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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철 목사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신학은 이미 기울어졌고,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전에 피터 와그너를 추총하면서 그의 선진 신학(?)을 앞장서 소개했던 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종적을 감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와그너의 그릇된 신학을 정당하게 정죄하고 비판하는 작업은 여전히 우리의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오늘은 그가 이전에 대단한 것인양 설레발치면서 선전했던 '통치신학'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 운동 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제3의 물결과 함께 다시 등장한 사도와 선지자들 중심의 새로운 계시와 예언운동이고, 또 하나는 신사도 운동하는 교회들을 통해 지금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려는 시도이다.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 운동을 전개하여 이 땅에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겠다고 노력하였고, 그것을 위한 신학체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Dominion Theology)이다. 다른 말로는 “킹덤나우”(Kingdom Now)라고도 하고, “주권운동”이라고도 하며, “도미니언”(dominion)이라고도 한다.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은 신사도 운동을 추진함으로 지상의 모든 영역에 ‘변혁’(transformation)을 이루어 하나님나라를 성취한다는 내용이다. ‘변혁’이라는 개념은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은 신사도 운동가들에게 매우 중요하고도 특별하다. 그래서 이전에 ‘변혁’이라는 선전 구호가 전면에 등장하는 대형 집회들 대부분이 신사도 운동가들에 의해서 주관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실현되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죄가 완전하게 제거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 등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신정국가 건설이 시도되었으나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도 '성시화운동'이라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그와 비슷한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질적인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성시화운동에 힘쓰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 땅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 지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실현에 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내용들이 성경에 더 많이 예언되었다. 디모데후서 3:1-5절을 보면 세상을 갈수록 타락하고, 인간성은 더욱 더 부패해지고, 쾌락과 돈이 중심이 되는 죄악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힘을 다하여 먼저 자신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인내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기다리면서 참된 복음을 지키고 전파해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딤전 4:1).


성경은 마지막 때에 거짓 믿음을 전파하는 미혹의 영들의 역사가 많아질 것이므로 분별하여 참된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고 더욱 더 경고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이 땅에 신사도 운동 사상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겠다는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사상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이런 사상은 피터 와그너가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고 신사도 운동의 초기부터 있었다. 신사도 운동으로 지상에 “영적완성”이 실현될 것이고,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난다는 사상이 일찍부터 신사도 운동 속에 존재하였다.


요엘의 군대(Joel's Army) 개념이 통치신학의 모형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은 신사도 운동 초기의 요설 '요엘의 군대'(Joel's Army)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요엘의 군대란 신사도 운동을 위하여 하나님이 종말에 일으시키는 특별한 영적집단이다. 지금은 이 개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나, 거짓 예언에 능했던 초창기 신사도 그룹의 지도자들은 신사도 운동을 통하여 지상 교회의 신앙구조를 개혁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자신들을 '요엘의 군대'라고 불렀다. 그들의 '요엘의 군대' 개념은 자주 구약 성경 요엘서 2장에 등장하는 메뚜기 떼와 연관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요엘서 2장의 메뚜기 떼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포악한 이방 나라들의 군대를 의미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불량스러운 초창기 신사도 운동가들은 황당하게도 자신들을 그 메뚜기 떼에 비유하며 '요엘의 군대'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요엘의 군대와 유사한 또 다른 것이 또 하나있다.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신부가 되다고 가르치면서 신비적인 일들을 진행하는 ‘신부운동(신부사상)’이다. 약간 모양은 다르나 결국 하나님의 특별한 종말운동을 수행하는 영적 엘리트 집단을 의미하므로 '요엘의 군대'나 '신부사상'은 같은 것이다.


신사도 운동의 신부운동을 추진한 대표적인 곳은 미국의 마이크 비클이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미조리 주의 아이합(IHOP)이라는 이상한 기도원이다. 마이크 비클은 '친밀한 신부의 정체성', '신부 패러다임' ... 등의 요설을 가르치면서 일반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좀 더 저급한 신부사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교회들이 신부의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친밀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게 만드는 특별한 기름부음으로 무장되어야만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가르쳤으므로 신사도 운동의 요엘의 군대 개념이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전 세계의 교회들이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중보기도에 힘을 쓸 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피터 와그너의 저술에서 요엘의 군대나 신부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지상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겠다는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의 중심 내용이 결국 무식했던 초기 신사도 예언운동가들의 ‘요엘의 군대’ 개념, 그리고 마이크 비클 등의 ‘신부사상’과 한 몸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다.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을 국내에 소개했던 세미나 홍보지



피터 와그너의 통치권(Dominion) 개념의 오류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Dominion Theology)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담의 '통치권'에 대한 오해이다. 그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권에 대하여 매우 그릇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통치신학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피터 와그너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단이 지상의 모든 것을 통치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가르친다. 피터 와그너는 사탄이 아담의 타락을 조장한 목적이 오직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기존 교회의 가르침이 부적절하다고 한다. 사탄이 아담을 유혹했던 진정한 목적은 아담이 누리고 있던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빼앗기 위함이었다고 가르친다.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통치신학의 중요한 단서는 성경의 창세기의 첫 번째 장에서 나타난다. 거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하나님 나라 신학’(kingdom theology)보다는 ‘통치신학’(dominion theology)의 개념이 더욱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피터 와그너)


“우리의 기존의 성경해석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 인간을 유혹하였고, 그래서 유전적으로 후대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전가되는 원죄(original sin)가 발생하여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물론 그것도 사탄의 하나의 목적이었으나 사탄의 더 큰 목적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부여한 세상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빼앗는 것이었다.”(피터 와그너)


창세기에 관한 피터 와그너의 이와 같은 이해는 지극히 비성경적이다. 물론 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것처럼, 창세기 1장 26절은 인간에게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권이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let them have ‘dominion’)”(창 1:26).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권'(Dominion)을 주셨다고 하는 성경의 이 부분으로부터 피터 와그너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원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받았으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함으로서 사탄에게 통치권을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성경이해는 너무나도 피상적이고 문자적이다. 만일 그의 이해가 맞다면 지금까지 지속된 인류의 역사, 문화, 문명은 모조리 마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에게 있던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권이 통째로 사탄에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피터 와그너는 이러한 성경이해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도 이상하게 설명한다. 잃어버린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다음의 피터 와그너의 말을 읽어보자!


“우리는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것, 즉 하나님 자신과 인간을 위해 지으신 피조세계에 대한 아담의 잃어버린 통치권을 되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1 John 3:8). 사탄은 에덴동산의 피조물들에 대한 아담의 권세를 빼앗았으나 예수께서는 역사를 되돌려 놓으시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서 세상에 오셨다.”(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는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모반 죄의 효력을 무효로 만들어 다시 하나님 백성되게 만들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반역자가 받아야 할 사형집행을 대신 당하셨다는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리고 단지 사탄에게 넘어간 아담의 통치권을 되찾는 작업의 출발점으로서, 즉 통치권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 수행의 과정으로서 십자가를 지신 것으로 이해하는 비뚤어진 신학을 세웠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수님의 마귀에게서 통치권을 환수하는 싸움이 현재까지 시원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들이 신사도 운동에 전념하여 그 남겨진 과업을 이룩하자고 하자고 선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이다.


만일 피터 와그너가 기획한 통치신학이 정말 결실을 맺는다면 훗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완수하지 못한 일을 신사도 운동 사상으로 교회들을 진두지휘하여 마무리하여 준 피터 와그너에게 머리를 숙이며 고맙다고 하셔야 할 것이다.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따라가게 만든다. 창세기의 중요한 내용에 대한 해석에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 


과연 하나님이 아담에게 부여하신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dominion)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아담이 피조세계에 대해서 뭐든지 제 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독자적 무제한의 통치권이었을까? 피터 와그너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사탄이 아담을 타락시킴으로 통치권을 모조리 빼앗았고, 이후 사탄이 제 맘대로 행사하였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으로 받았던 통치권은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통치원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오직 하나님 자신의 뜻 안에서 관리하고, 다스리고, 계발하라는 사명 안에서 통치하는 권세를 주셨다. 피조 세계에 대한 아담의 독자적 통치권한을 주셨던 것이 아니었다. 아담이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도록 뛰어난 지성도 주셨다.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자인 서철원 교수는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창조주로서 자기의 존재를 계시하셨다. 창조된 세계를 통하여 자기의 영광과 권능을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포하셨다. 그리고 창조에 대한 자기의 뜻(경륜)을 알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셔서 언약을 맺어 백성 삼기를 기뻐하셨다. 인간을 자신의 백성을 삼으시사 섬김과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김과 영광을 돌림으로 창조 세계를 다스림을 위해 창조주를 모방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창조 세계가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셨다.”(서철원 박사, 전 총신대신대원장)


피조물에 대한 아담의 통치는 자기 임의의 독자적 통치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의 통치, 즉 아담이 하나님을 모방하면서 행사해야 하는 통치권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형상을 부여하셨으므로 아담은 하나님을 모방하여 피조세계를 다스리며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여 원래의 능력을 상실하였고, 생각과 마음이 부패해짐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올바른 통치권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사탄의 거짓과 미혹에 쉽게 영향받으므로 늘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방식으로 피조물들에 그릇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것이 아담의 통치권과 그의 타락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퍼 퇴마사?


그러나 피터 와그너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통치권을 빼앗은 마귀가 인류를 통치하여 모든 불행과 조직적인 빈곤과 불의한 일들이 역사 속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사도 요한이 말한 '마귀의 일'(요일 3:8)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이러한 '마귀의 일'들이 전혀 제지당하지 않고 진행되었으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이런 '마귀의 일'들은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피터 와그너의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불행, 조직적인 악, 불의한 일들, 빈곤 등의 마귀의 일을 멸하는 '수퍼(super) 퇴마사'인 셈이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사형집행을 당해야만 하는 우리들에게 사형집행을 면제해 주시기 위해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우리들이 '칭의'를 얻어 다시 하나님 백성되었음도 그의 신학에서는 중시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하나님의 골칫거리 마귀를 퇴치하여 통치권을 탈환하고, 그 동안 마귀가 비틀어 놓은 고질적인 일들을 바로잡는 '해결사 예수 그리스도'이다. 피터 와그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 찌든 인간의 속사람을 새롭게하여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도록 인간을 재창조하는 메시야가 아니고, 단지 마귀의 포악한 횡포를 잘 다스려서 인간의 삶을 평안하게 하는 능력자일 뿐이다. 


놀랍게도 피터 와그너의 이런 내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이단 베뢰아 사상의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일치한다. 어떻게 피터 와그너에게 이런 사상이 흘러들어갔을까? 피터 와그너는 마귀에 대하여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가르치지 않는 특이한 내용을 가르친다. 마귀(Lucifer, 루시퍼)가 천상에 있을 때에는 큰 능력(power)과 권위(authority)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가 교만하여졌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위임해 주신 권세에 만족하지 않고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14)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내쫓으셨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우리들도 이미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동의할 수 없는 공상 소설 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 쫓겨날 때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능력(power)은 박탈하지 않았으나 피조 세계를 통치(dominion)할 수 있는 권세를 박탈당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서 회수하신 통치권을 자유의지와 더불어 인간에게 주셨다고 한다. 통치권을 박탈당해 매우 원통한 마귀는 이후 아담에게서 다시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았고, 드디어 아담을 유혹하여 타락시킴으로 통치권을 되찾았다고 한다(다음을 참조하라. C. Peter Wagner,<Dominion>, pp. 115-116.).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믿을만한 다른 어떤 신학자들의 책들 속에서도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없다. 원래 마귀에게 통치권이 있었다는 내용, 그리고 아담에게 주어진 통치권이 아담의 타락과 함께 다시 전부 마귀에게 넘어갔다는 그의 이론과 주장도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 성경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도 피조 세계에 대한 통치권이 언제나 하나님에게만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12).


타락으로 인해 사탄에게 통치권이 넘어갔다면 어떻게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을 수 있겠는가? 통치권이 마귀에게 있다면 왜 마귀가 제 마음대로 욥을 죽이거나 괴롭히지 못하고 일일히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을까? 타락으로 인해 피조세계에 대한 지배권이 사탄에게 넘어갔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에 분명히 성경적이지 못한 중대한 결함이 내포되었다. 


타락으로 인해 마귀가 얻은 것은?


그렇다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마귀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결코 피조 세계에 대한 온전한 통치권이 아니다. 마귀가 인간을 죄의 종으로 전락시켰고,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훼손하는데 성공하였을 뿐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었고,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롬 5:10)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탄은 사악한 능력을 발휘하여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을 압제하고 학대하고 속박하기 시작했다. 성경에는 귀신에게 압제당하며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해방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는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마귀에게서 고통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으로 마귀의 압제의 사슬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죄로 인하여 사탄의 종이 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정치와 예술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사탄이 인류와 역사를 통치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합당치 않다. 아담의 죄를 빌미로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을 압제하고, 훼방하고, 참소하였으나, 세상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에 대해서 마귀는 결코 도전할 수 없었고, 잠시도 하나님을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선까지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에 감히 견줄 수 없는 작은 범위 안에서 사탄은 세상에 큰 영향력과 권세를 부렸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이렇게 유혹하였다.


“만일 네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마 4:9)


예수님을 유혹할 때 마귀가 했던 이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었고, 어디부터 거짓이고 과장인지 우리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은 처음부터 끝가지 오직 하나님의 것이고, 또한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마귀에게도 세상에 미치는 상당한 영향력과 권세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두가지 사실은 서로 모순되어 보이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인해 모순되지 않는다. 그런데 피터 와그너는 이와같은 놀랍고도 복잡한 사실을 간과하고 단지 타락으로 인해 피조세계가 사단의 통치 밑으로 떨어졌다고만 한다. 이것이 그의 심각한 오류이고, 그의 통치신학의 그릇된 출발점이다. 거기서부터 그의 하나님 나라회복 운동의 신학인 Dominion Theology가 시작되었다.


거짓 사도들은 영적전쟁의 선봉장?


피터 와그너의 또 다른 중대한 오류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그릇된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는 지극히 영적전투를 강조한다. 전투를 통하여 승리함으로서 마귀에게서 통치권을 탈환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 마귀를 물리치는 영적인 전쟁의 본질인지에 대해서 어이없는 대안을 제시한다. 사람들이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그를 구주로 믿게 만드는 것을 영적인 전쟁의 핵심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묻은 십자가를 부여잡음으로 성령을 받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연합되는 것이 곧 영적인 능력이라는 사실도 강조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면 저절로 마귀가 패배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말하지 못한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경배하고 높이는 믿음을 가지는 것 그 자체가 사탄을 대적하는 강력한 영적전쟁임을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에 마치 권투선수들이 주먹으로 싸움을 하듯이 겉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마귀와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그러한 차원에서 마태복음 10장 34절의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주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귀신들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사도 운동의 거짓 사도들의 가치와 필요성을 미화하고 홍보한다. 일반 목사들은 기껏 영혼들을 돌보고, 양육하고, 위로하는 사역을 할 뿐이지만, 사도는 영적전투를 수행하는 특별한 엘리트 장군들이라고 한다. 사도들은 마귀에게 빼앗긴 통치권을 되찾는 치열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성도들을 무장시키고, 싸움에 임하도록 독려하고, 어떤 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전략을 활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한 전쟁의 결정적인 부분을 도맡아서 감당한다고 한다. 다음의 피터 와그너의 말을 읽어보라.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도들이 등장하기까지 성령께서는 전략적 수준의 전쟁(high-level attacks)을 사탄을 상대로 펼치라고 교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제 사도들이 등장했고 다시 이전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 지구상에 확장될 것이다. 사탄은 자신의 때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쳐 날뛰고 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함으로 히틀러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던 것처럼, 사탄의 지배하는 권세가 깨어지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이다.”(피터 와그너)


결국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는 사도이다. 그들이 지금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마귀에게서 다시 지배권을 빼앗아 내기 위해 수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고, 그들이 이기는 만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고 가르친다. 신사도 운동의 거짓 사도들에게 이렇게 막중한 사명과 역할이 주어져 있다는 것인데, 지금 대부분의 거짓 사도들이 이미 몰락해버린 현실을 보면 피터 와그너는 이 당시부터 귀신들렸던 모양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은 그 출발부터 성경에서 크게 빗나갔다. 아담에게 주어진 통치권의 본질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아담의 타락이 사탄에게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사탄을 제압하여 통치권을 환수하셨다는 그의 주장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과 의미를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통치권에 대한 피터 와그너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리는 것이 영적전쟁의 본질임을 망각한 사이비 신학자의 기독교 공상 소설에 불과하다. 이것이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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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철저한 칼빈주의자 에드워즈 2018-12-18 329
81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 2018-08-04 586
80 데모데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버지 2018-06-26 439
79 에드워즈의 할아버지, 리처드 에드워즈 2018-06-02 324
78 조나단 에드워즈 2018-05-27 691
77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지막 하루 2018-03-30 336
76 누가 이 엄청난 사실을 외쳐 벼랑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할까? 2017-11-11 626
75 방언이란 무엇인고 예배, 기도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인가요? 2017-06-21 953
74 여전히 비성경적인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강순영 JAMA 중보기도 대표 2017-06-02 942
73 교단과 신학교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지를 분별하는 기초항목 2017-04-11 3878
72 한결같기 2017-03-18 640
71 낭떠러지 2017-02-04 872
70 뛰어들기 2016-12-03 810
69 진리소통 2016-11-13 878
68 칭의를 주신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2016-10-03 1314
67 그런 뜨거운 체험은 접신인가? 성령세례인가? 2016-09-27 1619
66 사랑의 교회 중보기도 학교는 성경적인가요? 2016-09-27 8277
65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의 열쇠 2016-02-24 2136
64 '4차원의 영성'은 다른 종교의 사상 2016-02-18 2341
63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2147
62 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2016-01-28 2840
61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2125
60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712
59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255
58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2235
57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506
56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708
55 부활복음은 십자가 모르는 김성로 목사의 목회브랜드 2015-11-27 8860
»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387
53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복음(간증운동) 성경적인가요? 2015-11-22 3917
52 성경은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라 한적이 없다 2015-09-08 2770
51 명성교회 특새소리는 한국 교회 초상치는 소리 2015-08-31 3553
50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2015-08-28 3506
49 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2015-08-21 3193
48 주기철,손양원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춤추는 날 2015-08-18 3356
47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767
46 남침례교단 방언관련 선교 정책 변경은 그릇된 일 2015-08-17 3088
45 성령을 조종하는 안수기도는 불가능 2015-08-17 3823
44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603
43 성령운동과 기독교 신앙 2014-01-04 5710
42 성령운동가들의 이상한 인생 패턴 2014-01-02 22541
41 앤아버 반석교회가 CRC 교단을 떠나는 이유 2013-09-29 9660
40 비성경적인 이스라엘 사상, 이제는 분별할 때 2013-08-15 9795
39 "알파코스"-제3의 물결의 거짓부흥2 2013-08-13 21595
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4926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407
36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436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51196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7567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545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797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8105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7180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11911
28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2176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32850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2095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617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13187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8381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613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6175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9135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8475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10516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823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10349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6804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371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494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8150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578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6069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11893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7007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925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7297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9513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9013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622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675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