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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조회 수 927 추천 수 0 2019.03.29 17:16:43

매일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3권을 읽고 있는데, 3권의 5장은 천주교의 연옥, 면죄부, 죽은자를 위한 기도 등을 다룹니다.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과 성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만드셨으므로, 추악한 죄로 우리 자신을 다시 더렵혀서는 안된다고 매우 강조합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How then do I keep myself holy and clean?

그러면 어떻게 나를 거룩하고 깨끗하게 유지하지?


칼빈은 복음의 효력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하여 영혼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전 인격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죄를 변명하지 말고 인생의 종점을 향하여 끝까지 분투하고 노력하라고 합니다 (기독교강요, 3.6.5). 구원 이후의 성화는 전적으로 사람의 노력과 결단의 문제인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과 성결에 대해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대표적인 종교가 중세 천주교였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인간의 협력으로 얻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구원 이후의 삶의 변화(성화)는 전적인 인간의 각오와 결단의 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에게 구원의 시작을 일으켰고, 구원의 완성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 내는 성화에 달렸다고 가르쳤습니다. 성화에서 실패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된 구원이 사라진다는 가르침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등장한 웨슬리의 감리교도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되고, 성도는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일평생 달려 간다고 가르칩니다. 십자가로 구원의 여정이 출발되었으나,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만들지 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당연시 합니다. 이것이 대다수의 감리교 목회자들이 가르치고 설교하는 감리교의 구원론입니다. 그러나 감리교 안에는 이것을 그릇되었다고 비판하고 종교개혁 구원론이 진정한 웨슬리의 가르침이라고 외치는 교수들과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칼빈과 루터 등을 통하여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교회에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완전성, 영원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해가는가? 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전히 종교개혁 이전 천주교의 가르침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처럼 성화되지 못하고 다시 죄로 돌아가면 구원을 잃고 지옥으로 떨어진다고는 하지는 않으나, 삶과 성품의 변화에 대해서 천주교와 확실하게 다른 신학을 만들지는 못하였습니다. 칼빈도 여전히 우리 자신들의 의지와 결단으로 죽을 때까지 육체의 본성과 싸우라고만 강조하였습니다.


기독교강요 3권 7장에서 칼빈은 성도의 "자기 부정"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니, 이미 자기 부정에 성공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거나, 성도의 자기 부정의 목표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How then do Christians deny themselves?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자기를 부정하지?


이 세대를 본 받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이미 자기를 부정하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고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있는 사람은 이미 자기 부정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변해야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어떻게 변화되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칼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죄의 욕망으로 충만한 우리가 자기 부정에 성공하여 거룩과 성결한 삶으로 나아가는 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현재까지 기독교강요 2/3 이상을 읽었는데, 아직 거기에 대한 칼빈의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칼빈을 보니, 구원에 대해서는 종교개혁이 이루어졌으나, 구원 이후의 성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천주교에 머물고 있다고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를 나에게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권세가 우리의 영혼과 인격에 적용되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왜 여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일까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과 권세를 우리의 영혼에 적용시켜 주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사신 하나님 백성에게 적용시키려고 아버지께 요청하시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령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의 영", "주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반드시 성도답게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살게됩니다.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과 믿는 사람을 연합되게 하시려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오시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고래 힘줄 같이 질긴 죄의 습관들도 부숴질 수 있습니다.


절대로 십자가의 피의 권세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없이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 죄악을 이기어 자기를 부정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주장이나 사상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삶은 오직 성령의 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죄의 견고한 진, 죄에 절은 습관, 죄성으로 기울어진 기질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모든 순간 순간마다 죄의 유혹을 이기시고,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자신을 견고하게 연합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단순히 기도를 많이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기도 많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귀신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말씀의 영, 즉 성경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는 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구원과 성화를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에 자신을 맡기고 던지는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말씀을 쉬지 않고 접하고 붙드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가 우리의 영혼과 안격에 부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흠없고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연합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정하고 죄를 이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기고, 자기를 부정하는 능력을 보이게 됩니다. 기도는 이 범위 안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울타리를 넘어가는 유별난 기도는 다른 영과의 접신으로 향하는 위험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말씀 따라 살기를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변덕없이 이어지면, 우리는 틀림없이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할 수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청교도 좋아하는 목회자들이 율법을 선포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율법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회개하면서 은혜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될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율법과 강제적인 회개요청으로 될 것이라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선포와 강제적인 회개 요청은 사람의 마음을 더 사납고 메마르게 만들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구원, 성화, 회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은혜, 그리고 그것을 적용하여 주시는 성령의 역사하심만이 우리의 삶을 고치고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증거하는 교회와 설교자가 당신의 인생을 복되게 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의 예배, 설교, 그리고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만드는 그 교회의 다양한 사역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종 정이철 목사가 맥도날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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