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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성경의 방언은 이방인들의 구원과 성령받음을 확증하는 표적이었다. 구약 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넓게 열리지 않았다. 물론 구약 시대에도 소수의 이방인들이 스스로 이스라엘 민족에 합류함으로서 더불어서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음의 말씀은 출애굽 당시에 다수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행동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따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가량이요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하였으며”(출 12:37)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세계 만국의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자 영원전부터 작정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실 것이라는 내용이 자주 나타났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면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사 66:18,19)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면 더 빨리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로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완고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박대하였고, 이방인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는 안 될 천한 존재로 취급하였다. 지중해 연안의 여러 이방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사도 바울의 선교 활동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생명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였던 사람들은 바울의 동족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바울을 학대하며 죽이려 하였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들이 멸시하여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고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영적인 전염병과 같았다. 그래서 청년 사울을 아무 양심의 가책없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그리고 그가 개종하여 사도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을 때 다른 유대인들이 그를 사교집단의 선구자로 간주하여 동일하게 핍박하였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행 24:5)


유대인들이 바울과 그가 전하는 복음을 더욱 더 박해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천한 이방인들과 연관되게 하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버려져야 한다는 선민사상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이 더욱 더 밉고 가증하게 보였다. 오늘 우리들의 삶과 상황 속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도 없고 체험할 수도 없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바울과 그의 복음의 친구들이 이방인들의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교회를 개척할 때마다 유대인들에게 당한 학대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였다.


성경의 방언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표적이었다. 성경의 방언은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적인 경고의 메시지였다. 유대인들이 배척하고 학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을 받았음을 증거하는 표적이었다. 오직 유대인만 하나님과 관련되었다고 여겼던 완악한 유대인들에게는 경악스럽게 다가오는 심판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설명되는 방언이 나타날 때 유대인들이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되었음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찬송하는 현상은 충격적이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하여 성령을 주시고 자녀로 삼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이방인들을 배척할 것인가?”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었다.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님와 하나님을 높이는 방언이 나타나는 것을 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이방인들의 변화된 영적인 신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방인들을 자녀 삼으셨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세례를 베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인들을 주 안에서 형제로 인정하며 교제를 나누어야만 하였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행 10:45-47)


성경의 방언은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드로만 방언을 이렇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도 성경의 방언을 이렇게 이해하고 가르쳤다. 방언에 대한 혼란과 미혹이 퍼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은 방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행 14:21,22)


바울은 ‘율법에 기록된바’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의 의미를 구약 성경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서 설명한 것이다. 바울이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한 부분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구약 성경의 어느 부분에 바울이 인용하는 방언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일까? 구약성경 이사야의 말씀에서 그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 28:11)


성경의 방언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이해와 지식을 가졌던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방언의 기원과 의미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의 글 속에 나타나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방언을 이애하는데 이 보다 더 중요하고 권위있는 자료는 없다. 혹 다른 구절에서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애매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바로 이 부분의 명확한 가르침이 최고의 중시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죄악을 책망하였다. 그 와중에서 장차 하나님께서 장차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과 선물을 주신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여도 끝내 듣지 않는 완악한 이스라엘을 더 크고 중한 방법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이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유대인들로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 민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일종의 저주의 예언이었다. ‘생소한 입술’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 사람의 말하는 모양이고, ‘다른 방언’이란 그 사람들이 언어를 뜻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자명하게 이해된다. 기원전 586년에 이스라엘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군대의 침략을 받아 패망하였다.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이방인 국가 베벨론 제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행하신다는 뜻이었다. 죄악과 불순종에 빠져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외국 군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실현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였고, 역사 속에서 그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사야의 그 예언을 인용하였다. 과연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인 교만한 유대인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셨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책망이 유대인들에게 또 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외국 군대를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책망하였던 이전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더 심각한 영적인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다. 교만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 대신 순종하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자녀로 삼으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이방인들의 포악한 군대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예루살렘을 파괴하게 하였지만, 이번에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다. 순종하는 이방인들이 거역하는 유대인들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서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된 것이다. 하나님의 촛대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옮겨졌으니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이 집행되어졌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성경의 방언이었다. 겸손하고 순종하는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이방인들의 언어의 방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것이다.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방언이 나타나는 것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오직 예수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선포하는 이적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방언은 유대인들이 밀집한 곳에서 나타난다. 어떤 유대인들은 이방인 언어의 방언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 회개하고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그럴지라도 믿지 않았다. 이 사실이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모두 예언되었고, 바울은 그 내용을 인용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방언의 의미를 가르쳤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입에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다양한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높이는 방언이 나타나는 것을 주목하여 보아야 할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고 설명되어지는 전래없는 이적을 보고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던 무지와 교만을 회개하고 예수님께 마음으로 굴복했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성경의 방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표적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우리 주변의 무지한 방언파 은사주의자들은 여기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단순히 교회 다니지 않는 우리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앞에서 자신들이 방언기도를 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울랄랄라 릴리리리 아랄랄라!’ ... 이런 요즘의 방언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반 불신자들이 얼마나 나타나는지 어디 한번 실험해 보기를 바란다. 그런 소리를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반 불신자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은 그런 뜻으로 이 말씀을 주시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부하고 배척하는 유대인 불신자들이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님을 선전하고 높이는 방언을 보게하신다는 뜻이다. 그럴지라도 모든 완고한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심각한 기독교 속의 ‘신기’


성경의 방언의 최대의 의미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의 변화된 영적인 신분을 증거하는 표적이었고,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인류를 구원하는 최종적이고 완성된 계시임을 증거하는 복음의 표적이었다. 성경의 방언은 기독교를 확립하였고,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입고 성령을 받았음을 확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는 신약의 교회를 성립하게 하였다. 이것이 성경의 방언이다. 지금도 방언을 하려면 이러한 방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유래없는 이상한 방언이 전 세계의 교회에 퍼졌다. 기독교가 확립되고 교회가 수립되면서 그 목적을 성취하고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던 성경의 방언이 1900년대에 들어서 이상한 모습으로 부활하여 온 세계에 급속히 퍼졌다. 이상한 이단사상에 물든 지극히 불건전한 자들을 통하여 시작된 이 현상이 불과 수 십년 사이에 전 세계의 교회 속으로 주입되었다. 


많은 부흥사들이 자신이 언제, 어떻게 ‘성령체험’(?)을 하였다고 은근하게 자랑한다. 그런 그릇된 설교를 듣고서 신앙을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덩달아서 성령체험을 하려고 산으로 올라가 소나무 뿌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성령체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성경의 방언을 모조하는 이상한 방언을 받는 것으로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성령을 체험했고, 능력을 얻었고, 영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방언은 모든 은사의 시작이고 영의 세계의 관문’ ... 이런 낭설에 포로되어 자기의 영혼을 망치기 시작한다. 기독교 안에 편만하게 퍼진 이 ‘신기’를 깨닫고 분별하는 사람이 지금 한국 교회 안에 얼마나 될까? 교회 속의 ‘신기’를 제거하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엘렐렐레 우랄라스데!”

“릴릴릴리 릴리리리!”

“우알랄라 히잇빠빠!”


요즘에 방언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면 주로 이런 유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이런 방언이라고 했다고 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포악한 유대인들이 이 모습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자 해외 출장도 주저하지 않았던 유대교의 검사장 사울이 그 장면을 보았다고 하자.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과연 하나님이 의도하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을까?


“아하!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구나! 이후로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이방인들을 멸시하지 않아야 하겠구나!”


나는 성경의 방언이 지금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100% 단정하지 않는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그 방언을 선물하여 주시면 좋겠다. 그러나 과연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성경의 그 방언을 볼 수 있겠는가? 지금 그 진짜 방언이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확립되었고,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유대인들에 관한 논쟁도 더 이상 이슈(issue)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의 방언이 나타나야 할 근본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방언을 말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다. 과연 바울이 말했던 방언은 어떤 방언이었을까? 혹시 요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런 종류의 방언이었을까?


“히빠빠빠 오로랄랄라! 릴 리리리리리!”


바울이 이런 소리에 능했다고 믿는 것은 기독교를 우습게 여기는 태도이다. 바울이 이런 소리에 능하였다고 하자! 그것이 그의 선교에 무슨 유익이 되었겠는가? 선교지의 어떤 사람이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그런 소리를 듣고 복음의 은혜를 깨달았겠는가? 과연 그런 소리가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은혜가 주어졌음을 증거할 수 있었겠는가? 바울이 이런 소리에 능하였고, 그런 소리로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자란 사람들이다. 하기야 나도 이전에는 그랬으니 누구를 비판하랴! 우리들이 모자란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쉽게 생각하도록 하자! 바울이 방언을 말하는 능력을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지, 언제 방언으로 기도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는가? 바울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외국어를 더욱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연금생활 할 때에도 로마의 군병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로마의 언어를 잘 구사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만났을 때에는 히브리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행 21:40). 터어키에서 출생하고 자랐으니 터어키의 언어도 당연히 잘 구사하였을 것이다. 평소에 늘 스페인 선교를 늘 꿈꾸었던 것으로 보아 스페인 말로 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롬 15:23, 서바나). 그리이스어로 성경을 기록했으니 그리이스 말도 잘 구사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노라.”(고전 14:5)


이 구절을 가지고서 바울과 요즘의 방언기도라는 이상스런 현상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지하다. 성경을 모르는 소리이다. 고린도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상주하였던 거대한 상업도시였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8장에 나타난 바울의 고린도 선교를 살펴보면 고린도에도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 있었다. 바울은 그 회당을 거점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유대인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회당을 떠나게 되었다. 다행이 예수를 믿게 된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교회개척 사역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집은 유대인 회당장 그리스보가의 집 바로 옆집이었다. 얼마 후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행 18:8)


유대인의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고린도에서 나타난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님을 전파하는 방언이 회당장 그리스보가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방언은 항상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이 밀집한 곳에서 나타났거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자녀로 받으셨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나타났다. 최초의 방언인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유대인 사도들과 제자들이 이방인 언어를 말하는 방언이었고, 그 장면을 다양한 이방인들의 나라에서 살다 예루살렘에 찾아온 많은 불신 유대인들을 목격하였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완전한 구원계시라는 사실과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되었음을 동시에 증거하셨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 사실을 아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의 방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건은 사도행전 10장에서 일어났다. 이방인 고넬료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독교의 중심인물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들에 의해서 목격되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예수님을 높이는 현상이 나타나자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자녀되는 은혜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차별이 없어지고 오직 예수믿음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교회를 세우는 기독교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행 10:47)


사도행전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에베소 교회의 방언도 같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에베소에는 복음을 거역하는 완악한 유대인 패당이 있었고, 그들이 교회와 바울을 심하게 훼방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전한 구원계시고, 은혜가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에게 이동되었음을 보이는 방언이 나타난 것이다. 성경의 방언은 이렇게 이해되어야 한다.

고린도에서는 더욱 방언의 은사가 많이 나타났음을 고린도 전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에게서 성경의 방언, 즉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전파하는 현상이 나타남으로서 어떤 유대인들은 새로운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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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3019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035
»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104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49402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6944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112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329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7550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6764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7996
28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1133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29780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0977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015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6155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7349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026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5845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7738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7841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8799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365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9294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5577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060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071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7937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170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5801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7904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6630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551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6801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8932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8187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376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228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