers), ἐντεύξεις(엔튝시스, intercessions), εὐχαριστίας(유아스티아스, thanksgivings). 첫 번째 '데에세스'는 간청 혹은 간절한 부탁이고, 두 번째 '프로슈하스'(단수로는 프로슈헤)는 그냥 통상 기도를 나타내고, 세 번째 '엔튝세스'(단수로는 엔튝시스)는 ‘청원’, ‘탄원’, ‘기원’이고, 마지막 ‘유하시스티아스’(단수로는 유하리스티아)는 ‘감사’, ‘감사함’입니다.


그러면 ‘엔튝시스’는 ‘청원’, ‘탄원’, ‘기원’이지 ‘도고’가 아닙니다. ‘도고’로 전혀 번역할 수 없는 단어이지요. 칼빈도 이 구절을 주석하기를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였지, 도고는 전혀 아닙니다. 단지 라틴어 번역에 그렇게 intercession 으로 옮겨진 것이 있다고 하였을 뿐입니다.


주석의 왕자라고 할 벵겔은 그냥 ‘재난의 방지를 위해서 하는 기도’라고 주석하였어요. 화란의 주석가인 바우마는 그냥 ‘부름’, ‘기원’으로 주석하였어요. ICC 주석 중 딤전 2:1은 단지 ‘왕에게 내는 청원’으로 쓰인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 내는 ‘청원’이지 ‘도고’는 전혀 없어요. 라틴어로 ‘intercessio’라고 한다고 하였지만, 불가타 성경에는 그냥 ‘청원’을 나타내는 단어인 ‘postulationes’(1Ti 2:1 VUL)라고만 썼어요. 결론은 ‘엔튝시스’는 ‘청원’이지 결코 ‘도고’가 아닙니다.”(서철원 박사, 조직신학, 전 총신신대원장) 


서철원 박사의 주해에 의하면 현재 우리말 성경의 '도고'라는 번역도 바르지 않으니 '청원'  또는 '탄원', '기원' 정도로 다시 번역하는 것이 옳다. 

 

3. 신약의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이므로 중보기도할 수 있다?


또한 강순영 대표는 다음과 말하면서 신약의 신자들이 중보기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리가 중보기도의 자격이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중보기도의 자격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왕 같은 제사장의 자격’이 주어졌고 역대하 7:14에 보면, 국가적인 재난이 임할 때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이 시대를 위한 제사장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를 하지 않으면 누가 이 시대를 위해 중보기도한다는 말입니까?”(강순영 대표)


벧전 2:9절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은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죄 사함받은 인간 사이의 담을 제거하셨으므로, 이제 누구나 하나님 앞에 직접, 언제든지 나아가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음을 말하는 내용일 뿐이다. 이 말씀을 신약의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과 하나님 사이로 들어가서 특별하게 권세있게 기도를 한다는 중보기도 사상의 근거로 써먹으려고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다.
 


4. 누가 사도 바울과 중보기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두가 다 이단이라고 했는가?


또한 강순영 목사는 다음과 같은 어디없는 넉두리를 늘어놓으며 중요한 본질을 흐렸다.


“사도 바울도 곳곳에서 자신을 위해 우리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고, 아브라함도, 모세도, 사무엘도, 이사야도, 에스더도, 다니엘도, 사도 바울도 모두 중보기도의 사람들이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쓴다고 이단이라고 한다면, 중보기도하라고 부탁한 사도 바울도 이단이고 세계의 많은 교회에서 중보기도라는 말을 쓰고 중보기도팀을 가동하는 교회들이 모두 이단이라는 말인지 묻고 싶습니다.”(강순영 대표)


매우 어이없는 말들이다. 나는 강순영 목사에게 오히려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싶다.


1)대체 사도 바울이 성경 어디에서 중보기를 가르쳤고, 언제 자신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라고 부탁하였는는 말해주기 바란다. 바울은 단지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말(기도)하라고 하였고, 자신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말(기도)한다고 하였을 뿐이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중보기도 개념이 사도 바울의 글에서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나는 강순영 대표에게 찾아가서 맛있는 밥이라도 사줄 것이다. 찾아서 보내주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의 말씀들을 통해 바울의 기도 사상을 느껴보기 바란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 15:30)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살전 1:2)


바울의 기도 사상에는 조금도 중보의 개념이 없었다. 바울은 언제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풍성하게 주어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면서 힘써 기도와 간구를 올렸고, 그때 다른 성도들과 교회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말(기도)하고 빌었을 뿐이다.


  

2)내가 언제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쓴다고 누구를 이단이라 하였는지 말해보기 바란다. 나는 올바르게 기도하면서도 중보기도라는 그릇된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강순영 대표처럼 이단적인 중보기도 사상을 가지고 기도운동을 벌이는 사람을 구분하였다. 강순영 대표의 이단적인 기도사상을 다시 한번 지적하라고 한다면, 강순영 대표가 이전의 다른 곳에서 가르쳤던 다음의 말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중보(Intercession)란 between을 의미하는 inter와 go를 의미하는 라틴어 Cedere에서 파생한 cession이 합해진 말로 사이가 나쁜 사람을 서로 화해시키거나 어떤 약속을 확증(Confirm)시키기 위해 어떤 자격있는 자가 중간에 끼어드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중보기도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강순영 대표)


하나님이 과연 누구에게 다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 자격을 주었을까? 그 자격이란 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강순영 대표는 말해보라! 성경은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요청하고 확증시킬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말씀한다. 그런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분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의 구세주이다. 강순영 대표는 명백하게 이단사상을 가진 자신의 심각성을 감추기 위해 단지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다른 많은 일반인들과 자신을 하나로 묶으려는 얕은 꾀를 부리지 않기 바란다. 다음의 말씀을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3)강순영 대표는 짐승의 피를 뿌리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이끌어 냈던 구약의 인간 중보자 모세와 같은 중보자의 반열에 있는 사람일까? 모세는 출애굽 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백성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짐승의 피를 뿌리며 시내안 언약을 이끌어 낸 인간 중보자였다. 중보기도 운동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사무엘 등의 다른 구약의 사람들도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중보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중보기도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언제 그들의 중보기도에 대해 시비걸기라도 했는가? 왜 내가 모세 등의 구약의 중보자들에게 이단시비를 걸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하는가?


최종적 중보자(선지자, 왕,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중보의 피로 영원한 ‘새 언약’(눅 22:20)이 이루어졌다. 그리스도를 대리했던 구약의 모든 인간 중보자들의 중보사역이 십자가의 중보의 피로 완성되었고, 이후로는 더 이상의 인간의 중보사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는 중보기도에 대한 명령이나 가르침이 전혀 없다. 그런데 왜 강순영 목사는 계속 중보기도 사상을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인가?


대체 내가 언제 단지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쓴다고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기라도 했으면 말해보기 바란다. 내가 지적하는 문제는 강순영 대표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앞으로 특별하게 끼어들어가는 거짓된 중보기도 사상이다. 물론 중보기도라는 용어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근절되는 매우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하였던 일을 볼때, JAMA 중보기도 컨퍼런스의 강순영 대표가 이리하고도 이단의 반열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교회들이 이미 복음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강순영 대표를 통해 성경에 없는 새로운 기도의 신앙을 교회들에게 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강순영 대표는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 사도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없는 중보기도의 은사와 직분을 스스로 만들어 전 세계적인 중보기도 운동을 전개한 피터 와그너의 이단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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