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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피터 와그너는 제 3의 물결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언’(prophecy) 다시 부활하였다고 한다. 자신도 처음 신학을 공부했을 때에는 성경의 예언의 은사가 오늘 날의 설교와 기능이 비슷했던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훗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주시는 예언이 따로 있고, 지금도 예언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이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어떻게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신약의 정경은 확정되었고, 하나님은 그 안에서 인간에게 하시고자 원하시는 모든 말씀을 다 하셨다. 우리가 할 일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오늘 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예언에 관하여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의 가르침을 받고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로 갔다. 그러나 볼리비아(Bolivia)에서 선교사로서 16년을 보내는 동안 예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했다. 내가 신뢰하였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1세기의 교회에다 주시고자 하는 모든 말씀을 다 주신 것이 아니며, 지금 현재에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시고 계신다고 믿었다.”(피터 와그너)


피터 와그너의 예언에 관한 신학이 선교사로 떠나기 전까지는 예언에 관한 바른 신학의 가르침 안에 머물렀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 장기간 선교하는 동안 변했다. 1979년에 초판이 쓰여진 피터 와그너의 책「Your Spiritual Gifts Can Help Your church Grow」을 보면 이미 하나님이 지금 직접 말씀하여 주신다는 그릇된 예언사상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예언에 대해 말했다.


피터 와그너의 예언에 대한 이런 가르침은 지극히 비성경적이며 올바른 기독교 신앙에 대해 큰 위협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신 일들이 오늘 날의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대신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의 중요성에 관하여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 17)


우리의 신앙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방책을 성경이다. 오직 성경을 통하여, 성경을 읽고, 배우고, 가르치고, 전파함으로서 하나님께 합당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생산되어진다. 이것이 성경을 기록하여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는 이러한 일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불완전한 인간의 사역에 의해서도 되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릇된 예언사상을 발전시킨 피터 와그너는 제 3의 물결 이론을 전개하면 더욱 그릇된 예언을 강조했다. 1988년에 초판이 쓰여진 그의 책「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의 8장에는 제 3의 물결이 도래하면서 예언이 부활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외국어 방언과 함께 예언의 은사도 다시 나타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언의 은사를 정의하였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멤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적 기름부음의 언어이다.”(피터 와그너)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예언


예언은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 모두에게 언제나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예언은 연약한 인간의 불안한 마음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평소에는 예언을 구하는 않던 사람도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마음이 연약해짐으로 예언의 미혹에 빠지기 쉽다. 신앙이 어느 정도 성장한 사람도 큰 고민이 생기고, 암담한 상황을 만나면 예언의 은사가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 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 진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예언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내용을 신뢰하고 의존하는 것은 심히 위험스럽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예언을 듣고서 일시적인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예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예언을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일은 세상 사람들이 점집에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점집에 드나들면서 일시적으로 위안을 얻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게 되는 불신자들의 상황과 예언을 좋아하는 교인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할 수 없다.


사실 신자들이 현대의 예언을 받는 문제는 정말 위험하고 심각하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 주시는 예언이라는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예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에도 예언이 많이 주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을 모조하는 미혹의 영이 그 정도로 많이 장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혹의 영이 처음부터 망하게 만들면 누가 그런 거짓 영들의 모략에 넘어가겠는가? 처음 일정기간 동안 귀신은 정체를 숨기고 성령인체 가장해야만 장차 더 큰 일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예언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다. 현대의 예언은 심각한 현상이고, 반드시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고 정립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곧 귀신과 교제하는 행위라고 경고하였다. 예언도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아닌데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 말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것은 결국 미혹하는 귀신과 교제하는 죄악이다.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의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듯이 귀신이 준 말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귀신숭배의 죄악이다. 귀신이 준 그럴싸한 말을 깊이 듣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사탄숭배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도 있고, 미혹하는 귀신이 주는 예언도 있으니 싸잡아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예언에 관한 성경의 말씀들과 기독교 신앙의 이치를 연구하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지금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계시의 메시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죽었단 말인가? 신학이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라면 신학을 버려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더 순수해 보이고,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신학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성경에 ‘예언’, ‘예언의 은사’라는 단어가 있다고 하여 지금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것은 무지이다. 그러면 성경에 ‘사도’라는 단어도 있고 ‘선지자’라는 단어도 있으니, 그리고 사도, 선지자 직분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 것이라고 성경이 표면적으로 말하지 않으니, 지난 2,000년 동안 항상 사도, 선지자가 있었던 것일까?


이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성경을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신학은 성경을 훼방하는 작업이 아니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바른 신학을 알며 예언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는 없고, 현대의 예언이라는 것을 결코 믿을 수도 없다. 믿는다 하면서 미혹하는 귀신과 교제하며 인생과 신앙을 더럽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만연해진 예언사상


오늘 날에도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말씀하여 주신다는 예언사상은 이미 널리 퍼져버렸다. 피터 와그너, IHOP의 마이크 비클, 릭 조이너, 변승우 ... 예언사상을 지지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이루 셀 수가 없다. 피터 와그너의 사상을 가르치는 신학교인 WLI의 한국지부(WLI Korea, 홍정식 목사)에도 다니엘 매커램(Daniel McCollam)이라는 외국인이 가르치는 ‘예언과 자기성취’라는 인텐시브 과목이 있고, 데니스 크레머라는 외국인이 가르치는 ‘예언학교’라는 과목이 있다.


우리 주변에 거짓 예언을 믿으며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언을 받음으로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그릇된 설교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예언에 관한 그릇된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의 실상을 알 수있는 하나나 사례를 보자. 미국 뉴저지의 가스팰 팰로우쉽 교회의 성현경 목사가 지난 2011년 10월 미시간 주 앤아버에 있는 한 교회의 초청을 받아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부흥회가 끝난 후에 성현경 목사의 설교에 이상한 점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떤 분이 설교가 녹음된 음성 파일을 주었다. 시간을 내지 못하다 2013년이 되어서야 성현경 목사가 부흥회 첫날 목요일 밤에 했던 설교의 일부를 들어보았다. 이 설교 하나에서만 다음과 같은 그릇된 예언사상이 성도들에게 전파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제가 뉴저지에서 목회한지 4년이 됐을 때, 저희는 자리(건물)가 없었어요. 저희는 예배를 많이 해요. (건물의 주인이) 히터를 안 틀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집사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했어요 ... 더 이상 예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한 청년이 예언을 했어요. 재수없이! 다음은 건물을 사는 거래요! 그리고 바로 옆에 (건물이) 있데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딴 교회들은 놀고 있냐? 여기에 지금 교회가 없어서 난리인데, 교회가 하나 나오면 7-8개 교회가 달려들어 값이 더블이 되는데, 그런 일이 어떻게!’. (그 청년이) ‘주님이 정말 그랬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믿어지는 거예요. 재수없이!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운영위원회에게 이야기 했어요. 요 근처에 있는 건물인데, 한 청년이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고 ... .”(성현경)


성현경 목사가 성도에서 이렇게 예언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웠다. 이 분이 오래전부터 신사도 운동가들과 교제하고, 교회에 신사도 운동가들은 초청하여 각종의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설교를 겁 없이 함부로 하고, 또한 성도들이 연신 아멘! 아멘! ... 하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속이 매스꺼웠다.


“얼마 전에 저희 교회에 필라델피아에까지 알려진 작두에 서는 진짜 무당, 칼날 위에 서는 무당이 교회에 왔어요. 재수없이!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 뉴저지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목사님이 계세요. 그 분을 청했대요. 도와 달라고! 그런데 그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자마자 그 목사님의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버렸대요 ... 근데 우리한테 그 분이 왜 온거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놀라운 것은 소위 영성이 있다는 사람들, 환상을 보고 계시를 보는 사람들이 달라붙었어요. (귀신이) 안 나가요! (귀신이 교인들을 보고) 다 말해요! 너는 무슨 죄를 지었잖아! 다 맞혀요. 회개가 절로 터져버려요. 성령이 못하시는 일을 귀신이 해 주는 거야! 할렐루야! ... 그런데 영성이 쌘 사람들은 하나가 안 돼요. 왜냐하면 자꾸 환상보고 계시를 본다고 하는데, 환상과 계시는 전부가 아니예요. 그 사람에게 맞게 그것만 보여준 것이지. 근대 기도하다가 자기만 본 것을 이야기하니까 ... 남들은 못 봤잖아요. 하나가 안 되는 거야! 근데 초신자들은 눈에 뵈는 게 없잖아요. 믿음밖에 없는 거야!”(성현경)


환상과 계시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니 매우 좋은 설교를 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환상과 계시는 특별계시의 시대에 선지자들과 사도 등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는 수단이었다. 성경과 기독교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계시적 현상이었다. 오늘 날 과연 누구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과 계시가 나타난다는 것인가? 이런 설교를 겁 없이 하는 사람은 결코 정상적인 목사가 아니다.


“여러분! 예언은 스끼다시예요. 메인 디쉬는 말씀이예요. 원래 메인 쓰시에 자신이 없는 가게가 스끼다시를 세게 쓰는 거예요. 여러분! 언제 예언 받고 싶어요? 저는 예언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여러분들이 책에서 보는 그 수많은 사람들(예언자들)에게서 제가 예언을 다 받았어요. 이제는 누가 무슨 예언을 주었는지도 몰라요. 하도 많이 받아서! 그런데 내 인생을 절망에서 살리는 예언이 있기는 있었어요. 평생 못 잊어버리는 놀라운 예언들이 있었어요. 여러분! 언제 예언을 받고 싶으세요? 불안할 때, 오갈 길을 모를 때 ... 오늘 주님이 나와 함께 하면 그거 안 받게 되요. 쓰시가 맛있어봐 스끼다시는 손 안 돼요.”(성현경)


예언을 전적으로 믿지는 말고 쓰시 집의 스끼다시 정도로만 여기라고 하였으니 성현경 목사는 그런대로 좋은 설교자인 것 같다. 그러나 성현경 목사는 근본적으로 신자들을 망치는 나쁜 설교자이다. 지금의 예언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짓거나, 귀신이 장난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인해 나타나는 확신과 깨달음을 예언이라고 표현한다면, 물론 그것도 잘못되었으나 어느 정도를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현경 목사는 분명하게 하나님이 직접 말해 주시는 예언을 전파하고 있었다. 성도들 앞에서 자신이 모든 유명한 예언자들에게 찾아가 예언을 받아 보았다고도 하였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말을 예사롭게 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한심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다양한 귀신들과 난잡하게 교제하였다고 떠벌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예언을 받는 것보다는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동서남북을 모르는 사람이 여행사 가이드 노릇을 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GPS라고 떠벌이는 격이다.


“믿음의 Gift(은사, 선물)가 예언이예요! 온전한 예언이 있으면 주님은 사랑하셔서 예언을 많이 주세요. 저는 예언을 많이 받았어요. 교회 건물 얻은 것도 그 청년의 예언을 목사가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역사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나요!”(성현경)


성현경 목사는 그 청년의 예언에 순종하여 기적을 경험했다고 하였다. 과연 그 청년이 누구기에 완성된 성경을 깨닫고 적용하게 하는 성령의 조명의 시대에 하나님의 직통 예언을 가지고 왔다는 것인가? 왜 그런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귀신은 이런 정도의 예언을 하면서 하나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인가? 성현경 목사는 자신이 건물에 관하여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에 순종했다고 하였다. 그 청년의 예언을 믿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종한 것이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결국 그대로 되었기 때문인가? 그러면 이런 식의 예언을 믿고 의지하다가 망하고 낭패를 당한 많은 사람들은 경유는 어떻게 된 것인가? 반드시 틀려야만 귀신의 장난이라고 규정될 수 있는가? 이렇게 설교하는 성현경 목사의 정체가 수상해 보였다. 그런데 그날 성현경 목사의 설교 속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발견되었다.


“저는 정말 성령이 임하지 않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 성령이 임할 때마다 사람들이 떠나는 거예요. 시험이 들어서요. 성령이 임할 때마다 정말 괴로워요. 성령이 임하면 교인들이 떠났어요. 그분(성령) 절대로 임하기를 제가 원하지 않습니다. 이게 고민이었어요. 현실적인 고민이었어요. 정말 성령이 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성령이 임하면 언제나 시험이 들어서 그 사람이 나가거나,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들어서 나갔어요. 괴로운 거예요. 전혀 목회에 도움이 안 되시는 성령! 정말 괴로웠어요! 정말 성령이 임하기를 원치 않아요. 그냥 체계적으로 말씀을 양육하기 원했어요.”(성현경)


성현경 목사는 왜 성령이 우리에게 이질적인 분이라고 하는 것일까? 성경 어디에도 성령이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분이라는 말씀이 없다. 성령은 다른 말로 ‘예수의 영’(행 16:7)이고, ‘주의 영’(행 5:9)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 정도로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이 같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지상에 강림하신 성령은 기능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신다. 성령은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예수님을 높이신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시면 반드시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고 드러난다. 성령충만하면 그 사람은 꼭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 그러므로 성령은 목회자들이 가장 의지해야 할 분이시다. 그런데 성현경 목사의 사역에 성령이 임하니 목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교인들이 상처를 받고 떠났다고 하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아마도 괴상한 일을 일으키는 웃기는 짝퉁 성령, 즉 거짓 영이 성현경 목사와 그 교회에 충만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설교를 들으니 자신의 교회개척 초기에 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살짝 말하고 넘어가는 내용이 있었다. 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고, 거짓된 성령운동하는 집회에서 나타는 나쁜 현상이다. 성현경 목사와 그의 교회에서 귀신들이 장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현경 목사는 자신이 모든 유명한 예언자들을 만나 예언을 받았다고 했다. 교회의 영성(?)있는 교인들에게서 환상과 계시가 나타난다고 했다. 교회 건물을 사게 될 것을 한 청년이 예언했다고도 했다. 기껏 끝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설교 하나에서 이런 내용이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어떤 글을 보니 성현경 목사는 2009년 5월 자신의 교회의 집회에서 예수전도단의 로렌커닝햄이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에게 이 메일로 자신이 받은 예언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언급하여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로렌커닝햄은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6개원 이내에 한국 교회에 피를 보내실 것이라고 오정현 목사에게 전달했고, 오정현 목사는 그 내용을 주일 설교 중에 언급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사건들은 한국 교회의 목사들의 신학적인 수준이 얼마나 낮고 비참한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여러가지 일로 유명해진 평신도들 중에서도 귀신의 예언과 친숙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외국에서 선교하며 책을 써어 유명해진 이용규 선교사라는 분이 있다.「내려놓음」,「더 내려놓음」,「같이 걷기」,「떠남」등의 베스터 셀러를 저술한 유명한 분이다. 그런데 이 분도 예언자들을 만나서 예언을 받는다고 한다. 다음은 이용규 선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2011년 9월 28일)에 ‘새로운 사역으로의 부르심 3’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발견된 내용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의 책을 많이 출판하여 한국 교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규장출판사 사무실에서 예언자들을 만나 예언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에 규장 출판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여러 차례 나를 위해 대언해 주셨던 선교사님과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기도 가운데 나온 첫 말씀은 ‘내가 이 사역을 위해 너를 오래도록 준비시켰다’였다. 그리고 ‘이 사역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라고 했다. 예언의 말씀은 보다 구체적으로 계속되었다. 나는 아틀란타에 있는 동안 중앙아시아 선교 역사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나오는 말씀은 ‘그 일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사역을 위해 준비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을 놓고 개인적인 확증을 놓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이용규)


  
 이용규 선교사가 기독교 TV에 출연하고 있는 모습

한국 교회 안에서 예언을 받는 일은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예언을 얻기 위해 ‘예언기도’를 받는 일은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처럼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는 예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의 믿음의 근거이며 기준이라고 믿는 것이 한국 교회 속의 대세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디든지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인터넷 때문인지, 하나님과도 일상적으로,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예언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변하고 있다. 예언을 당연시하는 신사도 운동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 확산되었다.


이런 현상이 피터 와그너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제 3의 물결 시대가 도래하여 예언의 은사가 다시 부활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방언, 방언통역,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전달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이 세 가지를 계시적인 은사들(revelatory gifts)이라고 분류하여 가르치고 있다.


“예언, 방언, 방언 통역의 은사는 자연적으로 한 그룹으로 모아진다. 왜냐하면 다른 은사들과는 달리 이 은사들은 계시적인 은사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정보(information)들이 계시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련의 계시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피터 와그너)


예언이란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다. 오늘 날에도 국제전화를 걸듯 약간의 정성과 시간을 투자하여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접속하여 소통하고 말씀을 받는 현상이 예언이다. 그럼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있다면 장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예언을 더 풍성하게 얻도록 최대한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은 설교보다는 직통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서울의 큰믿음교회의 변승우 목사는 설교준비를 하지 않고서 설교한다고 하였다. 강단에 올라가서 즉흥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전한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참 멋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지난 2,000년 동안 그러 사람들이 교회사의 중심에 서지 못하였던 것일까? 성경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전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과 신약의 사도들의 예언으로 성경이 완성되고,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의 하나님의 직통의 예언은 없다. 신구약 성경이면 족하고,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은 기록된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은 교회와 성도의 신앙의 모든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신약의 교회와 성도의 구원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예언과 그리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예언에 기초한다고 성경 천명한다. 즉 신구약 성경이 기독교를 성립시키는 근거이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의 신앙의 모든 것을 위해 충분하고 완전하다. 교회와 신앙은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고, 성경에 복종해야 하고, 성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지금 하나님의 예언이 나타난다면 이것이 허물어진다. 현대의 예언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붕괴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예언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예언운동의 열매는 언제나 허망하다. 예언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국 망신과 수치를 충분하게 당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신구약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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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4차원의 영성'은 다른 종교의 사상 2016-02-18 1965
63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1925
62 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2016-01-28 2324
61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1817
60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257
59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034
58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1921
57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255
56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357
55 부활복음은 십자가 모르는 김성로 목사의 목회브랜드 2015-11-27 3242
54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036
53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복음(간증운동) 성경적인가요? 2015-11-22 3565
52 성경은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라 한적이 없다 2015-09-08 2579
51 명성교회 특새소리는 한국 교회 초상치는 소리 2015-08-31 3188
50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2015-08-28 2976
49 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2015-08-21 2804
48 주기철,손양원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춤추는 날 2015-08-18 3114
»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533
46 남침례교단 방언관련 선교 정책 변경은 그릇된 일 2015-08-17 2812
45 성령을 조종하는 안수기도는 불가능 2015-08-17 2728
44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375
43 성령운동과 기독교 신앙 2014-01-04 5395
42 성령운동가들의 이상한 인생 패턴 2014-01-02 10665
41 앤아버 반석교회가 CRC 교단을 떠나는 이유 2013-09-29 9208
40 비성경적인 이스라엘 사상, 이제는 분별할 때 2013-08-15 8387
39 "알파코스"-제3의 물결의 거짓부흥2 2013-08-13 17141
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3050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048
36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109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49423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6956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126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344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7563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6784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8001
28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1236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29896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1040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028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6158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7359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044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5852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7762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7850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8831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371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9336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5578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072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077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7941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197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5809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8273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6640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557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6811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8941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8198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384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239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0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