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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643 추천 수 0 2016.12.03 21:40:34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9:8)

모두가 산을 옮기는 크고 위대한 믿음(마 17:20)을 가질 수 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타고나야 할 요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큰 믿음을 가지지 못할 태생적인 운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결코 없다. 큰 믿음도 기회와 상관이 있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다가올 때에 과감하게 붙들어야 한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한 다른 자질을 가졌으면서도 기회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제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부의 믿음과 위대한 사람의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큰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에서 너무 오래 망설이는 것이다. 뛰어들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인데, 도전 앞에서 결단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결국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다. 의미없는 사색과 기도만 계속 반복하면서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믿음의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절대로 위대한 모험에 자신을 던지지 못한다. 두려움은 우리의 영적 가능성을 잠식하는 확실한 바이러스이다. 가능성이 충분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큰일에 도전하지 못하고 주저 않아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담대해야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뛰어 들어야 한다. 그런 담대함도 하나님을 확실하게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또 다른 큰 은혜이다. 큰 도전을 만났을 때에 두려움 없이 담대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 산을 옮길 큰 믿음의 시작이다.

헤브론 땅을 차지할 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다. 그는 40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았던 땅을 생전에 차지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그 나이에 다시 큰 싸움에 도전했다.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그는 강대한 아낙 족속으로부터 그 땅을 쟁취하여 기업으로 삼았다. 다른 정탐꾼들은 크고 강대한 가나안 족속들을 보고서 두려움에 포로되어서 떨었고 백성들도 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갈렙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믿음의 담대함을 끝까지 보였던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좇았으므로”(수 14:8)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 14:12)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한 사람이 큰 일을 감당하게 된다. 선명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믿음이 특별히 부족한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루 두루 이것저것 다 조금씩 가지고 있다. 다만 중대한 순간에 담대하게 결단하고 씩씩하게 뛰어드는 믿음이 없을 뿐이다.    

역사적인 순간에 머뭇거리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결단하는 사람은 영웅이다. 보통 사람들은 중대한 때에 미적거리고, 결국 원하지 않는 현실 속에 빠져서 끌려간다. 그러나 항상 마음의 한 구석에는 꿈이 가물거리고 있다. 필부라 부르는 영적 소시민들의 비애이고 숙명적인 아픔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혹시 서서히 이런 사람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 전에 온 가족이 배를 타고 작은 호수를 건넜다.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 배에 타고 있어서 염려되었다. 만일 이 배가 물에 빠지면 나와 큰 딸과 아들은 살겠지만, 수영을 배우지 못한 아내와 막내딸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난하듯이 "만일 물에 빠지면 아빠는 엄마를 책임지고, 너희 둘을 동생을 살려야 한다! 알았어!"라며 만일의 경우를 위해 대책을 세웠다.    

당신은 수영을 잘 하는가? 수영 선수들처럼 멋지게 평영이나 배영으로 물살을 가르지는 못해도 시골의 촌스런 개헤엄이라도 배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영을 배우려면 일단 물로 들어가야 한다. 물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 그러면 절대로 수영을 배우지 못한다. 온 몸으로 물을 경험하면서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도 반드시 현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키우는 현장은 항상 거칠고 사납다. 장차 그곳에서 큰 믿음의 배가 뜰 것이라면 더 할 것이다. 누군가가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는 이미 그만한 위험과 고난을 현장에서 겪었고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범한 구석이 있는 하나님의 큰 믿음의 사람으로 크게 쓰임을 받으려면 반드시 용기를 내어야 한다. 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담대함을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겁이 많은 사람은 그냥 믿는 보통 사람일 뿐 크게 잘 믿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가 사는 굴이 있을 법한 깊은 산 속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겁쟁이는 호랑이 굴이 있을 법한 곳을 일부러 피하게 되고, 심지어 호랑이가 오래 전에 싸 놓은 마른 똥만 보아도 겁을 먹는다. 그러나 토끼를 잡고자 하면 상황은 또 다르다. 가까운 야산을 돌아다니면 된다. 혹시 기어가는 뱀이나 보고 놀랄까 다른 큰 위험은 없다. 그래서 토끼몰이는 동네 개구쟁이들의 스포츠이다. 그러나 호랑이 사냥은 담대하고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 사냥꾼들만의 과업이다.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큰 믿음의 사람이 되는 이치가 꼭 호랑이 사냥과 같다.  

성경의 큰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최초의 큰 믿음의 오리지널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함과 동시에 큰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담대하게 길을 떠나 위대한 큰 믿음의 여정으로 들어갔다. 어디를 향하여 가라는 구체적인 안내도 받지 못했지만, 앞날이 불투명한 그 길에 자신을 던졌다. 그렇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갔으므로 큰 믿음의 원조가 된 것이다.

기도는 언제나 중요하다. 절대로 우리는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만이 영원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기도할지라도 행동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면 절대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 힘써서 기도하고 나서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보자!" ... 물러나 팔짱을 끼면 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면서 현장으로 돌진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현장을 회피할 것이라면 굳이 기도를 왜 한다는 말인가? 담대하게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도 두 주먹을 쥐시고 우리와 함께 뛰어 들어가신다. 수 없는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를 최대로 넓히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믿음의 반석위에 세운 다윗을 보라! 그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의 능력의 비밀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전장으로 뛰어드는 믿음의 장수였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여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삼하 22:30).

다윗이 적군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하나님도 어김없이 다윗의 대적들 속으로 함께 뛰어 들어가셨다. 다윗은 그 사실을 소년 시절 빈들에서 아버지의 양을 칠 때부터 이미 경험하여 확신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뛰어들면 하나님도 함께 뛰어 들어가신다는 사실을 목동 시절에 체득하였다. 그리고 골리앗이 교만을 떠는 그 역사적인 현장에서 사자와 곰을 이기게 하셨던 하나님이 또 다른 승리를 주실 기회가 온 것뿐이라고 당연하게 믿어졌던 것이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 17:34,35)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기도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연결이다. 기도하면 하나님과 친해지고 연결된다. 기도 없이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기도만이 전부는 아니다. 당신 앞에 전개된 차갑고, 힘들고, 괴롭고, 냉혹한 현실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당신이 큰 믿음의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다. 실패를 맛보았을지라도 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해야 한다.

기도의 바카스를 하나님께 구하라! ㅤㄱㅢㄹ고 다시 일어나 뛰어라! 절대로 하늘의 천사가 당신을 대신하여 뛰어 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그런 환상을 기대하지 말라! 당신을 큰 믿음의 사람으로 이렁서게 하는 그 절대적인 사실은 위대한 도전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들어 쓰심을 경험하는 것 뿐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혹시 평소 기도가 부족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뛰어 들어가면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고 쓰실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면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을 붙드시지 못하신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당신의 무기를 손에 들고서 뛰어 들어가야 한다. 다윗이 자신의 사울이 주는 사울의 칼과 갑옷이 몸에 맞지 않아 자신의 평상복을 입고 자신이 잘 다루는 돌 다섯 개를 챙겼다. 바로 그 차림과 준비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왕의 갑옷과 칼을 마다하고 돌 다섯 개만 주머니에 넣고 거인을 향하여 뛰어갔다.

소모는 막대기 하나로 블레셋 군사 600명을 죽인 삼갈도 그냥 뛰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손에 뭔가를 들고 갔다. 소모는 막대기였다. 빈손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싸울 때에 더욱 효과적인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도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일상에서 나온다. 꼭 필요한 때에 무기가 될 뭔가가 지금 당신의 일상 속에서 당신의 특기로 연마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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