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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기

조회 수 640 추천 수 0 2017.03.18 04:02:24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변덕이 없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안정된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믿음은 그 사람의 성품과 마음을 통하여 표현됨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의 믿음은 결국 함께 출렁이기 때문이다.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가 자세가 일정한 사람이다. 지나치게 자주 요동을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먼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참 믿음직하다! 언제가 믿을 수 있다!”라는 칭찬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도 큰일을 위해 그 사람을 들어서 쓰실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꾼으로 발탁되는 원리는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가 자신의 무기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아침에는 작동하지만 오후가 되면 잔 고장이 나며 애를 먹인다면 누가 그런 무기에 자신과 군대의 운명을 걸겠는가? 여름에는 그 성능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추운 겨울이 되면 자주 고장이 나는 총이 있다고 하자. 전쟁이 그 총에게 유리한 여름에만 일어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날지라도 항상 일정하지 못하면 절대로 좋은 총이 아니다. 

그래서 무기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새로운 총을 개발하면 흙탕물 속으로 집어 던져 본다. 영하 40도 의 냉동실에서 얼리고, 모래를 바닥에 내 동댕이치고, 뜨거운 수증기가 들끓는 한증막에 두기도 한다. 그리고 꺼내어 방아쇠를 당겨본다.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총알이 일정하게 발사되면 합격이다. 드디어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새로운 소총이 탄생하였다고 공표한다. 그 무기가 드디어 일선의 병사들과 함께 조국의 행복을 지키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 없는 악 조건의 실험 속에서 일정한 성능을 보이는 믿을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위해 선택받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갑자기 선발되지 않는다. 이미 그 전에 “너의 믿음의 총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일정하게 발사되고 있다!”라고 판정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일을 위해 쓰임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는 그때 갑자기 벌어지는 일로만 보일 뿐이다. 

최근에 우리 집의 자동차 한 대가 나에게서 믿을 수 있다고 인정을 받았다. 97년에 생산된 Toyata Camry이다. 거의 30만 마일(45만 km)을 달린 늙은 자동차이다. 지 난 해에 한국으로 떠나신 성도님께서 주고 가셨다. 그 동안 길에서 몇 차례 서 버렸는데, 그때마다 이 물건을 버려야 할지 살려야 할지 고민했다. 이제는 원래 공장에서 타고난 부품은 몇 개 남아 있지 않고 대부분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97년생인 나의 이 늙은 말의 실제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겉을 보고서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묘한 자동차!, 그것이 바로 나의 97년생 Camry이다. 

그래도 언제나 장거리를 떠날 때에는 항상 불안했다. 중요한 부품들을 많이 교환했을지라도 자동차의 부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라도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속도로 상에서 기능이 죽어버리면 얼마나 낭패이겠는가? 실제로 지 난 해에 세 번이나 전혀 예고도 없이 그만 도로에서 죽어버렸다. 그때마다 towing car를 불러서 이 물건을 정비소로 보내고,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여 집으로 오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이번에 아주 먼 거리를 달려야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다. 그 동안 공을 들였던 이 늙은 말을 타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못 믿을 바에는 없애야 하고, 없애지 않을 바에는 믿어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자그마치 왕복 14시간이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거뜬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소음기가 낡아서 내쉬는 숨소리가 좀 요란한 것만 빼면 아주 좋았다. 핸들과 앞바퀴 사이의 조향과 관련된 부품들이 헐거워 졌다는 느낌 외에는 문제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는 언제든지 나를 위하여 큰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고자 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야 한다. 큰일에 쓰임 받고자 하면 더욱 그래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어주려고 해도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큰일을 맡기시겠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 믿음의 성능이 언제나 일정해야 한다. 언제나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자주 요동하지 않아야 하고, 언제나 비슷한 믿음의 평균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를 통하여 원하시는 큰일을 이루어 내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록 그 믿음이 뜨겁기는 하지만 늘 한결같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믿음의 기복이 심하다. 특히 어떤 여성도들은 그 믿음이 조석으로 변덕을 부린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믿어보겠다고 편지를 보내고 전화도 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어둠침침한 구석에 그 믿음이 꼬라박혀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목회자들이 무슨 말인지 다 알 것이다. 그래서는 크게 쓰임받지 못한다. 뜨겁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 가야 한다. 일정하게 믿음이 일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언제나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큰 믿음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절대로 안 된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쓰임받은 요셉을 보라! 당시 이집트는 모든 면에서 세계최강의 나라였다. 그런데 그 나라에 노예로 팔려왔던 사람이 그 나라에서 2인자가 되었고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다. 가나안 땅의 한 유목민의 막내아들이었고 형들의 미움을 받아 비참하게 버려진 그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만드신 기적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우연한 기적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일정하고 꾸준했던 요셉의 믿음으로 인하여 나타난 기적이었다. 

어린 그에게 갑자기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다는 것, 아버지 야곱이 그에게 “채색 옷”(창 37:3)을 지어 입혔을 정도로 사랑을 독차지 했다는 것이 그의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팔려가는 어린 노예로 그 신세가 추락해 버렸다. 그때 한 탐욕스러운 노예 상인의 값나가는 물건이 되어 끌려갔던 요셉의 심정이 어땠을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 39:2).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과 자세는 어디에서나 일정했다.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팔레스타인의 한 부잣집의 사랑받는 막내아들이었을 때에나, 이집트의 한 권세있는 집의 노예일 때에나 그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변한것은 오직 그의 주변의 환경뿐이었다. 변덕과 기복과 요동이 없는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노예인 요셉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여주인의 은밀한 제의를 받게 된다. 신세를 고칠 것 같고, 어쩌면 노예의 신분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요셉은 그때에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바른 믿음을 단단히 지켰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믿으신 것이다. 괜히 세계의 중심국가인 이집트의 총리로 발탁되어 하나님의 세계 경영의 큰 일꾼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집트의 총리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그는 기근을 피해 찾아온 아버지 야곱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될 열두 형제를 살려낼 수 있었다. 총리가 된 요셉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가 되었던 사람이니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큰 일꾼이 또 있겠는가? 과연 무엇이 그를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언제 어디서나 꾸준하고 변함이 없는 믿음이었다. 한결같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믿으신 것이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였던 욥도 일정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유지했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 살았던 그가 하루 사이에 전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었다. 그리고 끝내 사랑하는 자식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불행을 당했다.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한 세월이 그에게 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불행을 당하면 믿음이 흔들린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종교인들의 자살 비율이 매우 높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자살한다.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욥이 당하였던 상황을 만나면 자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가벼운 불행을 만날지라도 쉽게 인생을 포기하고 있다. 불행한 상황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상황에서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반쪽의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욥은 온전한 믿음을 가진 위대한 큰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전에 행복했을 때에도 예배하기를 기뻐했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기를 힘썼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상의 어전회의에 끼어 앉아 있었던 마귀에게 자랑하셨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마귀는 욥이 하나님께로 선물로 받은 돈과 건강과 형통 때문에 하나님을 잘 따른다고 참소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서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그의 믿음이 항상 일정할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모든 재난과 불행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은 사실이었다. 그 모든 고난을 당하였지만, 심지어 그 아내가 그렇게 바가지를 긁었어도 욥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항상 신실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요셉처럼 믿음이 일정해야 한다. 욥처럼 믿음이 불행 중에서도 꾸준해야 한다. 항상 그런 수준의 평균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한 가지 큰 오해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형통으로 은혜를 판단하는 못된 악습이다. 겉모습이 그 속의 영적인 실체는 아니다. 참 믿음과 꼭 형통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분위기가 뜨겁고 계속 사람이 몰려온다고 하여 꼭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라고도 할 수 없다. 재정이 빈약하다고 하여 꼭 영적으로 힘이 없는 교회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을 보고서 속을 알았다고 한다. 보이는 것이 실체인 것으로 믿는다. 분위기가 뜨겁고 사람들이 늘면 건강한 하나님의 교회라고 속단한다. 재정까지 풍성하면 더욱 하나님이 쓰시는 참된 교회라고 말한다. 누가 쉽게 이런 미혹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중심을 잡을 수 있겠는가? 누가 바르게 보고 옳은 길을 짚어내면서 이 시대의 교회들의 영적인 나침반이 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바로 진정한 큰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보이는 겉모습을 초월하는 보이지 않는 진리를 찾아가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스데반 집사가 어떻게 살아가 갔는가?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 하나님을 너무나도 잘 믿었던 다니엘이 무슨 일을 당했는가? 사자 굴에 던져졌었다. 하나님이 쓰신 최고의 선지자였던 세례 요한의 생애는 어땠는가? 음란하고 간교한 모녀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하고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한 바울의 인생을 어떠했는가? 늘 매질 당했고, 감옥에 갇혔고, 결국 교수형을 당하여 죽었다. 그렇다면 가장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괴로이 죽어가셨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 시대에 크나큰 영향을 남겼고, 역사 속에서 인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나침반들이 되었다. 그들보다 더 큰 믿음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보기에 실패자들이었고 아무것도 아닌 처량한 인생들이었다.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 큰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는 현실을 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산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면 보이는 현실에 의해 그 믿음이 출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큰 믿음의 사람들의 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 외로운 길을 따라간다. 큰 믿음의 사람들의 영혼 속에 심긴 GPS는 보이는 현실을 짚어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원한 진리를 찾아서 따라가게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경외한다. 그래서 큰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은 언제가 일정하고 꾸준하고 변동이 없다. 그것이 큰 믿음의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가장 대표적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처절하게 버림받는 자리에서 외로움과 수치와 슬픔을 당하시며 죽었다. 그러나 죽으시는 순간까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호흡이 끊어지기 직적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했고 사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다음의 말씀을 남기고 죽으셨겠는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큰 믿음의 우선적인 증거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성취가 곧 큰 믿음의 증거라 믿으면 시험과 갈등만 커진다. 큰 믿음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큰 믿음이다. 

우리가 아직 크게 쓰이지 못하는 것은 그런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외로워도, 힘들어도, 아파도, 무시당해도 요셉처럼, 욥처럼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그런 사람 보기를 애타게 바리시면서 찾으시고 계신다. 우리 모두 언제나 변함없는 믿음의 성능을 드러내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큰일을 맡겨주시는 일꾼들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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