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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철 장로의 새 책「알고싶어요 성령님」이 나왔다. 손기철 장로의 책들과 집회는 그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주장을 펼칠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손 장로가 가장 강조했던 것은 ‘기름부음’이었다. 그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기름부음은 성령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2)기름부음은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3)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4)기름부음 때문에 쓰러짐, 괴상한 방언도미노, 방언찬양, 몸의 떨림, 귀신의 발작 ... 등이 나타난다.


예수도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런데 기름부음에 대한 손 장로의 주장에는 성경의 근거는 없다. 그간 수없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또 반복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신(성령)의 임하심’, ‘직분이 주어짐’ 등의 의미에서 실제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병자에게 기도할 때에나 기름(약 5:14)을 부으라고 하셨다. 구약과 같은 의미에서 기름을 부으라는 말씀이 전혀 없다.


“주의 성령이 내게(예수)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부으시고 ...”(눅 4:18)


손기철 장로는 누가복음 4:18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도 실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기름부으심」, 7 페이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요단강 세례시에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도 기름부음을 받은 이후에 능력으로 충만해졌으니 우리도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 라고 이론을 전개한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눅 4:1,14절)을 통하여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충만하셨고, 뒤이어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기름부으심」, 19 페이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과 함께 계셨고, 시종일관 거룩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태어나 성령으로 중생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되는 우리들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중대한 오류에서 나오는 말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도 다시 특별하게 성령을 받으심으로 영적으로 완전해진다는 그릇된 사상이다. 성령이 이중, 삼중으로 임재하고, 두 번째 이후에 임하시는 성령을 기름부음, 성령세례, 성령체험, 성령충만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그와 같은 도식에 가두어서 억지를 부린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요한이 스스로 예수에게 세례 베푸는 행위가 합당치 못하다 여기고 만류하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그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에게 임하셨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성 삼위 하나님의 협력 하에, 예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먼저 온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메시야 사역이 출범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예수가 기름부음(성령세례)을 받아 권능을 가지게 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은 정말 그릇되었다.


그러면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예수에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는 장면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왜 성경은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인가? 구약의 기름부음의 의미를 모두 성취하신 메시야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으므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는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왕, 제사장, 선지자 직분을 완성하시는 메시야로 오셨다. 그래서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가 승천하신 후에는 기능적으로 예수를 대신하는 성령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임하셨다. 그래서 우리들도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사도들이 성경에 표현하였다. 성령받음이 곧 우리에게 임하는 기름부음이다. 결코 이 외에 달리 해야 할 말이 없다.


손 장로의 기름부음 주장은 이단적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이미 성령받고 중생한 사람들이 별도의 기름부음을 받을 일이 없다. 중생한 이후에 임하는 기름부음이 따로 있고, 그것을 받는 양과 횟수에 따라서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괴상한 방언들, 쓰러짐, 방언찬양, 떨림 ... 등의 괴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손기철 장로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그의 주장은 정확하게 신사도 운동의 anointing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단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손기철 장로의 책들은 마땅히 수거되어 폐기처분되어야 하고, 그의 집회에는 사람들이 가지 못하도록 경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들이 아직까지 손기철 장로에 대해 너무나도 관대하다.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인간의 행위와 노력으로 가능한 자연적인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210 페이지)


“기름부으심이 없이는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고 주의 뜻을 이를 수 없습니다.”(211페이지)


“기름부으심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더 큰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219 페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신선한 기름부으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 쪽에서도 훈련이 필요합니다.”(222 페이지)


위 내용은 손 장로의 새 책「알고싶어요 성령님」에서도 여전히 발견되는 기름부음에 대한 가르침과 주장들이다. 아직도 손기철 장로의 책은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관심받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비성경적인 사상을 전하는 손기철 장로를 방치하여 둘 것인가? 어찌하여 계속 책으로, 집회로 영향을 미치도록 그냥 두는 것인가? 손기철 장로 본인과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서 어떤 분명한 조취가 취해져야 할 때이다.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


새로운 책「알고싶어요 성령님」에서 손기철 장로는 다른 책에 비하여 ‘성령체험’이라는 개념을 더욱 강조했다. 2장에서만 ‘성령체험’이라는 말이 약 41회나 등장하였다. 대체 손기철 장로는 무엇을 성령체험이라고 하는 것일까? ‘성령체험’이라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 개념일까? 이전의 책들과 새로운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손기철 장로의 성령론을 요약해 보았다.


1) ‘성령세례’는 일생에 단 한번이다.

손기철 장로는 성령세례는 일생에 단 한번이라고 하였다. 예수 믿어서 중생할 때에 성령세례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성령의 감동함 없이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 즉,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48 페이지)


“성령세례는 한번만 받는 것인데 기름부으심도 한번 받는 것인지 아니면 여러 번 받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입니다.”(「기름부으심」, 28 페이지)


2)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충만’과 ‘기름부으심’이 일어난다.

성령충만은 ‘영육이 온전히 성령님께 사로잡혀서 그 분을 통해 삶의 인도함을 받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기름부으심은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의 인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의 상태’라고 손기철 장로는 주장한다.(「기름부으심」, 28 페이지)


3)오순절 운동이 성령세례라고 말하는 것을 손기철 장로는 ‘성령체험’이라고 한다.

손 장로는 예수 믿어 성령받아 중생하는 것이 (개혁주의에서는) 성령세례이고, 중생 이후 다시 나타나는 성령의 두 번째 임재를 오순절 운동에서는 ‘성령세례’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성령체험’라고 부르겠다고 한다. 손 장로는 성령체험이 성령이 또 다시 반복적으로 위로부터 임하여 혼과 육을 사로잡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저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성령세례로, 오순절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를 ‘성령체험’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성령체험(성령의 임하심, 성령강림)외부로부터 성령의 임하심으로, 그 혼과 육이 성령님께 사로잡히는 체험을 말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2 페이지)


성령이 임하여 영과 육을 사로잡을 때 쓰러짐, 이상한 방언현상, 성령춤, 방언찬양, 몸의 진동, 축사 등의 특이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비한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고 악한 영의 장난이라고 매도하고 있다고 우려하였다.


“성령님이 임하실 때 몸을 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기침하거나 우는 일들을 보며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성령님이 우리의 혼과 육에 임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면 또는 그 결과로 우리 육신 안에 있던 악한 영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45 페이지)


손 장로의 주장은 명백한 신사도 이단사상


여기까지는 상당히 오순절 교회의 신앙과 유사하다. 그래서 더 이상 안 나가면 이단시비가 일어날지라도 세계 교회의 1/4을 차지하는 오순절 교회들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므로 걱정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임하는 성령을 ‘기름부음’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는 신사도 운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먼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기름부음이 일어난다고도 주장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인 자충수이다. 이것이 신사도 운동의 악마적인 ‘인카운터’, ‘임파테이션’ 사상이다.


지금 인카운터와 임파테이션 현상이 한국 교회 깊숙이 들어가 있다. ‘G-12’, ‘두날개’, 그리고 각 종의 ‘셀사역’ 등은 결국 인위적인 ‘하나님 체험’을 유발시킨다. 교인들을 잘 선동하고 교육하여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으게 한다. G-12 등의 소그룹 시스탬에 훈련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방식은 장난이 아니다. 엄청 잘 모은다. 그러나 결국 그 영혼들은 기름부음(?)의 희생제물이 되어 버린다. 기도, 전도, 찬양, 축제적인 예배 ... 이런 것이 결국 기름부음이라고 미화되는 귀신체험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지금 사탄이 이러한 방식으로 한국 교회를 유린하고 있다. 그런 거짓된 사역에 헌신된 사람들은 손기철 장로의 주장을 매우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신사도 운동의 영을 가졌기 때문이다. 손 장로가


얼마나 무서운 주장을 하는지 다음의 말을 직접 보기 바란다.


“오순절 성령감림 이 후로 성령님은 자녀들의 초청에 따라 언제든지 위로부터 임하십니다. 성령체험은 바로 그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본서에서는 성령체험이라는 용어를 ‘성령강림의 체험’이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의 안수를 통한 성령의 임하심’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오순절 날 이후에도 성령은 위로부터 임하셨습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52 페이지)


손 장로의 ‘성령체험’ 주장의 근거는 완전허위


무슨 이론이건 성경에서 근거가 나와야 한다.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면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다. 성경을 근거하여 이야기해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면 그 역시 개인적인 주장일 뿐이다. 손 장로는 이미 성령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성령이 위로부터 강림하여, 또는 먼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의 안수를 통하여 임하여 영과 육을 사로잡는 성령체험이 일어난다는 근거를 예수의 제자들에게서 찾았다.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먼저 성령을 받았고,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또 다시 강림하는 성령을 체험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도망쳤고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고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 19-22).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라 하실 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님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임하시어 영원히 함께 하시는 성령님입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27-28 페이지).


손 장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다고 한다. 이때가 구약의 초실절 날이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신 오순절은 이때부터 50일 이후였다. 그러므로 손 장로의 주장에 의하면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 50일 전에 먼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초신자 시절부터 성경의 이 부분을 손 장로처럼 이해하지 않았다. 신학을 공부하고 개혁주의, 오순절, 웨슬리안 ... 이런 용어와 사상을 알기 전부터 손 장로처럼 예수께서 내 쉬는 숨 속에 성령이 섞여 있었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넘어갔다.


문제는 우리 성경이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라고 번역한 것이다. 우리 성경은 영락없이 예수께서 숨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실 때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참에 헬라어에 정통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나에게 도움을 주신 이상훈 목사님은 서울대학에서 12년간 헬라어를 강의하셨고, 미국 침례교단에서 목회하시다가 최근에 은퇴하신 분이다. 나는 손기철 장로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로부터 성령을 먼저 받았고, 다시 50일 후 오순절 날에 성령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다시 확인하였다.


이상훈 목사님은 매우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그러나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자 한다. 우리 말 성경에 ‘저희를 향하사’(on them)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성경원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우리 성경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기 직전 숨을 밖으로 내 쉰 것으로 기술되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다시 번역하면 그때 예수께서는 ‘숨을 안으로 들이쉬셨다’로 번역되어야 하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라는 내용도 ‘성령을 모셔 들일 준비를 하라’라고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즉,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약 50일 후 오순절에 있을 성령강림을 준비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절대로 그때 입으로 성령을 불어넣으신 것이 아니다. 이상훈 목사님께서 주해하여 주신 내용을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다.


“희랍어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And having said this(v.21), He breathed in and says (historical present) to them: “Receive (the) Holy spirit.” 그리고 이 말씀(21절)을 하신 후 그는 숨을 들이쉬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을 모셔 들이라’고 말씀하셨다(역사적 현재).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 쉬며’(He breathed on them)라는 구는 동사 ‘에네휘세센’(ἐνεφύσησεν)을 번역한 것이다. ‘저희를 향하사’(on them)라는 말은 원문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J. B. Rotherham 은 이것을 ‘he breathed strongly’로 번역을 시도한 것 같다. (The Emphasized New Testament: A New Translation). ‘에네휘세센’은 동사 ‘엠휘사오’(ἐμφυσάω)의 부정과거 단수 3인칭 직설법이다.


이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요 20:22) 한번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신약 희랍어 사전에는 영어 성경 번역대로 ‘breathe upon’만 나온다. 그러나 Liddel & Scott의 Greek English Lexion(고전 희랍어 사전)에는 ‘to breathe in or into; breathe upon’등의 뜻이 기록되어있다. ‘엔휘사오’의 기본적 뜻은 ‘to breathe in’이다. Liddel & Scott 사전에는 또 ‘에크휘사오’(ἐκφυσάω)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그 뜻은 ‘to blow or breathe out’(숨을 내쉬다)이다. 이 단어도 신약성경에는 없는 동사이다. ‘엠휘사오’(ἐμφυσάω)가 ‘breathe into’로 번역되는 경우를 70인 역 구약성경(LXX)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 2:7 ‘...καὶ ἐνεφύσησεν εἰs τὸ πρόσωπον αὐτοῦ πνοὴν ζωῆs,’ (...and He breathed into his face [nostrils] the breath of life). ‘에네휘세센’(ἐνεφύσησεν) 뒤에 ‘에이스’(εἰs, into)라는 전치사가 뒤 따라왔기에 ‘He breathed into ...’가 된 것이다.”


“‘성령을 받으라’(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 Receive the Holy Spirit). ‘받으라’라는 ‘라베테’(λάβετε)는 동사 ‘람바노’(λαμβάνω)의 ingressive aorist(起動相의 부정과거)명령이다. (참조, Herschell H. Hobbs. An Exposition of the Four Gospels, 1968. pp. 284-286). 따라서 ‘λάβετε πνεῦμα ἅγιον’은 ‘Begin to receive the Holy Spirit’(성령을 모시기 시작하라)를 뜻한다. 그러므로 ‘Be ready to receive the Holy Spirit.’(성령을 모셔 들일 [또는 영접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성령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라’는 표현은 합당치 않다. 요 19:6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에서의 ‘너희가 친히 그를 데려다가’라는 표현은 ‘λάβετε αὐτόν ύμεῑs’(Take Him yourselves)로서 22절의 것과 동일한 명령법이다. 주후 30년 오순절 날 강림하실 성령님을 영접할 준비를 시작 하라는 것이 요한복음 20:22의 취지이다.”


헬라어 전문가이신 이상훈 목사님의 주해에 의하면 이때 성령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50일 후에 있을 중대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신이 떠나신 후 성령이 오실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숨을 내 쉬셨다. 이는 죽으셨던 예수께서 다시 사신 육체를 가지고서 제자들에게 오셨음을 증거하기 위한 특별한 의도가 있는 내용일 것이다. 즉, 부활하여 다시 숨 쉬는 육체를 가진 상태로 오신 예수께서 자신의 죽으심에 근거하여 오실 성령을 모시어 들일 준비를 하라고 하신 것이다. 애매하게 번역되어 오해를 유발시키는 단 한 절을 가지고서 성령받은 성도에게 다시 강림하여 ‘성령체험’을 일으키시는 성령론을 전개하는 손기철 장로의 용기는 매우 가상하다. 그러나 그 여파로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혼돈이 생긴다.


오순절 날에 오신 신약의 성령


사실 이렇게 헬라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오순절 이전에 신약의 성령을 받은 사람이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성경이 진리를 스스로 증거하신다. 신약의 성령이 오순절 이전에는 오시지 않았음을 성경이 스스로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예수께서는 아직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실 성령에 관하여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지상을 떠나 승천하셔야만 성령이 오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제자들을 떠나가신 것이 아니고 돌아오신 것이다. 어떻게 그날 성령이 오셨겠는가? 신약의 성령은 예수가 승천하신 후에 오셨다. 그 전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신 성령은 동일한 제 3의 성령이시나, 예수의 영으로 오신 분이 아니고 구약 시대부터 지상에서 역사하신 성령이다. 본질적으로는 같으나 기능적으로 전혀 다른 성령이시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신약 교회를 세우는 성령을 예수께서 결코 단독으로 세상에 보내실 수가 없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셨다. 보내시는 주체는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이다. 성령을 지상의 교회와 제자들에게 보내시기로 최종 결정하시는 분은 성부이시다. 성부가 성령을 지상의 제자들에게 보내시는 근거는 예수의 피였다. 예수의 피로서 죄 씻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다. 구약의 이 말씀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


이 핵심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이해하여야 엉뚱한 소리를 못한다. 손기철 장로는 이러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신약의 성령이 사도행전의 오순절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였다고 가르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미 성령 받은 제자들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다시 임하셔서 성령의 권능을 충만하게 하셨으니, 이제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다시 성령을 또 받아 권능으로 무장되는 성령체험을 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손기철 장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은 최초의 오순절일 뿐이고, 그 이후에 오순절이 개인적으로 반복된다고 가르친다. 참으로 큰일을 기어이 내시려는 모양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단회적 사건으로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성령님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최초 강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지 일회적이어서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알고싶어요 성령님」, 35 페이지)


구약의 오순절을 성취한 사도행전의 오순절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지상 교회를 수립하시기 위해 제 3의 하나님이신 성령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의 공로에 근거하여, 예수를 대신하여,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시면서 교회에 임하신 단회적인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구약의 명절 오순절의 의미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구약의 명절인 유월절과 무교절, 초실절, 그리고 오순절의 의미를 알고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을 살펴보아야 한다. 7일 동안의 무교절 명절의 첫날인 유월절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죽은 양을 기념하는 날이다(출 12:1-28). 양이 죽어 그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설주의 뿌려짐으로 모든 장자들이 구원받았다. 이날 예수께서 잡히시고 

다음 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제물로 죽으심이다.


무교절 기간에는 반드시 한 번의 안식일이 들어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이 초실절이다. 이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막 익은 보리 단 한을 추수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레 23:9-14). 왜 보리를 대량으로 추수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처음 여름이 든 보리 한 단이었을까? 부활의 첫 열매로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부활하셨다. 초실절의 하나님께 바쳐진 처음 익은 보리 한단은 곧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20) 예수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십일이 지나면 오순절이다.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나가므로 오순절은 다른 말로 칠칠절이라고도 하였다(신 16:9,10). 오순절은 들판의 모든 보리가 무르익어 본격적으로 추수하게 되어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기 위해 하루를 구별하여 지키는 절기였다. 오순절에는 누룩이 들어간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바쳤다. 누룩과 떡 두덩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합당한 해석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드려진다는 것이다. 보리를 본격적으로 추수하여 곳간에 들이듯이,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모두에게 구별없이 예수의 피에 근거하여 성령이 임하심으로 천국 곳간에 알곡 영혼들이 추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순절까지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구약의 명절들을 통하여 이미 계시된 대로 예수께서 죽으시고 그 공로에 근거하여 성령이 오셔서 종말의 천국추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은 구약 시대 동안 내내 지키던 오순절 명절의 의미를 다 성취한 날이다. 절대로 오순절이 시대마다 개인적으로 반복된다고 할 일이 아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혼란과 오해가 시작될 뿐이다. 그러나 손 장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이전에도 같은 성령이 지상에서 역사하셨고,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다시 임하여 권능과 성령체험을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순절의 역사는 이후로도 계속 반복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윌이엄 세이모어라고 하는 변질된 사람에 의해서 나타난 아주사 부흥이라는 것의 실상이었다. 그는 오순절이 개인적으로 반복된다고 했고, 성경과는 상관없는 거짓 방언현상에 놀아나면서도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다시 나타났다고 설교했다. 방언을 통역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직통예언이 된다고 가르쳤다. 쓰러짐, 동물소리, 웃음, 바닥에 구르기, 영서, 소리지름 ... 이러한 현상을 그의 집회에서 넘쳤다. 그래서 그의 스승이었고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찰스 펄햄은 ‘영적인 매춘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중지하라 요구했지만, 세이모어와 사람들은 그를 왕따시켜 스스로 떠나게 만들어 버렸다. 그 뒤로 펄햄과 세이모어는 화해하지 못했고, 다시 보지 못하고 죽었다.


손기철 장로도 동일한 오순절의 반복과 동일한 것들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개인적으로 되풀이되는 현상인 ‘기름부음’(성령체험)을 더 받고 싶고 항상 성령체험에 대해 배고프고 굶주리면서 산다고 고백하였다. 정말로 크게 변질된 성령론이다.


“성령세례는 물세례와 마찬가지로 한 번만 받지만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넓고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여러 번 받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더 큰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기름부으심」, 28 페이지)


성령이 아닌 삼위일체의 기독교


손기철 장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성령을 잘 모른다. 아마 처음부터 성령을 가장하는 다른 영과 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성령을 기독교의 울타리 밖에서 이해하면서 사모하였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하심으로 성령이 임하실 길을 여셨다. 그리고 성령은 우매한 우리 마음에 조명하시어 예수를 알고 믿게 하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시고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 예수께서는 오실 성령이 하시는 중심적인 사역이 자신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하나님은 오직 예수를 통하여 오는 사람들만 자녀로 삼으로 영원한 교제를 나누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기독교의 중심은 우리에게 구주 예수를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도록 깨우치고 도우시는 성령을 보내신 최종결정권자이신 성부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영생을 얻는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령이 중심되지 않는다. 성령은 자신의 흔적도 남기지 않으시며 성자를 드러내신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언제나 성자의 십자가가 알려지고, 성자를 통해 성부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의 찬송이 높아진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이 진리가 우리를 너무나도 황홀하게 만든다. 이 진리의 깊이를 다 알기에는 우리의 머리가 누추하고 좁다. 그러나 깨달으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가슴이 벅차고, 행복이 넘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절대로 성령에 올인(all in)하는 종교가 아니다. ‘성령중심’의 신앙은 불가능하다. 성령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거나, 과시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뽐내시지 않으시는데 왜 성도들이 성령에게만 관심을 가지고서 성령을 구슬리어 일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가. 이것이 ‘성령운동’이라는 것의 속성이 아닌가? 성령은 언제가 오직 예수를 높이고 드러내시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하도고 좁고 협착한 길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선택하게 만들어 주신다. 모든 영광과 관심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기철 장로의「고맙습니다 성령님」, 베니 힌의「안녕하십니까? 성령님」이라는 책은 그 제목부터 벌써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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