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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

조회 수 189 추천 수 0 2018.05.27 00:41:49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swards, 1703~1758)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써 보려고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차 대각성 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의 중심인물이다. 너무나 중요한 일을 이끌었던 유명한 인물이니 연구해 보면 얻을 것이 많을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의 화두는 부흥이다. 한국교회가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한지 오래되었다. 정체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징조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부흥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부흥의 원리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는 원죄의 효력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의미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대해서 부정하는 등의 심각한 이단성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피니를 중심으로 진행된 2차 대각성의 의미를 신뢰할 수가 없다. 또한 찰스 피니는 부흥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부흥을 일으키는 적합한 수단들을 인간이 적절하게 활용하면 부흥이 일어났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더욱 더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을 신뢰할 수가 없다.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부흥은 기적도 아니고 기적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수단들을 적용함으로 발생하는 다른 어떤 효과들처럼, 부흥은 순수하게 합법적인 수단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철학적인 결과이다.”1)


“나는 부흥이 적절한 수단들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결과라고 믿는다.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단들은 반드시 부흥을 일으키는 자연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2)


그러므로 자연히 조나단 에드워즈가 주역이었던 1차 대각성 운동에 대해 더욱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최근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한 인물에 대한 많은 연구 작업이 활발하게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에드워즈가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 작업을 조합하여 집대성한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 대한 경험과 부흥에 관하여서는 에드워는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의 그 어떤 유명한 인물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경험과 부흥 운동에 관해서는 에드워즈의 옆 자리에도 앉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대체 에드워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우리는 에드워즈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그 사람을 바르게 보게 되는 것일까? 지금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에드워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과연 정확하고 올바른 내용들일까?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가 쓴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책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의 서문을 보니 지금까지 적어도 16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에드워즈의 생애, 목회, 사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전문적인 책들과 논문들을 썼다.

 

  
이안 머레이(1931 ~ )


에드워즈에 대한 최초의 책은 그와 동시대의 사람이었고,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알고 지냈던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 1721-1803)이 1765년에 출판한 <Life and Character of the Late Reverend Jonathan Edwards>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에드워즈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을 잘 다루고 있기는 해도 분량이 너무 적어 에드워즈에 대한 충분한 정보들을 전달하기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작품이었다.3)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두 번째 책 <Life of President Edwards>이 에드워즈의 증손자 스리노 드와이트 에드워즈( Sereno Edwards Dwight, 1786-1850)에 의해 1829년에 출판되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가 에드워즈의 증손자였으므로 에드워즈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담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계속 나타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생애를 기술하는 많은 책들의 기본적인 흐름과 내용들이 대부분 이 책에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4)


어떤 사람이 에드워즈의 신앙과 사상을 격찬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면, 그 후에 또 어떤 사람이 그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내가 파악한 바로는 지금까지 총 16명의 전기 작가들과 신학자들이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책들과 논물들을 출판했다. 가장 먼저 나온 책은 사무엘 홉킨스이 에드워즈가 죽고 7년이 지난 1765년에 출판한 <Life and Character of the Late Reverend Jonathan Edwards>이고, 가장 최근에 나오는 책은 조지 마스댄(George M. Marsden)이 2004년에 출판한 <Jonathan Edwards. A Life>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신학이 후대의 교회사가들과 신학자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런데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을 평가하는 후대의 전문가들의 의견과 입장은 말 그대로 극과극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남긴 에드워즈에 대한 극찬하는 말들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에드워즈의 사상과 신학을 평가절하하면서 악평하는 몇 사람의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윌리엄 엘러리 체닝(William Ellery Channing)은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칼빈주의는 이미 정오를 지나 기울어져가는 태양과 같고,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5)

올리버 웬델 홈름즈(Oliver Wemdell Holmes)도 에드워즈의 사상을 평가절하는 차원에서 “만일 에드워즈가 몇 백 년 후에 태어나서 더 많은 자유의 공기를 마시면서 살았다면, 그가 이전 시대의 미개하고 야만적인 주장들을 설교를 통해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6)


올라 윈슬로(Ola Winslow)도 에드워즈의 신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에드워즈는 낡아빠진 구식 신학체계에 갇힌 죄수였고, 그의 정신적 결박은 비극적 동정심(a tragic pity)을 유발한다.”라고 말했다.7)


패리 밀러(Perry Miller)도 “에드워즈의 인생은 비극이었다 ... 자신의 그릇된 신앙 때문에 에드워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미쳤다.”라고 평가했다.8)

허버트 슈나이더(Herbert W. Schneider)도 “에드워즈의 탁월한 철학적 인싸이트(insight)는 그의 그릇된 신앙으로 인해 망해버렸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신앙의 원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일이지를 알지 못했다.”라며 에드워드의 부흥과 신앙 사상을 악평했다.9)


그 동안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칭찬과 숭배 일색의 말들에 대해서만 익숙하게 들었다.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전문가들이 에드워즈를 악평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몰았다. 우리가 존경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악평하고 조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를 한 없이 존경하고, 또한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를 미워하고 극렬하게 싫어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오직 한 가지일 것이다. 에드워즈를 평가하는 각 사람의 신앙이 원인이다. 에드워즈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에드워즈가 글을 통해 신앙을 더 배우고자 노력하며 그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드워즈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가 남긴 글을 지극히 싫어하면서 그의 신앙과 사상을 멸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하의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모든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악한 욕망이다. 그것을 에드워즈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믿음의 DNA를 부여받은 사람들끼리 함께 진리를 위해 뭉치는 것이다. 신앙의 DNA가 다르면 절대로 힘을 합하고, 서로 격려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비판하고 있습니까? 

 

--- 각주 ---

1)Charles G. Finney, Lectures On Revival (Dickinson, ND: RevivalPress.net, 2016), p.9.
2)앞의 글.
3)Isian H. Murr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96)의 “Introduction: On Understanding Edwards”
4)앞의 글.
5)앞의 글.
6)앞의 글.
7)앞의 글.
8)앞의 글.
9)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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