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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는 영국의 신대륙 코넥티컷(Connecticut) 식민지의 이스트 윈저(East Winsor)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미국 코넥티컷 주 지도를 보면 북쪽에 이스트 윈저가 있고 남쪽에도 사우스 윈저가 있다. 도시가 발전되면서 두 개의 도시로 나누어졌고 명칭도 달라진 것이다. 에드워즈가 태어날 때의 이스트 윈저는 현재의 사우스 윈저에 해당된다고 한다.

에드워즈의 아버지 디모데는 메사츄세츠 보스턴의 하바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694년 11월 솔로몬 스토다드의 딸 에스더와 결혼했다. 디모데는 이스트 윈저의 회중교회 ‘윈저 제2교회’(the Second Church of Windsor)의 청빙을 받았으므로 결혼 후 8일 만에 이스트 윈저로 이사하였다. 이후 디모데 목사는 62년 동안 그 교회에서 매우 안정적으로 목회하였고, 4-5 차례의 영적 각성을 일으켰다. 에드워즈는 아버지가 62년 동안 목회한 이 도시에서 1703년 10월에 태어났고, 1716년 예일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 에드워즈는 1754년에 출판된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이 정통 칼빈주의자라고 소개하였다.


“나는 붙들고 가르치고 있는 칼빈주의 교리를 철저하게 믿고 실천하고 있습니다.”1)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를 조지 휫필드 같은 칼빈주의 감리교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원래 감리교와 청교도 신앙 사이에 매우 유사성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에드워즈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감리교인들이 청교도 신앙서적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청교도 작품들을 통해 감리교인들은 엄청 많이 배웠습니다. 나는 한 번 더 에드워즈가 칼빈주의 감리교인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비록 에드워즈는 회중교회에 속하여 있었지만, 신앙의 특징으로 볼 때, 그는 근본적으로 칼빈주의 감리교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2)


‘종교개혁 신학’(the Reformation theology), ‘칼빈주의’(Calvinism), ‘청교도 신앙’(Puritanism)은 같은 의미이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은 종교개혁자 존 칼빈이다. 종교개혁 신학을 완성한 사람이 존 칼빈이고, 그가 완성한 신학 체계를 칼빈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신앙도 칼빈의 영향 하에 일어났다. 영국 국교회의 미온적 종교개혁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스위스에서 종교개혁 운동에 전념하고 있던 칼빈의 가르침이 전파되어 영국에서 청교도 신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청교도 개혁신학'도 같은 내용이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압박받던 청교도들이 자유로이 칼빈의 종교개혁 신앙을 실천하며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정착하였다.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에 정착하여 교회를 세우고 발전시킨 칼빈주의 사상이 청교도 개혁신학이다. 


1636년에 메사추세츠 보스톤에 세워진 하바드 대학도 원래는 청교도들의 신앙, 즉 청교도 개혁신학 연구를 위해 세워진 학교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만에 하바드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염려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1701년에 코넥티컷의 세 개의 도시에서 동시에 새로운 대학이 시작되었고, 목회자들은 이 학교가 청교도 개혁신학을 바르게 연구하고 전파해 주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에드워즈의 부모님들은 아들을 하바드에 보내지 않고 새로이 시작된 이 학교에 보냈다. 이 학교가 훗날 코넥티컷 뉴 헤이븐(New Heaven)으로 이전되었고, 명칭도 예일대학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대학이 원래는 청교도 개혁신학을 연구하고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였던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더욱 특별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으면서 동시에 놀라운 부흥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교회사에서 에드워즈에 필적할 신학적 지성을 갖춘 사람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에드워즈처럼 위대한 부흥을 주도했던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항상 에드워즈에게 더욱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즈가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무엇일까?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의 하나는 칼빈주의 신앙과 신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후 ‘웨민 고백서’)와 에드워즈의 관계이다.


2차 대각성의 중심인물 찰스 피니(Chalres G. Finney)는 인간의 원죄와 타락을 부정하는 펠라기안 이단(Pelagian heresy)이었다. 그러므로 찰스 피니가 칼빈주의 신앙의 교과서인 웨민신고에 동의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목회에 적용한다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피니는 웨민 고백서를 중시하는 칼빈주의 교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조롱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들을 권위 있는 기본 교리로서 받아들이는 자들은 교황의 가장 불쾌한 원칙들을 불합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들을 교황의 권좌에 올려놓고 성령의 자리에 두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의해서 작성된 도구를 19세기에 교회의 표준문서로 인식하거나 혹은 지적인 산물로 이해하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3)


그렇다면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에드워즈는 웨민 고백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졌을까? 웨민신고와 에드워즈의 부흥은 어떤 관련성이 있었을까? 에드워즈의 생애와 신앙을 기술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발견한 에드워즈와 웨민 고백서가 관련되어지는 내용을 시간 순으로 배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에드워즈의 자녀교육


에드워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에드워즈의 집을 자주 방문하였던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는 훗날 자신이 저술한 에드워즈 전기에서 에드워즈와 부인 사라가 자녀 교육에 관한 매우 능숙하고 섬세한 방법을 실행했었다고 기록하였다. 특히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에드워즈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홉킨스는 에드워즈는 토요일 밤이면 반드시 자녀들이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을 철저하게 이해하도록 가르쳤다고 기술하였다.4) 홉킨스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특별히 힘썼던 에드워즈가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행하지 않으면 나타나게 될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이 우리 눈에는 죄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 밖에 있게 되면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일 뿐이고, 어린 독사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어린 독사들보다 더 사악할 뿐이다.”5)


에드워즈가 자신의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활용했다는 것은 그가 신학적으로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2) 에드워즈 자신의 고백


1760년 7월 1일, 에드워즈는 23년 동안 목회했던 노스햄프턴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다. 이때 공식적 고별설교를 했으나, 이후 11월까지 약 11회 정도 설교를 더 하였다. 노스햄프턴교회 신자들이 에드워즈를 쫓아내는 데에만 급급했고, 이후의 설교자에 대해서는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낸 에드워즈에게 찾아와서 외부강사로서 설교해 달라고 부탁했고, 에드워즈는 응할 수밖에 없었다.


에드워즈는 그 기간 동안 다음 사역지를 찾았고, 에드워즈의 어떤 친구들은 에드워즈에게 다음 사역지가 생기도록 도움을 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서양 건너 스코틀랜드의 어스킨(Erskine)이었다. 어스킨은 에드워즈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스코틀랜드의 다른 친구들과 에드워즈 가정을 대서양 건너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로 초청하여 목회하게 할 것에 관하여 의논하였다. 그때가 1750년 7월이었고, 에드워즈의 나이는 46세였다. 에드워즈는 그 나이에 가족을 이끌고 대서양을 건넌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스코틀랜드로 갈 생각이 없다고 못 박지도 않았다.


에드워즈는 스코틀랜드의 어스킨과 다른 친구들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칼빈주의 신학을 원칙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중시하고 웨민고백서의 내용을 수용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6) 이것을 통해서 비록 에드워즈가 회중교회의 목사로 일생을 보냈기는 했으나, 그의 신학 사상은 칼빈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정통 장로교회의 신학 노선과 다름이 없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교회청지 체제에 대해서도 에드워즈는 장로교회의 장로제도가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회중교회였던 노스햄프톤교회에서는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일정한 자격을 가진 남자 성도들이 모두 모여 다 함께 중대사를 의논하였다. 에드워즈에 대한 신임투표를 할 때에도 남자성도들만 230명이 참여하였고, 그 중 23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에드워즈를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에드워즈는 장로교회의 장로제도가 훨씬 더 현명하고 성숙한 교회운영 방식이라고 신자들에게 설명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내용들을 볼 때, 에드워즈는 비록 회중교회의 목사였으나 신학적으로는 철저하게 칼빈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정통 칼빈주의 목사였음이 분명하다. 교회의 정치체제에 관해서도 회중교회보다는 장로교회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3) 인디언 선교사역


에드워즈가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가진 목사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를 그의 인디언 사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에드워즈는 23년 동안 봉사했던 노스햄프턴교회를 떠난 후 백인들이 인디언 선교를 위해 건설한 '스톡브리지 마을'의 선교책임자로 부임했다. 에드워즈는 인디언들의 언어를 몰랐으므로 통역을 세워 인디언들에게 설교하였다. 그리고 백인 어린이들과 인디언 어린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을 활용하였다.7)


에드워즈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매우 친숙한 관계였다는 것을 여러 증거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드워즈는 자기 자신이 웨민신고를 수용하는데 전혀 어려움이나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고백했고, 자신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웨민 소요리 문답을 정기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인디언 선교지의 어린이 사역을 위해서도 웨민 소요리 문답을 활용했다. 에드워즈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정통 칼비주의 노선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여 주는 일들이다. 정통 칼빈주의자가 아니면 이 정도로 웨민신고의 정신과 신학에 깊이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교도 개혁신학을 원칙으로 하는 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으나, 사실상 칼빈주의 신학을 부정했던 찰스 피니가 웨민신고의 내용과 가치를 조롱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칼빈주의와 웨민신고의 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1차 대각성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는 정통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목회자였다. 

 


--- 각주 ---


1)Freedom of the Will, ed. Paul Ramsey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New He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7), 131.
2)D. M. Lloyd-Jones,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Carlisle, PA: The Banner of Truth Trust, 2016), 205.
3) Charles Finney, Lecture on Systematic Theology (New York: George Doran Company, 1878), xii. 
4)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Orwigsburg, PA: Yale University Press, 2003), 321. 
5) Ibid.
6) Ibid., 362.
7) Iain H. Murra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Carlisle, PA: The Banner of Trust Truth, 1996),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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