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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OP의 24/365 중보예배

조회 수 10578 추천 수 109 2010.12.15 02:45:14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마이크 비클은 미국 미조리 주 캔자스 시티에 있는 국제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의 대표입니다. 국제기도의 집은 “다윗의 장막”의 영성을 가지고 24시간 “중보예배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1999년 9월 19일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기도실 안에서는 예배와 중보기도가 단 한 번도 멈춰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 글은 마이크 비클 목사가 저술한 한 책의 겉표지에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IHOP을 홍보하는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IHOP은 24시간 기도를 쉬지 않는 곳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 365일 동안 그렇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IHOP을 엄청나게 신령한 곳으로 생각한다. IHOP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는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하는 곳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IHOP과 관련되면 당연하게 받아드려진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의 교회와 선교기관에 새로운 활력을 공급하는 기도와 찬양의 발전소가 되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영력을 공급하는 곳이 IHOP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뜨거운 현장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처에서 날고 달려서 캔자스시티로 가고 있다.

<많이 기도하고 찬양하면 무조건 신령한가?>  

그동안 IHOP에서는 교회들을 당혹스럽게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다른 곳에서 그랬다면 이미 결판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IHOP과 관련되면 이상하게 더 복잡해지고, 옳다! 그르다! 목소리만 커지면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이것도 IHOP의 24시간 365일 연속되는 기도와 찬양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곳을 함부로 훼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은근히 널리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전의 IHOP에 대한 글을 읽으신 한 Ihoper는 제일 먼저 다음과 같은 말을 나에게 남기셨다.

“정 목사님은 엄청난 비판과 오류의 죄에 거하고 계신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대중을 목사님의 의견으로 이끌고 계시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을 후에 깨닫게 되시면 너무 늦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억울하게 악한 영을 받은 자라고 몰리는 것에 대해 신원해 주실 것입니다. 역사는 꼭 진리를 증명합니다. 두고 보시라!”

기도하는 곳을 훼방하면 후에 크게 신세를 망칠 것이라는 말이다. 24시간 찬양과 기도를 쉬지 않는 IHOP에 대해 조금 이라고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진실을 말하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IHOP이 쉬지 않고 중보기도에 힘쓴다는 사실과 계속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은 우리도 가서 배우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도와 찬양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 기도와 찬양이 드려지는 상황, 분위기, 동기, 정신, 신학적 모티프 ... 이런 요소들을 잘 살펴야 한다. IHOP의 중기도와 찬양에 대한 일체의 신학적 의문사항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IHOP의 24/365 기도예배는 단지 그들의 그릇된 종교로서 그치게 될 것이다.

<기도와 찬양에 관한 바른 정신이 중요하다!>
  
찬양은 음악이다. 음악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찬양이 잘못되면 더 이상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이 아니고 단지 시끄러운 노래일 뿐이다. 그런 노래는 교회에는 골치이고, 바른 목회자들에게는 두통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큰 재미를 누리는 자는 오직 그 이름이 S로 시작되는 그것일 뿐이다.  

“이는 무슨 소리? 어찌 찬양을 통하여 마귀가 재미를 누린다는 것인가? 이 양반이 자꾸 글을 쓰더니 이제는 별 소리를 다하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찬양인데!”라며 눈을 둥그렇게 뜨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조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뜨거운 기도이지만 실상 하나님과 관련이 없을 수 있다. 대단한 찬양이지만 실상 하나님이 싫어하는 느끼한 노래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없다면, 그 이상한 교회(?)들의 우리보다 훨씬 더 뜨거운 기도와 찬양은 어떻게 된 것일까? 특히 신사도 교회이 기도와 찬양에 관하여 우리보다 더욱 강하다는 점은 다 알려진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 집회의 기도와 찬양을 다 기쁘시게 받으시고 계실까?

그래서 기도와 찬양에 관한 바른 자세와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항상 염려스러운 성향을 보이는 신앙집단의 기도가 일반적인 우리들의 기도보다 언제나 특별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찬양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염려해야 할 부분인데, 반대로 이 점이 사람들을 끄는 큰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한마디 하려들면 곧 바로 이렇게 묻는다.

“기도를 얼마나 하십니까? 당신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그릇되었다고 말하는 일은 이처럼 괴롭고 힘들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IHOP의 24시간 365일 기도와 찬양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IHOP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이러저러한 내용들이 외부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실들이 알려질 것이다.

다음은 신학을 공부하는 한 청년이 IHOP에서 상당기간을 체류하면서 경험했던 IHOP의 24/365 릴레이 기도예배에 대한 짧은 간증이다.    

“먼저 IHOP이 자랑하는 24/7 시스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좋다고 난리인데 그럴 수 있죠.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와 민족, 정부와 가정, 교회를 위해서 24시간 계속 기도하는 운동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런데 ... 정말 순수한 운동일까요? 거기 있으면서 느끼는 건 염불 외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24시간 수 십 개 찬양팀이 돌아가면서 찬양을 하는데, 왜 이렇게 늘어지는 건지, 중얼대는 듯한 노래를 하더군요. 아! 딱 한 번 신나는 음악을 들려주던데 바로 "기뻐하며 경배하세..." 찬송가였죠. 찬양팀은 의자에서 조용히 찬양을 드립니다. 옆에 포도주와 비스켓이 있는데, 그냥 세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즈바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가끔 가다가 한 사람씩 나가서 강대상 같은 데서 서서 중보기도라고 그냥 맘 내키는 대로 기도하고 내려옵니다. 거기서 나오는 찬양에 다른 분들은 뿅 가시던데, 저는 머릿골이 깨질 것 같더군요! 이것이 제 개인적인 간증입니다.”

위의 내용이 IHOP에 대한 객관적이지 못한 한쪽으로 치우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은 IHOP의 찬양을 보여주는 다음의 영상을 보며 실제로 비교해 보기를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W0-quAkReA


위에 언급된 내용처럼,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IHOP의 찬양의 박자는 매우 느리다. 흐느적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분위기와 조명도 예사롭지 않다. 찬양드리고 기도하는 분위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요란스러워 보인다.

특히 노래의 짧은 가사를 수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와 음악은 인간의 정신을 무아지경으로 유도하는 신비종교의 모습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즉, 신접하게 만드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런 조명과 흐느적거리는 노래가 성령을 체험하기에 좋은 것들일까? 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유명한 IHOP에서 이런 분위기가 나타나는지 의문스럽고 불쾌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이 있는 곳이라며 IHOP에 대한 화려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 그 실상을 본 많은 사람들은 돌아와서 이렇게 우려를 전하고 있다. 과연 IHOP의 기도와 찬양은 일부의 특이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할까? 그들의 기도와 찬양의 자세는 과연 성경적이고 건강할까? 마이크 비클 목사는 언제, 어떤 계기로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 기도와 찬양 사역의 비젼을 품게 되었을까? 이런 점들이 매우 궁금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강한 기도예배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부분들이 반드시 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나는 미국의 은사주의 계열에서 발행되는 라고 하는 매체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Technically, the blueprints for IHOP were given years before its official launch on May 7, 1999. The idea for 24/7 prayer has been around since the days of King David, and God instructed Bickle to do “24-hour prayer in the spirit of the tabernacle of David” as early as 1983. “I had never conceived of such a thought,” Bickle says. “I didn’t have a clue what this meant.”

위의 내용으로 보면, 1983년에 마이크 비클은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라는 음성을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당시에는 그 음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1999년에 IHOP이 설립되면서 들었던 그때 비로소 그 음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일단 그가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안스럽고 이례적이다. 마음에 다가오는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선명하게 들리는 음성이었다고 한다.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 너무나도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단지 이것 하나를 가지고 IHOP의 24/365 중보기도예배가 불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2000년 교회사가 보여주는 끝이 좋지 않았던 염려스러운 일들의 양상과 패턴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시작은 밥 존스라는 선지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마이크 비클은 2009년에 발행된 밥 존스의 책 <너는 나의 친구라>를 위해 쓴 추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었다.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을 1983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밥 존스 목사님은 저에게 캔자스시티에서 24시간 예수님을 경배하는 청년 찬양 사역자들 및 음악가들과 함께 전 세계적인 청년 사역 운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의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찬양 사역자도 음악가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하루에 24시간 동안 경배 찬양을 하는 그런 사역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5년이 지난 지금, 밥 존스 목사님이 예언한 대로 매일 24시간 기도하는 국제 기도의 집(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이 세워졌고, 1500명의 전임 찬양 사역자들과 음악가들과 중보 기도자들이 이 사역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이크 비클이 밥 존스를 처음 만났던 1983년에 장차 마이크 비클이 운영하게 될 IHOP(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름도 없었으나)에서 24/365 중보기도예배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마이크 비클은 그 의미를 몰랐는데, IHOP이 시작된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신비한 음성을 듣고, 비범한 선지자에게서 예언을 받고 ... 이런 일은 성경이 완성되고 성령이 성도에게 내주하시는 신약시대의 일반적인 일은 결코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된 일이 과연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안전하고 유익을 줄 것인가? 에 대해서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걱정이 앞선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바꾸겠다!”>

1982년에 마이크 비클에게는 또 다른 유사한 일이 있었다. 1982년은 그가 미시시피 세인트 루이스에서 목회하던 때이다. 마이크 비클의 책 의 1장을 보면 그가 어떻게 선지자들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캔자스시티의 선지자들과 함께 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이상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로부터 예언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까지만 해도 그는 소위 예언사역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해 6월에 어거스틴이라는 한 선지자가 찾아와서 마이크 비클에게 중요한 말을 했다. 마이크 비클은 그 선지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마이크 비클이 캔자스시티로 이사 와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를 원하신다는 내용이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선지자의 방문으로 인하여 결국 마이크 비클이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캔자스시티로 이사하였기 때문이다.  

1982년 마이크 비클은 캔자스시티로 이사하기 전에 인도와 한국을 거쳐서 이집트의 카이로를 여행하였다. 그는 카이로에서 그는 매우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또 하였다. 카이로의 한 호탤 방에서 장차 캔자스시티로 이사하여 그곳의 선지자들과 함께 시작할 새로운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 신비한 음성이 그에게 들렸다. 비록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는 그 순간 하나님의 강한 권능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한 세대 안에 지구상에서 기독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들과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바꿀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이러한 음성체험이 과연 건강한 일인지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 한다. 과연 성령으로부터 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가 들었다는 음성의 내용이 결코 그냥 받을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of Christianity)를 바꾼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기독교에 대한 표현”(the expression of Christianity)를 바꾼다는 말을 무슨 뜻일까? 누가 보아도 기독교의 구조를 바꾸겠다(변질시키겠다)는 의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인터넷 신문의 댓글을 통하여 IHOP을 지지하는 어떤 사람과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그 음성의 내용이 나쁜 뜻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 오히려 밟혀 주님의 이름을 모욕받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사랑과 은혜가 체험되어지는 교회, 성경의 말씀이 그대로 살아 역사하는 교회로 세상에 나타나게 하겠다는 주님의 뜻으로 저는 듣습니다. 어떻게 정 목사님은 뜻 그 자체도 잘못해석하시지만 말씀 그 자체부터 전혀 다른 말씀으로 듣는지요?”

그래서 나는 당시에 내가 잘못 알고 섣불리 비판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 뜻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정중히 “기독교에 대한 모든 용어를 바꾸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님의 말씀이 맞을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이크 비클이 그런 음성을 들었다는 정보만 접했지, 그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은 보지 못했으니 제가 오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오해라면 그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라고 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불필요한 사과였다. 내가 우려했던 대로 그가 들은 음성의 의미는 기독교의 구조적 변형이나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들은 그 신비한 음성이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이전과는 달리 보이는 교회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는 표면적으로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달리 보이게 하겠다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 책에서 나타나는 마이크 비클의 사상은 철저하게 신사도운동가들과 동일하다. 구약성경 요엘서 2장에서 예언된 성령에 대한 예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지금 이 시대에 완전하게 성취되었다고 한다. 이는 지금 이 시대에 성령의 대 분출이 일어나고 있고, 예언적인 꿈과 환상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로서 대부흥이 일어난다는 신사도운동의 핵심적인 주장과 동일한 내용이다.

불신자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곧 성령의 대 분출로 인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성령의 이적과 기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불신자들의 경외를 유발하게 된다는 신사도운동가들의 허구적인 이론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마이크 비클이 이 책에서 카이로에서 들은 그 음성을 소개하는 8장에서도 그는 종말의 대부흥과 쏟아지는 성령으로 인한 이적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시대 안에 기독교에 대한 모든 이해와 표현을 바꾸겠다는 그 음성을 그는 신사도운동을 통하여 이상한 성령이 흘러넘치는 교회를 만들어서 세상에서 그 위상이 달라지게 하겠다는 말도 이해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성경적인 기독교의 교리와 시스탬에 구조적 변질을 일으키겠다는 불순한 내용이었고, Konglish로 “a dog sound”라고 하는 표현되어야 할 말이었다. 한마디로 듣고 말고 할 가치가 소리였다.

그에게 이러한 음성을 들려주는 영은 과연 어디로부터 온 영일까? 하나님이 보내신 영이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1982년에 찾아온 선지지의 예언을 받고서 세인트 루이스에서 캔자스시티로 이사할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해에 카이로에서 그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3년에 신사도운동의 대부 밥 존스 선지자와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또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 당시에 마이크 비클은 예언적 계시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성된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뜻을 좇아야 하는 신앙패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 신사도운동가들은 “그에게서 예언적 계시가 증진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귀신들의 미혹에 빠지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철길은 한 길이다. 부산과 목포로 가는 길이 대전에서 나뉜다. 대전에서 두  철길이 막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 손 한 뼘의 차이나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한 쪽은 부산으로 가고 또 한 길은 목포로 이어진다. 그 끝에서는 천리 길의 차이가 벌어진다. 마이크 비클의 지나온 영적인 여정을 보면 1982년에 대전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그 해에 오늘 날의 IHOP까지 연결되는 길로 진입하여 인생의 여정을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예수의 피가 뿌려진 성도의 몸이 법궤이다!>

이제 다른 중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라는 부분이다. 그것이 지금의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모티프가 되었다. 그 개념이 과연 신약 교회의 기도와 찬양의 신학적 모티프로서 합당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다윗의 장막이란 다윗 왕이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안치한 천막이었다. 법궤는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기 전까지 그곳에 약 40년간 머물렀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법궤를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다윗은 제사장들이 항상 그곳에 머물게 하였고,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또한 찬양하는 자들을 세워 쉬지 않고 찬양을 드리게 하였다(대상 15,16장).

구약 시대에 법궤는 하나님과 같았다. 하나님은 법궤를 통하여 모습을 나타내셨다. 대제사장이 법궤 위에 황소의 피를 뿌릴 때 하나님은 그 영광을 드러내셨다. 법궤가 있는 곳은 넓은 우주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대면하면 신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지만, 언제가 법궤가 있는 성전을 바라보았다. 모든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은 반드시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경배하였다. 다윗이 힘을 다해 법궤를 위해 장막을 만들고 제사장들이 항상 기도하고 찬양드리게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지금 법궤는 어디에 있는가?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있는 법궤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거처로 삼으시고 우리 속에 거하신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법궤가 있는 곳이 성전이었듯이 하나님을 모신 우리의 몸이 이제는 성전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물드는 순간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신이 임할 성전이 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황소의 피가 묻은 법궤에 친히 임하셨던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인간의 몸을 거할 처소로 삼으실 준비를 하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순절 성령강림은 법궤에 계셨던 하나님이 그 아들의 피로 구속받은 인간의 몸을 거처로 삼으시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예수의 보혈로 구속된 인간의 몸에 내주하시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행 2:17).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시게 하심으로 요엘서의 예언은 확실하게, 완전하게, 분명하게 성취되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들이 새로운 영적인 법궤가 되었다. 구약시대에 그렇게 소중하고 거룩하고 신성했던 법궤가 우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법궤는 우리 속에 있고, 예배 중에 있고, 우리의 기도와 찬양 중에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나무 궤짝 법궤가 있었던 다윗의 장막의 영을 들먹이며 기도하라고 했다면서 다윗 시대의 그 제사장들을 따라한다. 문짝만 아귀가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도 앞뒤 아귀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이 들은 소리는 신구약 속에서 아귀가 안 맞아 떨어진다.  

<당신은 더욱 존귀한 제사장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만이 법궤를 섬기도록 명하셨다. 그래서 다윗의 장막의 법궤를 제사장들이 밤낮으로 찬양을 부르며 섬긴 것이다.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법궤가 되었으니, 우리도 역시 제사장이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이 법궤를 지극히 섬겼듯이, 우리도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다. 오히려 우린 그들보다 더 존귀한 제사장들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벧전 2:9)라고 했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보다 더욱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제사장들이 바로 우리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무상자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었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체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 귀한 분의 손을 잡기만 해도 감격인데, 아예 하나님을 몸에 모시고 산다는 것이 우리는 얼마나 큰 은혜이고 광영인가? 그래서 우리더러 “왕 같은 존귀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려야 한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을 짐승의 살과 피의 제사를 드렸다. 우리는 더 귀한 것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만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베인 삶 자체가 제사이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사를 올려드려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우리는 다윗의 장막이나 IHOP이나 ... 어디를 찾아갈 이유가 없다. 우리 자신들이 있는 곳 어디든지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되게하는 더 존귀한 제사장들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니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그 자체가 신령한 산 제사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의 몸이 영적인 법궤라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깨닫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이 막중한 사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받으실 만한 신령한 산 제사가 드려지게 된다. 하나님이신 성령이 우리의 몸속에 임하실 때에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산 제사를 드릴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런데 왜 그 위대한 권세와 사명을 내버리고 다른 거짓 제사장이 집도하는 프로그램화된 죽은 제사를 구경하려고 먼 곳을 찾아다니는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성령이 거하는 우리의 몸이 성전이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곳 어디든지 성전이다. 그러니 집에서 혼자서도 기도하고, 속한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연합하여 기도해야 한다. 어디에 가서 기도하고 찬양하면 특별한 기름이나 뭔가가 나온다는 것은 요설이다. 누구를 통해서 방출(released)되는 뭐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은 없거니와 있어도 정상이 아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참된 능력은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당신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잘 모시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매일의 산 제사를 잘 드리는 믿음 좋은 제사장으로서 성공하는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그 무슨 3000년 전 고리짝 시대의 다윗의 장막이라는 말인가?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라는 그 소리에 의미를 두고 따를 때에 필연적으로 두 가지 큰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성소의 향과 등불처럼 항상 기도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첫째는 기도와 찬양이 한 장소와 항상 끊어지지 않는 것이 목표로 삼게 된다. 마치 구약의 성전의 성소에서 24시간 365일 향이 타고 등불이 켜져 있었던 것과 같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의 법궤 바로 바깥 성소에서는 언제나 향이 피워져야 했고, 등불이 밝혀져야 했다. 지금 IHOP의 24/365 기도와 찬양 사역은 바로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항상 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장소에서 영원히 기도와 찬양 가운데 거하시게 하겠다는 발상은 복음의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한 장소를 지키면서 365일 기도와 찬양을 이어가는 정신은 구약의 성전의 정신이지, 신약의 완전하게 계시된 복음의 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비상하는 위대한 독수리로 지으셨는데, 우리 스스로 끈끈이에 발이 엉겨서 그 자리를 죽을 때까지 떠나지 못하는 파리로 전락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이다. 과연 한 장소를 지키면서 쉬지 않고 고정적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신약시대의 믿음에 합당한 모습일까?

물론 다윗의 때에는 제사장들이 매일 그리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순번을 정하여 그곳을 지켰었다. 그곳에서 기도와 찬양을 드렸다. 그 장소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때에는 당연히 그래야 했고,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며 상식이었다. 그곳에 법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생명있는 몸이 법궤가 된 시대이다. 그러니 구약의 고정된 나무 법궤의 시대와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는 달라야 한다. 그 옛날의 제사장들이 한 곳에서 쉬지 않고 기도와 찬양을 지속했던 그 사역을 지금 우리가 그대로 따를 일이 절대로 아니다. 누가 그런다고 칭찬할 일도 못된다.

그런데 IHOP은 자신의 건물을 중심으로 저런 일을 벌이고 있다. 신약의 성도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산 제사”(롬 12:1)를 오도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산 제사를 잘 드리도록 훈련되고 가르침 받아야 할 이 때에, 왜 3000년 전 법궤를 섬겼던 제사장들의 원시적 신앙을 따라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IHOP은 24/365 기도와 찬양을 쉬지 않는 신령한 곳이라는 날마다 더 높이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더 기도하지 말고, 그만 찬양하라는 것도 아니다. 나무 법궤 시대의 제사장들의 사역을 따라하지 말자는 것이다.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가 붉게 물들었었다. 죽으셨던 그리스도가 다시 사셨고, 성령이 각 성도 속에서 함께 하시고자 성령이 지상에 강림하였다.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로서는 꿈같은 일이 1000년 이 지난 후에 일어났다. 요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하시면서 숨을 거두실 때에 완성된 일이니 이미 2000년이나 지났다.

나이가 들어가면 새로운 세련된 것보다는 오래된 옛것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교회의 나이도 2000년이 넘어가니 다시 이전의 법궤와 동물의 피와 향과 등불의 시대로 돌아가 보고 싶은 걸까? 안 될 일이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고전 3:16)이며 “산 제사를 드려야 할 왕 같이 존귀한 제사장”(롬 12:1, 벧전 2:5)인 우리가 이전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법궤와 황소의 피의 제사장들의 뒤를 다시 따라서 3000년 전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교회들의 릴레이기도와 IHOP 24/365 사역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 날에도 모든 성도들을 동원하여 릴레이 기도를 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과 IHOP의 24/365 기도예배는 다르다. 보통 교회들의 릴레이 기도는 특별행사를 위한 한시적인 집중기도이다. 결코 구약의 성전의 제사장들처럼 자기의 교회에서 항상 하나님이 찬양과 기도 가운데 거하시게 하겠다는 취지로 시행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IHOP은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을 모델로 한다. 그 정신과 자세가 완전히 다르다. 집중적으로 기도하자는 취지와 하나님이 한 장소에서 24/365 내내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게 하자는 취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IHOP에서 하는 일은 십자가가 서지 않았던 구약시대에 성전에서나 일어나야 할 일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은 교회들의 릴레이 기도는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하나의 사역으로 하는 일이다. 그러나 IHOP은 우리 성도들이 속한 교회가 아니다. IHOP은 오직 24/365 기도예배를 위해서 존재하는 특별한 단체이다.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있어서도 안 되고, 그런 곳에 가서 깊이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IHOP의 24/365 기도예배의 정신은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르다.

교회들이 특별행사를 앞두고 연속기도를 자주 시행할 때에 가급적 한 장소에서 기도 바톤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으면 좋겠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연속기도에 참여하는 것이 더욱 바른 기도일 것이다. 벌티모아에 내 친구 권기창 목사가 부목사로 섬기는 빌립보 교회(담임 송영선 목사)가 있다. 그 교회가 성도들을 릴레이 기도에 참여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들었다. 그 교회는 기도를 마친 사람이 다음 주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날의 password와 함께 기도의 바톤을 넘긴다. 그러면 전화를 받은 성도는 자신이 있는 기도를 시작한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신 성도님은 대형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분이었다. 그는 운전 중에 전화로 기도의 바톤을 넘겨받고서 운전하면서 정해진 시간 동안 기도했다고 했다. 성령을 모신 성도들의 기도의 자세는 바로 이래야 한다. 마이크 비클은 당장 사람을 그 교회로 보내서 그런 건전한 연속기도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IHOP이 진행하는 24/365 기도와 찬양은 사도들이 가르치고 전한 복음에 합당한 일일까?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과 제자들이 기도를 위해 성전이나 회당이나 어떤 장소를 지속적으로 활용하였던 흔적은 보인다. 그러나 IHOP처럼 어떤 장소에서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처럼 순번을 정하여 24시간 365일 이어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조금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런 일을 가치있게 여긴 흔적이 바늘 끝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제사장들이 있었던 예루살렘의 성전을 늘 상 보았던 사도들은 제사장들처럼 릴레이 기도를 하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성전과 제사장을 구경도 못한 마이크 비클과 IHOPer들은 저러고 있다. 시대의 아이러니이다.

만일 그때 누가 베드로나 다른 사도에게 “우리도 성전의 제사장들처럼 자리를 정하고 연속으로 순번을 정하여 기도할까요?”라고 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너 미쳤구나! 예수님이 언제 그러라 하시더냐?”라고 사도들은 미리 준비한 것처럼 합창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도의 귀에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라는 음성이 들렸다면, 그 사도는 즉시로 “사탄아 물러가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천지사방을 쏘다니면서 전도하며 기도해야 하느니라!”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들린다고 다 듣는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이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들을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해야 똑똑한 사람이다. 특히 목회자는 그래야 한다. 나는 더 젊었을 때에 그러지 못해서 손해를 많이 보았다. 마이크 비클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보다 한참을 더 한 것 같다. 마이크 비클이 “사도적”이라는 말을 정말 그렇게 좋아한다면, 사도들처럼 기도해야 한다. 사도들은 전혀 그렇게 안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 것을 사모하면 마귀는 그의 것을 대신 채워준다!>

둘째로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라는 음성은 각종의 신비, 계시, 예언, 환상 ... 이러한 것으로 유인하는 마귀의 함정이다. 법궤가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한 장소였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임했다. 제사장들은 그 영광에 압도되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렸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와 위엄과 거룩과 영광이 나타났다. 쉬지 않고 다윗의 장막에서 기도와 찬양을 드렸던 제사장들은 그런 광경을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 당시의 제사장들의 감격을 다 알지 못한다. “다윗의 장막의 영(Spirit) 안에서”라는 말은 바로 그 시대의 제사장들의 감격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제사장들의 보고 느꼈던 일들이 다시 재현되는 기도와 찬양을 하라는 고약한 말이었다. 그것이 가능하고 건강한 일이라면 왜 막겠는가?

문제는 그때 다윗의 장막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임재가 이제 같은 방식으로는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법궤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실 때에 법궤만의 공간인 지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눅 23:45) 나오셔서 우리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사장들이 경험한 신비하고 감격적인 장면들은 하나님이 법궤에 거하실 때에 성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그래서 예수님은 크게 시비를 당하고 고초를 당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모두가 듣도록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궤를 담고 있는 돌로 지어진 성전은 더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새 성전을 지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우리의 몸과 교회를 의미하심이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통곡의 벽을 보면 그 당시의 성전이 얼마나 웅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것도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다윗의 천막에서 일어난 일이 지금 왜 중요한 것이겠는가?  

이미 2000년 전에 진리가 이리도 확고하게 드러났었다. 그런데 27년 전(1983년)에 다시 다윗의 장막에 법궤가 있던 시절의 은혜와 감동과 영광을 추구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라는 아리송한 지령을 마이크 비클이 은밀하게 받았다. 그리고 지금 IHOP에서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 도대체 그 지령을 내린 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과연 그런 지령이 아무 저항도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IHOP은 어떤 곳인가? 그들에게 예배와 기도에 대한 신학이라고 할 무슨 깜이나 꺼리가 있기나 할까?

“직통의 계시”, “예언의 영의 활성화”, “예언적 계시의 증진”, “능력의 대 방출”, “일상적 예언”, “국제통화보다 쉬운 하나님과의 교류”, “뻔질나게 등장하는 천사들” ... 이런 불온한 일들이 이미 그 음성 속에 내포되었었다고 보아야 한다. 마이크 비클이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하라”라는 그 요망한 소리를 뿌리치지 않고 들었던 그때에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1983년에 마이크 비클이 들었다는 그 음성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신사도운동을 시작할 준비를 미리미리 잘 해 두거라!”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질 때에 다윗의 장막의 영(Spirit)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게 된 것을 그들은 모른다. 이미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다윗의 장막의 영광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 못한다. 더 이상 일어나서도, 일어 날 수도 없는 일을 찾고 사모하면 마귀는 거짓된 그의 것을 채워줄 것이다. 그런 일이 지금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이크 비클은 신사도운동가이다!>

성령이나 기도에 관한 부분에 있어서 마이크 비클에게는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어 보인다. 이 부분에 관해서 그는 신사도운동가들과 일치된 자세를 가지고 있다. 신사도운동가들의 가장 중대한 오류는 구약성경 요엘서 2장에 대한 자세이다. 그들은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내용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신이 강림한 선지자들에게서만 예언과 꿈과 환상과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요엘은 하나님의 신이 마지막 시대에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친 백성인 된 새 인류(교회, 성도)에게 그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신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자녀, 늙은이, 젊은이, 남종, 여종은 각각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백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엘은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엘 2:28)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래 일, 꿈, 이상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신이 임했던 선지자들에게서만 나타났던 특수 현상이었다. 성령(하나님의 신)이 모든 성도에게 보편적으로 부어진다는 의미의 강조이다.

절대로 어린 주일학생들은 주로 예언하고, 노인 성도들은 꿈을 전문으로 꾸고, 젊은 청년 성도들은 환상을 도맡아 볼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신사도 운동가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나에게 따지는 어떤 분은 “주일학교 어린 자녀들이 예언하면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고, 청년들이 환상을 보는 것을 격려해야하고, 연로한 성도님들이 꿈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받아 전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충고했었다.  

요엘의 성령에 대한 예언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완전히 성취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딴 소리를 하면 반드시 이상한 곳으로 빠지게 되어 있다. 이는 건강한 신앙구조를 위해 너무나도 중요하다. 만일 사도행전 2장에서 요엘의 성령예언이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았다고 믿으면, 지금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예언하고, 천사를 잘 보는 이상한 사람들이 가장 믿음 좋은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쓰시는 가장 존귀한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그들이 바로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요엘의 군대”이다.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요엘의 군대는 기존의 죽은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바리새 영을 추방하여 생명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온 세상에 마지막 대 추수 운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종말의 군대이다. 한국의 그런 계통의 대표적인 교회의 목사는 사동행전 2장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은 요엘의 예언이 지금 가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마이크 비클도 같은 입장이다. 마이크 비클의 책 2장의 초반부를 보면 그도 다른 신사도운동가들과 이 부분에 관하여서 동일한 사상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요엘서 2장의 완전한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종말의 날의 직전의 수 십 년 동안 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마이크 비클의 또 다른 책 <요엘서>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2천 년 전에 예루살렘에 모여있던 약 3천명의 성도들에게 서 시작된 일은 마지막 시대에 전 지구적인 크기로 확장될 것이다. 작은 한 곳에서 시작된 일은, 성령의 폭발적인 증가가 최고 정점에 이르게 되는, 모든 육체 위에 임하시는 충만함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요엘은 성령께서 모든 나라 사람들 위로 임하실 것이며, 이 성령은 충만함 가운데 모든 교회들을 예수께로 이끌 것이라 예언했다. 요엘은 모든 육체에 영이 부어지되,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부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시간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며, 이 예언의 총체적인 성취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마이크 비클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시작에 불과했고 시간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눈사람처럼 성령의 역사가 더 큰 홍수를 이루고 바다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령의 폭발적인 증가가 최고 정점에” ... 이러한 표현은 도무지 동의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에 대해서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성령을 무슨 기계나 다이나마이트같이 표현하는 이러한 자세는 정말 싫다. 혹시 영어로 된 그의 책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위 글에서 발견되는 더 염려스러운 사실은 요엘서의 성령예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완성되었다고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전 지구적인 크기로 확장될 것이다”, “모든 육체에 영이 부어지되, 주의 이름을 부르지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확장되어 부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라는 말은 도대체 무엇인가?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분이다. 모든 인류에게 다 함께 하시지 않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을 입은 선별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가 단순히 성령이 전 지구를 덮고, 심지어 믿지 않는 자들까지 성령의 드러남이 확장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저의를 모르겠다. 과연 그의 말처럼 앞으로 거의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령을 모시게 될 것인가? 성경은 오히려 시대가 갈수록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적을 것이고,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이 부분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마이크 비클은 신사도운동가들과 동일한 말을 한다. 이 내용은 아무 구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임할 것임을 예언한 말씀이고, 사도행전 2장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종말의 때에 이 말씀이 성취될 것이며, 이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언의 영(The Spirit of Prophecy)이 부어지다고 한다. 예언사역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진실하게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환상이니 예언이니 천사니 ... 신사도운동의 온갖 신비적이고 불건전한 모든 현상들을 정당화시키는 신사도운동의 핵심적인 이론이 마이크 비클에게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성령에 대한 신앙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요엘 2장의 성령예언이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서 다 완성되지 않았고, 지금 점 점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성취되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핵심교리이고, 이것 때문에 직통계시, 예언, 천사조우, 환상, 사도 선지자 취임 ... 이러한 일들이 우리보다 더 영적수준이 높은 반열에 이른 사람들의 특권이라는 오해가 퍼지게 되었다. IHOP의 24/365 기도예배를 고안한 마이크 비클은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성령이 방출(Released)된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이 하와이에 있는 YWAM의 대표 Loren Cunningham을 만나서 선교와 기도운동에 관한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교와 기도운동의 통합”(The Convergency of the Missions and Prayer Movement)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다. 그 내용에서도 나는 너무나도 이상한 점들을 확인했다. 그는 “(하나님이) 권능을 release한다! 성령을 release한다! 라는 개념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이 권능을 풀어(방출)놓으시기(releases His power) 위해 사용해 오셨던 가장 중대한 수단은 중보기도이다”. “중보기도는 ... 권능이 풀려(방출)나오는 수단(the means of releasing His power)이다”. “하나님의 권능을 풀어 놓으시는(the central means of releasing God's power)”. “창세기 1장에서 성령을 풀어 놓으셨던 방식처럼(as the way  to release the Spirit's power in Genesis 1)”

나는 중보기도와 성령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친히 응답으로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뭘 방출하고 풀어놓음으로 응답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상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플로리다 부흥이라고 할 때 타드 밴틀리가 안수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중국 무협영화에서 보듯이 뱅! 뱅!하면서 손바닥으로 뭔가를 방출하는 자세를 영상에 자주 보았다. 그 당시에 “플로리다 대 방출”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했었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을 release(방출, 풀어짐)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성령에 관해서 마이크 비클도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기”나 무슨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처럼 왜 그런 말들을 왜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성령의 권능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시니 성령의 권능이 어디로부터 방출되거나 풀어진다고 말 할 일은 아니다. 성경은 성령에 관하여 단 한 번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주저하지 않고 이런 표현을 써내려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이런 종류의 언행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Sa Yi Bi”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마이크 비클은 “중보기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우리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이야기해드리는 것이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다시 하나님께 말씀해드리는 것이다” 라고도 하였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하나님께 들려드리는 것이 중보기도이고, 그 결과로 권능이 방출(released)된다고 하였다.

중보기도에 대한 이런 설명도 너무나도 이상하다. 혹시 이미 주신 약속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계속한다는 기도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의 개념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머리와 가슴이 너무 좁은 것일까? 또한 마이크 비클은 “중보기도는 다른 이들의 운명적 부르심과 소명에 관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듣는 자리이다”라고도 하였다.

이는 명백하게 중보기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언사역과 연관되었다는 뜻이다. 중보기도하는 입술이 곧 예언하는 입술이 된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중보기도하는 자리에서 동시에 예언이 임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나는 그 동안 종보기도 안 했던 것은 아닌데, 왜 예언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우리 주위에 많은 중보기도자들이 있지만, 그들이 다 예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서로의 “믿음의 주”(히 12:2)가 다르지 않고서야 왜 이럴까?

그는 중보기도는 이런 방식으로 성도를 하나님과 친밀하게 해 주고, 계시를 풀어주며, 상속받을 유산을 증가시켜 주고, 열방을 다스리는 자로 훈련되게 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알고 있는 중보기도와 그가 말하는 중보기도는 너무나 멀기만 하다. 지금 감기 때문에 가벼운 두통이 일어나는데, 그의 사상을 옮기려니 머리가 더 아파진다. 정상적인 목회자들과 성경학자들 중에서 그의 사상과 개념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새로운 것은 없고 빈야드 운동과 비슷하다!>

IHOP의 24시간 365일 중보기도예배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면서 감동받고 달라지고 있다. IHOP에서 머물며 오신 어떤 분이 이전의 글을 보시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분이 예수전도단에서 5개월 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많은 감동과 변화를 경험했었는데, 그 이후 IHOP에서 머문 한 달이 그 이상의 더 큰 변화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붙지 못하게 물을 뿌린다면 얼마나 성령께서 탄식하겠습니까? 정이철 목사님은 이런 일을 감히 하고 계시다고 저는 봅니다. 역사는 꼭 심판을 동반합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모든 이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이처럼 IHOP에 가서 뭔가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점점 깊이 빠지고 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존재가 아니고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하였다. 누가 한 말이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그곳에서 오래 살았으면서 염려스러운 장면을 전혀 못 보고 온 사람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르게 보고 온 사람들 중에는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은 그곳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하면서 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래 살았으면서도 전혀 IHOP의 문제를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신비이다.

그런 분들은 이제라도 다음의 영상을 통해 꼭 보기를 바란다. IHOP의 24/365 기도예배를 통하여 “방출된(released) 권능”에 취한 성도들의 모습이다. 무슨 권능이 어떻게, 얼마나 방출되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변한다는 말인가? 어쩌다 단 한번 있었던 현상이라도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영(Spirit)이 지금 IHOP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장면을 보고서도 IHOP의 24/365 기도예배 사역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 옛날 다윗의 장막의 제사장들을 본받아 벌이는 24/365 사역의 진정한 열매가 무엇인지 보기를 바란다.  

http://www.youtube.com/watch?v=HCXOSjBAeM8


영상에서 본 사람들이 이상한 분들이 바로 IHOP이 키워낸 주님과 친밀한 신부들이다. IHOP이 24/365 기도예배를 통해 그 동안 많은 기름을 성도들에게 분출하였다. 그 기름을 영혼에 묻히면 “주님과 친밀한 신부”, “신부로서의 정체성 회복”,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의 열정”, “신랑 하나님의 계시” ... 이런 현란하게 좋은 일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난 그 신부들의 모양이 너무나도 이상하고 괴상하다. 넋이 나간 것처럼 히죽거린다. 딸꾹질도 아니고 기침도 아닌데 등이 활처럼 꼬부라지면서 튀어 오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가? 전혀 짐작이 안 되면 빈야드 집회에서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 보이는 웃기고 섬뜩한 장면들이 들어있는 다른 영상을 함께 보기 바란다. 히죽거리고, 구르고, 스프링처럼 튀는 ... 이런 현상의 근원이 힌두교의 영성수련의 하나인 “쿤달리니 각성”(Kundalini awakening)이라는 것이고, 그 이방종교의 영이 토론토 축복(Toronto blessing)이라며 세계를 들뜨게 했던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을 통하여 교회에 침입해 들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eBpw2oQrvMM  

IHOP도 이미 이러한 영의 발판이 되었고 그리고 24/365 사역을 통하여 방출된 귀한 은혜인 것처럼 각색되어 전 세계의 교회들을 감염시키려 한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려면 밥 존스와 함께 신사도운동의 또 한 명의 전설적인 선지자로 알려진 폴 케인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1940년대의 신사도 운동의 조상 윌리엄 브랜험의 사역을 직접 경험하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이후 수 십 년 동안 잠적생활을 하고 있었던 폴 케인이 1987년에 마이크 비클을 찾아 캔자스시티로 왔다. 마이크 비클은 폴 케인을 통하여 그 옛날 윌리엄 브랜험 시절의 일들을 듣고 배우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친밀해졌다.

폴 케인의 예언 때문에 마이크 비클에게 또 한 번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폴 케인이 하나님께서 마이크 비클과 캔자스시티의 선지자들이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에 하기를 원하신다는 예언을 받아서 전했다. 그래서1989년에 캔자스시티의 선지자 예언운동파가 존 윔버의 빈야드 기름운동파와 연합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캔나스시티의 선지들의 예언운동과 토론토 빈야드 운동의 기름운동이 혼합되어 신사도 운동이 크게 확산될 준비를 마친 셈이다.

마이크 비클은 이후 존 윔버가 토론토 빈야드파로부터 분리할 때에 함께 떨어져 나왔고, 99년에 자신의 캔자스시티의 선지자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곧 바로 지금의 IHOP을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현재의 IHOP에는 이전의 선지자들의 예언운동의 DNA와 빈야드 기름부음 운동의 DNA가 모두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영상에서 보이는 저런 현상이 IHOP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저런 신부를 만날 바에야 차라리 영원히 장가를 안 가는 것이 낫겠다. IHOP은 좋은 천국 신부를 키워내는 곳이 아니라 가만두면 천국에 시집가서 잘 살 수 있는 멀쩡한 처녀들을 망쳐서 병신이 되게 하는 곳 같다. 나라면 좋은 신부를 얻기 위해 적어도 저 동네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무엇일까? 24시간 365일 계속 가동되는 그 유별난 기도와 찬양이다.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IHOP의 24/365 기도와 찬양을 신령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한다면 저런 느끼하고 이상한 신부들이 생산될 수가 없다. IHOP의 24/365 중보기도예배 사역을 경험한 사람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자태를 보여주었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IHOP을 의심하겠는가? 이 상의 여러 가지 이유들을 보건데, IHOP의 24시간 365일 기도는 결코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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