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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조회 수 8932 추천 수 94 2010.02.10 17:21:16
<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딤전 4:1)</font></p><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 height:150%">신사도 운동은 곧 성령의 기름부음(?) 운동이다. 기름부음이라는 Concept이 없었다면 신사도 운동은 지금과 같이 널리 퍼지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그 기름부음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에 급속히 온 세계 교회로 확산될 수 있었다. 그 기름부음이 너무 심해서 그런지 신사도 운동 집회 홍보지들은 다른 종이보다 더 반짝이는 것 같다.      

손기철장로님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기름부음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치유집회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쓰러진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로 쓰러지고, 그리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혼절한 사람에게 속으로 흘러드러가고 ...” 라는 쓰러지는 이유에 대하여 말하는 손기철 장로의 대해 설명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기름부음은 성령의 내주하심이다!>  

기름부음은 구약시대에 제사와 다양한 의식에서 행해졌던 실제의 일이다. 왕을 세우시는 예식에서, 선지자와 제사장의 임직식 등에서 기름을 붓는 예식이 있었다. 이제 각 성도에게 임재하여 내주하시는 성령은 구약의 기름부음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다. 성령 안에서 구약의 기름을 부었던 행위의 이유와 목적이 다 이루어짐으로 인하여 이제 실제로 기름을 붓는 예식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령의 신령한 임재와 역사하심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 성령의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기름부음이라는 표현은 모두 성령의 인격적 임재와 내주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기름부음을 받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시는 사명이었다. 사무엘 선지자가 소년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하였다는 것이 그 중심적 의미였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 사실을 알면 죽일 것이므로 몰래 사무엘을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또한 기름부음의 핵심적 의미는 사명이었다. 제사의 사역을 시작하는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는 예식은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 외에도 기름은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를 의미했고 또한 풍성히 임하는 복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가장 중심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

기름부음이 있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신(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하였다.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나자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했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삼상 10:10). 구약 시대에 예언은 하나님의 신이 임한 선지자들에게 나타나는 태표적인 특별현상이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신으로 인하여 예언, 환상, 꿈을 꾸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사울도 성령이 임하는 특별은총을 체험하여 예언하였던 것이다.

이후 사울이 실패하자 사무엘은 은밀하게 다윗에게 왕의 기름부음을 행하였다. 그 이후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다. “사무엘일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니라”(삼상 16:13).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이 임하셨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되어 다윗은 더욱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갔다.

이처럼 구약시대의 기름부음은 하나님이 부어주실 하나님의 신에 대한 상징이었다. 구약시대에 이처럼 특별히 선택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임하였던 하나님의 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모든 성도에게 임하셨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모든 성도는 이미 기름부음을 넘치도록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신사도운동을 통하여서만 기름부음을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예수 믿고 성령받은 모든 성도는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존귀한 자들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이 두 말씀을 비교하여 보면 너무나도 명백해 진다. 성도가 받는 기름 부음이란 곧 보혜사 성령의 임재와 영원히 내주하심이다. 기름 부음이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일과 보혜가 우리에게 임하여 하시는 일이 똑 같다. 우리 모두는 이미 이러한 기름부음을 받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신사도운동 집회들을 찾아서 더 받아야 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기름부으심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 분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 “마쉬아”가 바울에 의해 “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로 변하여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의 실제 히브리어 이름 “예수아”가 “예수스”라는 헬라어 단어로 변하여서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원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름으로 우리 주님을 이해하자면 먼저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대속자로 선택되어지신 분이다. 메시야로서 십자가를 지실 사명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신이 임하셨던 분이다.    

<신사도운동의 기름부음은 빈야드집회에서 시작되었다!>

언제부터 신사도 운동에 기름부으심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을까?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은 대략 198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1997년에 사망한 존 윔버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빈야드 운동”, 또는 “거룩한 웃음운동”, “Toronto Blessing”이라고 하는 이상한 성령운동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 빈야드 운동은 시작될 때부터 엄청난 논란을 동반했다. 집회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바닥에 벌렁 넘어져서 낄낄거리고, 뱀처럼 기고, 미친 망나니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떨고, 구르고, 뛰고 ...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90년대 중반부터는 빈얀드 운동의 중심이 캘리포니아에서 토론토로 이동되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날 캔자스시티가 신사도 운동의 전진기지 IHOP 기도원으로 인하여 유명해진 것처럼, 90년대에는 토론토가 유명했다. 95년부터 플로리다의 펜사콜라에서 존 패트릭 킬이라는 목사를 중심으로 다시 하번 이 괴이한 부흥집회가 크게 일어났었다. 그러나 후에 사람들이 이두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허무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무슨 대단한 일 같았지만, 끝이 너무 허무했다고 한다. 최근 토론토의 그 부흥의 현장을 찾아보고 온 한 목회자를 통해서 들으니 그 뜨거웠던 부흥이 일어났던 토론토 공항교회는 적막한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다고 한다. 거짓 부흥은 이처럼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 끝이 추하고 허망하다.

당시 빈야드 운동의 부흥집회의 장면을 보며 생각해 보기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xCeVZ6e2T0E

http://www.youtube.com/watch?v=xCeVZ6e2T0E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으려는 목사들이 줄을 지어서 토론토로 갔다. 특히 한국의 목회자들도 많이 토론토를 찾았다. 대략 2,000명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당시에 빈야드 운동 세미나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곧 예배 중에 일어나는 그 괴이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들도 몇 년 동안 고민하다가 그 이상한 일들이 도저히 성령의 사역이라고 볼 수가 없어서 소속목회자들에게 더 이상 참여하거나 도입하지 않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여전이 그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교회들은 한국교회처럼 이단에 대해서 빨리 일치된 경계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문화적 토양과 상관이 깊은 일이다. 공익과 타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일이 아니면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 교회가 빈야드 운동의 모판이 될 수 있었다.

<존 윔버와 피터 와그너가 중심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캘리포니아의 빈야드 교회의 담임목사 존 윔버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당시 Fuller Seminary에서 교회성장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었던 피터 와그너였다. 존 윔버는 1978년 애너하임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일찌감치 빈야드 운동을 도입하여 빠른 시간에 개척교회를 6천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성장하는 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서 연구하는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의 빈야드 교회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성령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두 사람은 70년대 중분부터 알며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1982년에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를 공동강사로 초청하여 “기적과 교회성장”이라는 과목을 Fuller Seminary에 개설하였다. 이 강의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유명한 강의가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빈야드 운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 치유사역을 경계의 눈으로 지켜보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빈야드 성령운동의 대표자 존 윔버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알파 코스의 대표자 니키 검블처럼 존 윔버의 집회에서 직접 예언을 받고 기름부음도 경험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명확하게 밝히시지를 않으신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에서는 이전에 밝혔던 이름들도 다 지워버리고 "어떤 목사님", "어느 예언 사역자", "신령한 목사님 한분" ... 라고 본인께서 영향을 받은 해외의 인물들의 이름을 모호하게 바꾸어 버리셨다.

손장로님이 존 윔버 외에도 빌 존슨, 릭 조이너 ... 등의 신사도 운동가들과도 직간접적으로 만남과 영향을 받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모든 운동에는 근원이 있다. 현재 위세를 떨치는 그 운동의 정체를 알려면, 근원을 파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손기철 장로님께서는 우리의 의심으로부터 벗어나시지를 못하는 것이다.  

플러신학교의 피터 와그너가 존 윔버를 초청하여 함께 치유사역에 대한 강의를 개설하면서 엄청난 각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교회들이 합심하여 경계해야 할 사탄이 침투하는 현장을 “성령의 새로운 물결”이라며 추앙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인 교회성장학자 피터 와그너가 전면에 나섰기 때문에 된 일이다. 세계 교회가 공인하는 실천신학의 전당 Fuller Seminary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결국 이 때부터 피터 와그너는 대다수 복음적인 신학자들의 공적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동료교수들로부터 심한 비난과 수모를 당하면서 일생을 명예롭게 봉사했던 그 학교에서 더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훗날 그가 출판한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의 한 부분을 보면, 그는 당시 죽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있는 플러를 개혁하기 위한 영적전쟁을 수행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탄으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당했지만 승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참된 교회개혁 운동인 신사도 운동을 전개하기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따랐다고 한다.  

모든 이단들을 정죄당할 때에 절대로 고분고분하지 않다. 별의 별 소리를 다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정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유한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한다. “죽은 사탄의 종들이 사탄에게 두통거리가 되는 나를 죽이기 위해 일치단결하였구나!” ... 꼭 이런 말을 한다. 피터 와그너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하면서 일평생 봉직했던 Fuller Seminary에서의 교수 사역을 불행하게 접었다.  

<그것을 성령의 제 3의 물결이라고 했다!>

당시 빈야드 운동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현상을 성령의 역사로 단정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피터 와그너가 선택한 용어는 “성령의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of Holy Spirit)이라는 용어였다. 제 삼의 성령의 물결이라는 용어를 고안한 것은 190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두 번의 성령운동에다 빈야드 집회에서 나타난 괴상한 정체불명의 현상들을 관련시키려는 음모였다.  

피터 와그너는 1900년대 초에 일어난 최초의 오순절 운동을 성령의 제 1의 물결이라고 했다. 이때의 중심이슈는 성령세례와 방언이었다. 성령세례를 예수를 믿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 그 자체로 설명하지 않고 예수 믿는 자에게 두 번째로 주어지는 축복(second blessing)으로 설명하고, 그 보편적(실질적으로는 “절대적”)인 증거가 방언이라고 하는 이론을 그대로 재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70년에 다시 한 번 강하게 나타난 은사주의 운동을 성령의 제 2의 물결이라고 했다. 이 두 번째의 은사주의 운동은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아닌 성공회에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이때의 부흥운동에서도 첫 번째 오순절 운동 때보다는 매우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그 중심이슈가 성령세례였다. 여전히 방언이 성령세례의 보편적인 증거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리고 80년대의 빈야드 운동에서 나타나는 괴이한 괴이한 이적들을 “성령의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of Holy Spirit)이라고 부르면서 그 연장선상에 둔 것이다. 피터 와그너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던 유명한 미래 사회학자 엘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에서 영감을 받아 성령의 제 3의 물결이론을 창안하였다고 한다.  

사실 피터 와그너의 책『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을 보면 그가 요즘 우리가 기겁하면서 거부하는 빈야드 집회의 난잡하고 무질서한 현상들을 성령의 새로운 역사라고 언급하는 부분을 발견되지 않는다. 피터 와그너의 주장의 중심 내용은 귀신추방과 병자치유 등의 성령의 이적과 기사로 인하여 복음이 능력있게 전파되는 새로운 시대가 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그런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위험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피터 와그너의 이런 이론은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었다.  그래서 그의 책의 서두에 존 윔버와 함께 플러에서 공동으로 인도하였던 강의 “MC510”(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의 책(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과 존 윔버의 책(Power Evangelism)의 중심 내용은 거의 유사하다.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제 3의 물결 이론은 거의 전적으로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의 현상을 관찰함으로서 얻어진 결론이라는 것이다.

존 윔버는 성령의 역사라고 보기에 너무도 곤란한 현상들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몸의 진동과 떨림, 고꾸라지는 현상, 술 취한 듯한 행동, 몸부림치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 흐느껴 우는 현상 ... 등이 성령의 임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고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제 3의 물결 이론이 이런 현상을 배제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성령의 새로운 역사로 포장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현상들, 낄낄거리고, 뱀처럼 기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심지어 금이빨도 생기고 ... 이런 현상들이 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표적으로 둔갑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방언으로 성령의 임하심이 나타났었는데,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기름부어주신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징그럽고 끔찍하고 추잡한 현상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일을 그 어떤 사람이 꾸밀 수가 있었을까? 최고의 거짓의 명수 사탄이 아니면 못할 일이다.

다음의 영상을 보면 우리 한인성도들을 대상으로 그런 추잡한 귀신의 푸닥거리를 일으키는 외국인 신사도운동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을 한국인 여성도가 통역하는 장면을 볼 것이다. 결국 피터 와그너의 그 이론의 결실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80년대부터는 이전의 방언 대신에 이런 방식으로 새롭게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_SRw7AN_SrA

바로 이 부분에 관해서도 손기철 장로님은 피터 와그너의 이론과 거의 일치된 견해를 보이신다. 그 분의 책 <고맙습니다 성령님>을 보면, 성령세례의 가장 명확한 가시적 현상은 기름부으심이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은사주의 운동가들과는 달리 성령세례시에 방언은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나타나는 성령세례의 핵심은 “기름부으심”이라고 한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손기철 장로님과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제 3의 운동 신학은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손기철 장로가 신사도 운동가라고 더욱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기름부으심 때문에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손기철 장로의 핵심 주장과 성령의 기름부음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피터 와그너의 이론은 다름이 없다.

쓰러짐, 낄낄거림 ... 등의 이상한 현상들이 다 성령의 기름부으심 때문이라는 다른 신사도 운동가들의 주장은 좀 천박하고 거북하지만, 성령의 기름부으심 때문에 쓰러진다는 손 장로님의 주장은 더 세련되게 느껴진다. 그것이 차이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이 인도하는 집회에서 사람들이 대량으로 매우 흔하게 쓰러지는 원인이 빈야드 운동 집회들의 그 괴상한 영들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의 기름부으심”(Anointing)이라는 개념이 세계 교회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빈야드 운동의 상징어가 되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결과는 “능력”(Power)이므로 능력이라는 단어도 더불어 빈야드 운동의 핵심 언어가 되었다.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능력치유”(Power Healing), “능력축사”(Power Encounter)와 같은 용어가 전면에 등장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서 “기름부음이 가득한 예배”, “기름부음이 넘치는 설교”, “기름부음 받은 사역자”, “기름부음 받은 찬양” ... 이런 Anointing ministry가 대단한 능력의 사역인 것처럼 각광 받으면서 급속히 세계 교회에 확산되었다.

이것이 요즘 도처에서 홍수를 이루는 기름부음 운동의 태동이다. 토론토의 해괴한 일들이 피터 와그너의 “성령의 제 3 물결”이라는 옷을 입고 전 세계 교회에 빨리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거대한 신사도 운동의 중심적인 물줄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대부분 몰랐다. 복음적인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교회성장에만 너무 몰두하다가 사탄의 미혹하는 더러운 영들이 그 기름부음 운동을 통하여 교회들 과 성도들 속으로 신속히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마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 바알과 아세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로 둔갑되어 하나님으로 섬김을 받았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영적전쟁이었는데, 교회성장과 부흥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인하여 복음주의 교회들이 아무 손을 쓰지 못했었다.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는커녕 오히려 들어오도록 협조해주면서 교회를 병들게 하였다. 이제라도 우리 목회자들은 이런 웃기는 기름부음 운동에 성도들이 물들지 않도록 단호하게 경계해야 한다.

왜 우리는 신사도 운동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이론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는가? 왜 성도들이 신비감을 느끼고 동참하는 것을 단호하게 막아야 하는가? 그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름부음 운동은 성령에 대한 왜곡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이론이 성령님에 대한 왜곡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름부음 운동은 성령의 Second Blessing 이론을 당연시하면서 나타났다. 바로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복음주의 교회들은 바로 이 거짓된 이론과 투쟁하였다. 성도들 중에 더 사랑받고, 더 은총을 입고, 더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에게만 별도의 영적축복으로서 성령세례가 임하고, 그 증거가 방언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바른 가르침으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위력을 떨치지 못하게 있다.  

그런데 그 사상이 조금 새롭게 변모하였다. 더 세게 역동하며 등장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사상이다. 이전에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했었는데, 바로 그 점이 달라졌다. 방언은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고 있다고 한다. 오직 “기름부으심”이 성령세례의 명확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기름부으심으로 인하여 지난 2,000년 교회사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괴상하고 희한한 각종의 현상이 새로이 나타난다고 한다. 빈야드 집회에서 처음 나타난 사람들의 미친 짓거리들이 그 시작이었다. 한국의 기름부음 운동의 전도사 손기철 장로도 그의 책에서 꼭 같은 이야기들을 한다.

진리라면 적어도 천년은 가야한다. 이제 방언은 저 멀리 밀려났다. 이상한 짓거리 하게 만드는 더러운 기름부음이 진리의 표적이고, 지금의 대세이다. 불과 50년 만에 하나님의 영적진리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면 이 후에 또 다른 어떤 것이 기름부음을 짓누르고 새로 등장할 것인가? 그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온전한 것이 지금 왔고, 기름부음이 성령세례의 최종 버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어찌 믿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또 뭔가를 새로 조작하여 들고 나올 것이다.

그들의 아비는 언제나 쉬지 않고 그런 일을 잘 한다. 그 아비의 필을 받은 그들도 그런 일을 쉬지 않고 잘한다. 그래서 그들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거짓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또 미혹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신사도파들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구약 요엘서의 예언이 다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그들의 성령의 기름부음 운동을 통해 요엘서의 예언이 완전히 이루지고 있다고 한다. 기름부음이 임함으로 자신들이 환상, 예언, 꿈 ... 등의 종말적 성령사역의 도구가 되어 구약 요엘서의 예언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 조직된 사탄의 거짓이다. 요엘서 2:28, 29절의 “장래 일”, “꿈”, “이상”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신을 받은 구별된 선지자들에게서만 나타났던 성령의 사역이다. 그리고 “자녀”, “늙은 이”, “젊은 이” “남종”, “여종”은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표현들이다.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조성된 새 인류, 즉 교회에 하나님의 신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보편적으로, 인격적으로 임하실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성령이 이 땅의 교회에 강림함으로 다 이루어졌다.

그러나 신사도파들은 성취되지 않은 남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 재림을 목전에 둔 지금 영혼의 대추수를 감당하기 위한 교회의 혁신적 변혁을 위해 종말적 성령세례가 부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고서 사도행전 2장에서 못다 이루어진 요엘서의 예언을 모조리 다 이루는 “요엘의 군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자녀들이 예언하고, 어른들이 꿈을 꾸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신앙이라고 여긴다.

<신사도운동의 기름부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와 다르다!>

그들의 이론은 정말 성경적 진실일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보혜사에 대한 말씀이 지금 현재의 성경의 내용과는 달랐어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조성된 새로운 인류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히 임하는 “보혜사Ⅰ”을 먼저 말씀하였어야 한다. 그리고 보혜사Ⅰ을 받은 보통의 일반 성도들 가운데 더 선별된 사람들에게만 임하는 “보혜사Ⅱ”에 대해서 후에 추가로 말씀하셨어야 한다. 이것이 20세기 초에 캘리포니아 아주사의 은사주의 부흥으로 인하여 나타난 성령세례와 방언과 관련된 보혜사이다.

그리고 성경의 다른 어느 곳에서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에 임하는 또 다른 성령 “보혜사Ⅲ”에 대해서도 또 다른 언급이 있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80년대 빈야드집회에서 본격으로 등장하신 새로운 성령의 버전이고, 여기에서 요즘 IHOP의 마이크 비클이 이야기하는 “친밀한 신부의 정체성”, “신부의 열정” ... 이런 것을 일으키는 성령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14장, 15장에서 예수님은 단 한 종류의 보혜사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 이 땅의 교회에 임하시는 성령은 오직 한분 보혜사이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분이시다. 성경은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보혜사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리고 성도가 받는 기름부으심이란 오직 그 분의 임하심이다. 메시야로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름부으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주로 믿고 받은 우리들에게까지 같은 기름부으심이 임했다. 주께서 보내신 보혜사가 임한 것이다.

지금 이 때에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을 통해 더 권능을 입은 성도가 되도록 특별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것은 영혼을 사냥질하는 마귀의 궤계이다. 원래 마귀의 가장 뛰어난 재주는 거짓을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꾸미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진리의 말씀 없이 감정으로 믿는 사람들이 더 쉽게 빠진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가르치는 교회에서는 이런 사상이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건전한 신학으로 훈련된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런 이론에 빠질 수가 없다. 그 거짓된 이론에 현혹되고, 실제로 그들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아 신앙이 변질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른 목회자에게서 바르게 말씀을 바르게 배우지 못했다. 감정적으로 뜨거워지기를 잘하여 찬양과 기도에는 두각을 보였지만, 말씀 속에 굳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런 분들이 지금도 기름부음을 잘 받는다.  

목회자들 중에서 그런 분들이 있다. 비슷한 특징이 보인다. 바른 신학교에서 건전한 신학훈련을 잘 받지를 못한 분들이거나, 바른 신학교를 나왔을지라도 천성적으로 분별력이 떨어지고, 성품이 너무 유순하고 평화를 지나치게 추구하시는 분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옳고 그름에 대해 싸움을 피하시다가 그만 혼미한 곳에 발을 딛는 경우도 있다.

IHOP의 마이크 비클은 전혀 정규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분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러고서도 지금처럼 유명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반 목회자의 반열을 뛰어넘어 피터 와그너가 조직한 국제사도연맹(CIA)에 소속된 사도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를 육성하는 IHOP의 대장이 될 수 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기름부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고 있다!>

둘째로,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기 때문에 거절되어야 한다. 최소한 신사도파들은 그 기름부음이 성령으로부터 임한다고 확실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름운동의 결과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높이 세워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라 인정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이 드러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보혜사)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4).

성령의 사역의 최종적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비젼이다. 그리스도가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시는 성취하시는 분이 성령이다.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이 성령으로부터 임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들의 기름부음 운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찬송이 더 크게 울려야 한다. 기름부음을 받아 쓰러지고, 구르고, 뛰고, 히죽거리고, 사지를 달달 떨었던 사람들을 통하여 구원 받는 새로운 영혼의 급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로 인하여 교회들이 더욱 하나가 되고 강건해져서 복음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뜻이며 소원이다.  

그러나 현실을 전혀 다르다. 이미 믿는 성도들이 그들의 집회에 갔다가 온 후에 이상하게 변했다며 걱정하는 말들이 더 많이 들려오다. 믿지 않던 불신자들이 그들을 보고서 무더기로 예수 믿었다는 소문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교회가 이상해졌다는 빈정거린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고 갈라진다는 소문이 많다. 기름부음을 경험한 사람들과 거기에 가보지도 않은 성도들이 서로 더 잘 화합하여 더 힘써 교회를 섬긴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어떤 부부는 함께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 손기철 장로의 집회에 갔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그날 기름부으심이 임했다고 했다. 아내는 시원스레 쓰러졌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기름부음이 임하지 않았다. 남편은 끝까지 반듯하게 서 있었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 아내는 속이 상해서 화를 내면서 쓰러지지 않는 남편을 구박했다. 그리고 아내는 속이 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안타까운 심령을 토로했다. 그래서도 나도 듣게 되었다.

내 말은 다른 뜻이 아니다. “다들 쓰러지는 기름부음 집회에 참석해서 다른 쓰러지는데 안 쓰러지는 가족 때문에 안타깝고 속상해야 하는 이런 마음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의 건강한 ‘애통’일까?”라는 의문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름부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동한다!>

셋째로, 신사도 운동의 기름운동은 사람에 의해서 조절되기 때문에 거절되어야 한다. 먼저 기름부음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직 받지 않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그들은 가르친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간절하게 바라고 소원하면 기름부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 이동된다고 한다. 실제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더 괴이하다. 손을 머리에 얹어서 기름을 흘러 보내는 모양은 그래도 점잖다. 강사가 손을 내리지르면, 살짝 미는 시늉을 하면, 중국 무협영화처럼 장풍을 쏘는 시늉을 하면, 심지어 옷을 벗어서 휘두르면 ... 그들의 기름은 술술 잘도 흘러들어간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이다. 그래서 성령은 “Another Jesus”이다. 그러하신 성령께서 이런 자들의 뜻대로 다루어진다는 것이 어떻게 믿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일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반열에 선 존재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령을 다룰 수 있다.

요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장난을 부린다. 그들은 대부분 큰 능력이 있다고 소문난 부흥사들이다. 나는 최근에 보스톤을 중심으로 엘리야미니스트리를 한다는 김종필 목사의 집회 영상을 보았다. 그도 역시 비슷한 모양새를 보였다. 성령을 손으로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행동하고 있었다. 나의 말이 지나친지 영상을 보면서 직접 판단하기 바란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한다고 엄청 강조한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영혼이 보이고, 뒤에 서 있는 천사도 보인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SQ3t0jHPWR0  

결론은 그들의 기름운동이 사탄적 술수라는 것이다. 정상적 신앙체계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셨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볼 수도 없고, 임의로 조절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성령은 그러하신 분이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일으키는 프로그램을 잘도 운영한다. 알파코스, G12, 두 날개 ... 이런 프로그램에는 중간에 “산상수련회”, “성령수련회”, “전인치유수양” ... 이런 시간이 있다. 그때 지도자가 안수하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실제로 일어난다. 일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쏟아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진동하고, 방언하고, 손과 상체로만 추는 성령춤이 나타나고, 환상을 보고 ....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지도자에게 더욱 충성하고 맹종한다. 손기철 장로님이 책을 보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기름부음이 전이된다는 사실을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라는 조건이 추가되었었다. 그래서 더 그 분이 수상쩍다.    

다음의 영상은 플로리다 부흥의 주역이었던 거짓 사도 타드 밴틀리가 한국인 체안이라는 신사도와 그 아내에게 기르부음을 쏘아서 밀어 넣어주는 장면이다. 이런 해괴한 모양으로 성령이 한 사람의 손을 통하여 분출되어 다른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상적 기독교의 모습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BeoiamEvZMA

이런 일을 하고, 도 이런 일을 믿고 사모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신사도운동이다. 이 부부가 저러더니 지금 그 능력이 나타나서 팔팔 날고 있다. 교회도 엄청 부흥(?)하고 있다. 그런 기름부음이 좋게 보이는 목사가 또 있다면, 당장 목회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분별없이 쫓아다니다 또 한 사람이 더 사탄의 도구가 되면 더 많은 영혼들이 사탄에게 상할 것이다.

<기름부음은 IHOP에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사람들은 IHOP과 마이크 비클의 해악이 오직 불건전한 예언과 사도, 선지자 운동이라고만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에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개념이 IHOP에서 “친밀한 신부” ... 라는 신비주의 운동과 결합되어 더욱 교묘하게 확산되고 것을 보았다. 지 난 해에 쓴 IHOP에 대한 나의 글을 읽고서 어떤 분이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체 죽은 교리와 신학에 메여사는 바리새인 같은 나”(?)에 충고하는 글을 올리셨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 의외였다. 마태복음 25장에서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참 이상했다. IHOP의 문제를 지적하는 나에게 왜 미리 기름을 준비하여 잔치에 참여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 IHOP과 그 기름이 무슨 상관일까? ... 이후 나는 IHOP과 그 처녀들의 “기름”이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를 발견하였다. 마이크 비클이 IHOP에서 있었던 어떤 큰 집회에서 마태복음 25장의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 대한 비유를 택스트로 하여 “친밀함을 양성하는 기름부음”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누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CGN TV 싸이트로 들어가서 <해외말씀강해>로 들어가서 마이크 비클을 찾아서 들어가면 그의 설교들이 있다. 최근의 설료 몇 편을 들었더니 과연 마태복음 25장의 비유의 기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마이크 비클이 설교 중에 어찌나 자주 Oil! Oil! Oil ... 하는지 ... 듣기만 해도 기름이 뒤범벅되는 설교였다.

중심 내용을 파악하면서 들어보니 과연 희대의 명설교였다. “똥이라도 미국 것이라면 좋다!”라는 태평양 시대의 신 사대주의가 아니고서는 좋아할 만한 이유가 없는 설교였다. 그런데 그게 좋은 설교라고 난리다. 기도와 찬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지 않는 곳의 이적은 결코 하나님의 역사일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종말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는, 그리고 삶과 영혼에 에너지가 되는 Oil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5장의 비유에서의 기름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신앙 그 자체를 의미한다. 기름을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한 어리석은 5명의 처녀는 불신자들이다. 기름을 미리 준비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간 5명의 처녀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성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모두를 이미 그리스도인 된 사람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등불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와 사역으로 해석했다. 어리석은 5명의 처녀는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지만,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성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등불의 기름을 미리 넉넉히 준비하여 다른 5명의 처녀는 사역을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하게 연결된 성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즉 기름부음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밤중에 신랑이 불현듯 왔다는 것은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때가 대 부흥의 때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에게 신앙적 감정을 잘 잘 촉발시키지만, 그 날의 성경본문은 전혀 그 설교자와 듣는 성도들의 흥분과 기쁨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하는 자는 자신만만하고 듣는 자들은 충만히 은혜를 받고 새로이 결단한다. 이런 설교를 알레고리 설교라고 한다. 요즘 한국의 시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캔자스시티의 IHOP이라는 기도원의 원장 목사님을 통하여 보았다. “저런 사람은 대단한 목사라고 좇고 따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 한숨이 절로 났다.

마이크 비클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하는 신부가 되게 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극히 강조한다. 전 세계의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신랑되신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어야 재림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요즘 IHOP에서 나오는 용어들이 대부분 신랑과 신부에 대한 말들이다. “친밀한 신부”, “신부로서의 정체성”,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의 열정”, “신랑 하나님의 계시”, 그리고 “환난을 극복하는 엘리트 교회” ... 등이다. 그 중심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다. IHOP에 가서 기름부음을 받아야 신랑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친밀한 신부가 된다는 논리이다.  

원래 마이크 비클은 예언파였지 기름운동파가 아니었다. 그런데 80년대 초에 대예언자 폴 케인의 예언을 따라서 존 윔버의 사역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빈야드 기름운동파에게 캔자스시티의 예언운동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캔자스시티의 예언파에게는 빈야드의 기름운동이 소개되었다. 다시 후에 성향의 차이로 인해 마이크 비클을 빈야드 파를 떠나 캔자스시티에 IHOP를 세웠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도 기름운동에 대한 기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빈야드의 기름운동은 징그러웠다. 누가 보아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캔자스시티로 이동한 후로는 아주 고상하게 변신했다. IHOP으로 들어가서는 너무 세련되게 새로이 발전했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찬양과 중보기도로 감싸졌다. 누가 쉽게 의심하겠는가? 빈야드 운동에서 쉽게 보였던 촌스럽고 웃기는 장면들도 거의 없다. 지금 더욱 고상하게 변모한 기름이 IHOP에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영적성향이 변질된다는 면에서 IHOP의 기름과 빈야드의 기름은 동일하다. 한번 맛본 사람들은 거기만 좋다고 한다. 거기가 최고라고 한다. 반드시 거기에 가 보아야 한다고 한다. 거기라는 장소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반 기독교적이 아닌가? 언제 기독교에서 기도가 잘되는 장소, 은혜가 잘 내리는 장소를 추앙했던 적이 있었는가? 그랬던 자들은 모두 위험스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경계한다. 왜 IHOP의 24시간 이어지는 찬양과 기도회는 위험할까? 영혼을 변질시키는 뭔가가 분출되기 때문이라고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그들은 우긴다. 24시간 이어지는 찬양과 기도가 왜 거절되어야 하는가? 결국 그 기름을 잘 끼얹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들의 찬양의 음악과 조명 등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매우 위험스럽다고 말 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 지극히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서서히 무아지경에 도달해 접신하는 신비종교의 분위기가 IHOP에 있는 것이 아닌지 ... 전문가들은 염려한다. 다음의 영상은 IHOP의 찬양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dCKBSB-PAE

IHOP은 단순히 사도, 선지자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는 “친밀한 신부”(?)되게 하는 기름부음(?)이 있다. 그 기름을 얼마나 뜨겁게 많이 받느냐에 따라서 신부들이 사도, 선지자, 특수요원 ... 각각 다른 사명을 받는 모양이다.

왜 캔자스시티로 가서 24시간 이어지는 찬양과 기도에 빠져 보라고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 이상한 기름부음을 받아서 “하나님과 친밀한 신부”(?)로 변화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한다. "이미 보혜사를 받아 아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친 백성”(딛 2:14)이 된 우리에게 왜 갑자기 “친밀한 신부” 타령을 하면서 그곳에서만 나온다는 무슨 기름을 따로 받으라는 것이냐?"  

요즘 위험스러운 사람들은 새로운 용어를 창조하는 귀재들이다. “친밀한 신부”, “신부의 정체성”, “신부의 열정” ... 얼마나 그럴싸한 말들인가? 이 시대의 최고의 광고 카피라이터들도 선뜻 생각하지 못할 기막힌 언어의 유희들이다. 정신을 똑 바로 차리고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그곳에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마귀에게 시집가는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친밀한 신부가 되기 전에 먼저 믿음이 혼미해져 버릴 수도 있다고 본다. 어떤 위험스러운 점들이 있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음의 영상을 보면 내 말이 결코 지나친 걱정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HCXOSjBAeM8    
  
<사람들은 온누리 교회를 걱정한다!>

나는 미국 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달 동안 서울의 온누리 교회에서 예배드렸다. 당시 담임 목사님은 신병치료차 미국에 체류하셨고 주일설교는 한 부목사님이 하셨는데, 부목사님의 설교도 너무 좋았다. 당시 한 살이었던 딸이 지금 11살이 되었으니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뒤로 한 번도 한국에 가 보지 못했고, 온누리 교회에 대해서는 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찬양이 그처럼 좋을 수가 없었고, 예배와 모든 것이 너무 훌륭한 교회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교회에 대해서 염려스런 말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 교회를 언급하게 만든 것도 IHOP에 대한 내 글에 반대하는 분들이 올리신 글들이다. “미담”이라는 필명을 가지신 분이 시애틀 온누리 교회의 성도이고 의사이신 서정주 시인의 아드님에 대한 신문기사를 첨부해 주셨다. 그 분이 2008년부터 온누리 교회의 파송선교사로서 IHOP의 디렉터가 되시어 IHOP의 한국어 예배를 섬기고 있다는 기사를 보여주셨다. 다소 길 글이었지만 그 뜻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온누리 교회도 IHOP과 깊은 유대를 맺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온누리 교회의 성도들이 큰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님이 그 교회의 목사님보다 더 목회를 잘 하십니까?” ... 그런 뜻이었던 것 같다.  

“교회사랑”이라는 필명을 가지신 분도 온누리 교회와 IHOP의 더 긴밀한 관계을 보여주는 신문기사를 첨부하셨다. 그 교회의 세계선교센터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담임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선교센터의 명칭을 ‘열방비전센터’라고 할 예정입니다. 선교는 물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곳으로 그곳을 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캔사스 시티에 있는 아이합(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in Kansas City)은 400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가 하나님을 향해 24시간 365일 기도드리는 곳입니다. 아이합과 같이 이 센터에서 은퇴한 장로님들을 비롯해 헌신된 하나님의 일꾼들이 24시간 기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

이 기사를 첨부하여 주신 분의 말없는 주장도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목사님도 IHOP를 좋아하신다. 하용조 목사님도 이러시는데, 왜 당신은 IHOP을 싫어하십니까? 뭘 모르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라는 의미였다. 나는 좀 멍해졌다. 사람들에게 온누리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진리의 Sample처럼 여겨진다. 그  교회가 하면 다 옳은 것이다! 라는 분위기는 아직까지 분명히 한국 교회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만일 온누리 교회가 미국의 IHOP을 모델로 새로운 사역을 펼친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미국의 IHOP의 중심사역은 예언이었고, 이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더해지고 있다. 그곳에서 기름부으심을 받게 되면 사람들이 환상을 보고, 예언하고, 꿈을 꾼다. 그것 때문에 교회에서 소란이 일고 분란이 일어나고 있다. 종말의 온전한 성령의 역사라고 우기는 쪽과 사탄으로부터 임하는 배교의 물결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다.

과연 온누리 교회에서는 미국의 IHOP에서 무엇을 한국으로 가지고 갈 것인가? 미국의 IHOP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예언운동과 기름부음 운동일까? 그렇다면 정말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아니라면 무엇을 한국으로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참신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 우리는 조심스레 지켜보아야만 한다.  

다음은 “과객”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이 올리신 글의 일부이다. 앞으로 이러한 염려가 사실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읽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더라도 얼마나 온누리 교회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는지 느꼈으면 좋겠다.

“이제 한인교계는 IHOP의 대공습을 당하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사실 IHOP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국의 초대형교회인 O교회를 통해 뉴욕 뉴저지 교회에, 특별히 청년들에게 광범위하게 침투해 왔었습니다. O교회는 한국의 가장 큰 장로교 소속이기 대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IHOP, NAR(신사도운동), Toronto Blessing, YWAM, 트레스 디아스, 알파코스 등의 은사주의 계열이 아주 친숙한 얼굴로 한국교회에 깊숙히 침투해 있습니다. 이제 잘못하면 그들이 다수가 될지도 모름니다 ... 너무 안타깝습니다. 참으로 지금은 우리가 옷을 찢고 회개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주여 주의 몸 된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지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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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1922
62 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2016-01-28 2295
61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1813
60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234
59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033
58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1917
57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253
56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355
55 부활복음은 십자가 모르는 김성로 목사의 목회브랜드 2015-11-27 3235
54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032
53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복음(간증운동) 성경적인가요? 2015-11-22 3550
52 성경은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라 한적이 없다 2015-09-08 2577
51 명성교회 특새소리는 한국 교회 초상치는 소리 2015-08-31 3178
50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2015-08-28 2971
49 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2015-08-21 2796
48 주기철,손양원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춤추는 날 2015-08-18 3103
47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531
46 남침례교단 방언관련 선교 정책 변경은 그릇된 일 2015-08-17 2809
45 성령을 조종하는 안수기도는 불가능 2015-08-17 2704
44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372
43 성령운동과 기독교 신앙 2014-01-04 5385
42 성령운동가들의 이상한 인생 패턴 2014-01-02 10234
41 앤아버 반석교회가 CRC 교단을 떠나는 이유 2013-09-29 9181
40 비성경적인 이스라엘 사상, 이제는 분별할 때 2013-08-15 8344
39 "알파코스"-제3의 물결의 거짓부흥2 2013-08-13 16671
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3019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035
36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104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49402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6944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112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329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7550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6764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7996
28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1133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29780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0976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015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6155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7349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026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5845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7738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7841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8799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365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9294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5577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060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071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7937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170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5801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7904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6630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551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6801
»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8932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8187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376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228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