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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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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괴상한 열풍이 한국 교회를 크게 농락하였다. 비성경적이고 괴상한 일들이 성령의 기름 부음이라는 말로 미화되면서 색동옷 입고 뛰며 춤추는 여인들의 방울소리처럼 크게 요란을 떨었다. 그 동안 기름 부음이라는 것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어떻게 회자되었는지 알게 해 주는 하나의 예를 보도록 하자.  

“아내가 기름부음을 받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 성령춤과 통변 등을 주셔서 사모하므로 기도하던 중 기름부음이 강해지더니, 요즘 2달은 체질이 풀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기도 하고 잠잘 때에 특히 강하게 누르시는 어떤 것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예전에는 성령춤(?)과 방언 등을 강하게 주셨는데, 지금은 기름부으심이 강하여서 말을 못하게 하시고 입을 벌린 채로 기름부으심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은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뜻이 있는지 답답하다고 합니다. 저희도 기름부으심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모르고 좋은 것으로만 알았는데 혹시 잘 경험하신 분이 있으시면 권면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분이 자기 아내가 받는 기름 부음에 대해서 공개된 장소에 남기신 질문의 내용이다. 이 분의 아내는 강력한 기름 부음이 임함으로서 체질이 풀어지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잠잘 때에도 짓눌리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성령(?)의 역사가 귀신의 가위눌림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을 성령이 주시는 기름 부음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서도 방언과 성령춤이라는 것이 기름부으심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성경에서 단 한마디의 근거나 흔적도 찾을 수가 없는 성령춤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자주 나타나는 것인가. 더욱이 기름부으심을 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계통에서 시골 동네 개 짓는 소리처럼 흔하게 나타나는 방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도하기 싫다.

질문하신 분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의 입을 강제로 벌려 놓고 기름 부음을 주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 위해 성도의 입을 쫙 벌려 놓는다는 이런 이야기를 성경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비슷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이런 식으로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면 아마도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입이 찢어지고 턱관절이 빠지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내용은 전혀없다. 이런 현상을 단번에 귀신장난이라고는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내용을 읽는 사람들이 나처럼 답답했던 모양이다. 뭘 좀 아는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님께서 말씀하신 기름 부음은 집단최면에 의한 뇌의 이상 현상입니다. 죄송한 말씀인데요. 뇌의 신경전달과정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상한 종교 활동을 그만 두십시오. 병원에 가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잘못하면 사람 버립니다. 못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상한 행위로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지혜와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맑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시고, 그런 신앙생활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기름 부음이 미치광이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충남 당진에 있는 ‘초락도 기도원’이라는 곳에 기름 부음이 임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았다. 사람들이 짐승처럼 발광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들쥐를 죽이기 위해 놓은 쥐약을 집에서 기르는 개들이 잘 못 먹고 죽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꼭 그런 모습과 같았다. 실내를 뛰고, 바닥에서 구르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이 성령의 은혜의 역사이겠는가. 이런 웃기는 현상들까지 기름부으심으로 오도되었다.      


<b>찬양사역과 기름 부음</b>

찬양사역자들에게도 기름 부음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의 강명식이라는 유명한 찬양사역자가 있다. 그는 2012년에 미주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찬양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때 강명식 찬양사역자의 집회를 홍보하는 문구는 ‘Fresh Anointing 2012’(신선한 기름부으심 2012)이었다. 강명식 씨의 찬양집회를 통하여 신선한 기름 부음이 성도들에게 공급되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당시 강명식의 사역을 소개하는 신문의 기사에도 기름 부음 개념이 그의 사역의 핵심 개념인 것을 나타나 있다.      

“2003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The Life)’은 주님 안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삶이 어떤 것인지 청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취지로 제작됐으며 재즈풍이었던 1집에 비해 조금 더 부드러움이 가미됐고 발라드가 주를 이루는 곡들로 선곡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다. 이어 2005년에는 워십 리더로 예배를 인도하며 예배사역단체 어노인팅(anointing, 기름부으심) 예배 팀과 함께 어노인팅 05 실황 앨범 ‘기름 부으심’을 녹음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의 찬양사역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은 예수전도단이다. 예수전도단의 찬양사역을 통하여 외국의 많은 노래들이 직수입되어 한국 교회의 애창곡들이 되었다. 예수전도단의 찬양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것이 기름 부음이다. 다음은 예수전도단이 시행하였던 ‘찬양인도자 학교’의 홍보지에 실렸던 내용이다.

“기름부음 넘치는 찬양인도자!
생각만큼 쉽지 않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번 세미나는 기름부음이 넘치는 찬양인도자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강사) 박희광 목사님은 예수전도단 서울 대학사역 금요모임 찬양인도자(현재 캠퍼스 워쉽), 예수전도단 서울 화요모임 찬양인도자로 섬기셨으며, 목사님만 독특하고 강한 기름부으심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상: 찬양인도를 소망하는 사람, 찬양인도를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
주제: 기름부음 넘치는 찬양인도자.”

안타깝게도 목사, 장로 등의 지도자들까지도 ‘설교의 기름 부음’, ‘선교의 기름 부음’ , ‘치유의 기름 부음’이라는 말을 예사로이 사용하면서 예배의 대표를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의 기름 부음’, ‘번영의 기름 부음’이라는 말까지도 예사롭지 않게 한다. 그래서 ‘풍수지리’, ‘기’와 같은 것으로서 인간에게 행운, 부, 건강을 주는 어떤 기운이 기독교에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b>중보기도과 기름 부음</b>

서울의 신사도 운동 교회인 큰믿음교회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들 중에 중보기도학교(교장: 김옥경 목사)라는 것이 있다. 김옥경 목사가 2012년에 카나다 밴쿠버에서 중보기도학교를 인도하는 영상을 보았다. 한 외국인 여성이 등장하여 김옥경 씨의 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었다. 다음은 그 외국인 여성의 말을 요약하여 통역한 내용이다.

“아기를 가지시지 못하는데 주님이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주셨고요,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취했고요, 그리고 이 분 안의 재정적인 문제들이 풀려지고(?) ... 그리고 우울증이 있으셨어요. 많은 묶인 것들이 풀리셨거든요. 그래서 나와서 간증하고 싶으셔서 나오신 거예요.”

그리고 김옥경 씨는 그 분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가정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완전한 자유함이 임할지어다! 자유함이 임할지어다! 임할지어다! happy예요! 행복이예요! 행복이 지금 들어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기름부음이 지금 들어가고 있습니다. 두려움, 근심, 걱정  떠나갈지어다! (청중들은 크게 아멘! 아멘!) 재정적인 묶임도 지금 풀릴지어다! (아멘! 아멘!). 풀릴지어다! 풀릴지어다! (아멘! 아멘!). 잃어버린 재정이 돌아올지어다! 돌아올지어다! 빼앗긴 재정들이 돌아올지어다! (아멘! 아멘!). 사탄에게 빼앗겼던 모든 것이 지금 돌아올지어다! (아멘! 아멘!). 돌아올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명하노니 이 가정의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돌아올지어다! 지금 돌아올지어다! (아멘! 아멘! 아멘!).”    

큰믿음교회의 중보기도학교의 교장인 김옥경씨에게는 참으로 비범한 능력이 있어 보인다. ‘기름 부음’을 부리고 조작하는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어디서 저런 것을 배웠을까? 못하는 우리가 모자란 것인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 내는 저 사람이 이상한 것인가?


<b>치유운동과 기름 부음</b>

기름 부음이라는 말을 온 세상에 퍼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온 세상에 퍼지더니 결국에는 백악관의 행사에서도 말 춤을 추었다고 한다. 기름 부음이 꼭 그렇게 널리 퍼졌다. 그러면서 더불어 교회 속에 ‘신기’가 돌기 시작했다. 큰 영향을 미치는 유명한 지도자들까지도 기름 부음을 이야기했다. 세상을 떠난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목사도 기름 부음을 전파하는 전도사였다. 하용조 목사가 손기철 장로를 소개하며 사람들이 그의 집회에 참여하도록 홍보하는 영상을 보니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손기철 장로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종을 창조과학회를 통하여 오랫동안 지적훈련을 시키셨고, 건국대학교 학장으로서 학문에서 탁월한 성취를 하신 분인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분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병 고치는 치유사역과 내적치유 사역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 주 월요일마다 모여서 말씀을 듣고, 병을 고치고, 하나님의 기적과 성령체험을 하는 ...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 분에게서 배우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역사가 손기철 장로님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손기철 장로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직접 목격하고 ... 이번에 얼바인 온누리교회에서 손기철 장로님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 받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고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흥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행전적인 사건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손기철 장로님을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셔서 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하용조)
  
사람들은 세상 떠난 분에 대해 나쁜 이야기 하지 말라고 유학자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이 일은 사탄의 미혹에 물든 교회를 되살리자는 일이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가려야 할 여유가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교회에 ‘신기’를 불러온 기름 부음이라는 비성경적인 사상에 그 유명한 하용조 목사까지도 동조하고 홍보하였으니 사람들은 기름부으심을 얼마나 좋게 여겼겠는가. 하용조 목사가 남긴 악영향은 이 정도가 아니다. 그는 사도와 선지자 사상도 가지고 있었다.

“요즘에는 복음전도자나 목사나 교사는 잘 이해하지만, 사도나 선지자의 직분은 아직도 숨겨진 직분으로 교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다. 사도나 선지자의 개념도 목사나 교사의 개념처럼 교회 안에서 널리 사용되기를 바란다.”(하용조)


<b>기름 부음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b>

기름 부음이라는 말의 느낌이 좋으니 약방의 감초처럼 여기저기에다 붙이고 있다. 그러나 기름 부음을 나누어 주거나, 임으로 조작하여 부리는 것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서려는 위험스러운 행동이다. 기름 부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선물인 성령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을 받게 한다는 것은 성령을 밀어넣어 준다고 하는 말과 같은 뜻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 18,19)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행 4:27)

성경은 예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가 선지자, 하나님나라의 완전하신 왕, 대제사장으로서 오셨다는 뜻이다. 즉 메시야로 오시어서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의 다윗이나 제사장들처럼 실제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오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구약의 왕, 선지자,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었던 의미가 예수를 통하여 다 성취되었으므로 “예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기름 부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기름 부음을 실제로 받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성령세례와 기름부으심을 거의 같은 뜻이다. 요단강에서 예수께서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성령세례)이 임하였다고 한다.

성경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성경해석에 기초하여 말도 안 되는 기름부으심 이론이 퍼지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이 건국대학교의 부총장이고, 해븐리터치 미니스트리(HTM)의 대표인 온누리 교회의 손기철 장로이다. 손기철 장로는 자신의 책 ‘기름부으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막 3:16).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눅 4:1).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충만하셨고, 뒤이어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누가복음 4장 18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눅 4: 18).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후에 권능을 자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세가 있고,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신 것도 바로 기름 부으심이 임했기 때문입니다.”(손기철)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세례(기름부으심)이 임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성령의 반복적인 임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된다. 그들은 신자들이 일단 성령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다시 성령이 임하여 능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두 번째 성령이 임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령세례이며, 다른 말로는 ‘기름부으심’이다. 때로는 ‘성령체험’이라고도 한다. 이런 이론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출생하셨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요한을 통하여 성령세례(기름부으심)를 받고 권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가르친다. 그 유명한 마틴 로이드존스(D. Martyn Lioyd-Jones)도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를 그렇게 가르쳤다.    

“다 시 한번 말하면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분에게 임하셨다. 바로 그때 주님은 메시아적 사역과 구원사역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으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마틴 로이드존슨)    

예수의 요단강 세례 사건을 기름 부음 받았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자는 영원전부터 성령과 연합되시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인격적으로는 다른 분들이시나,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서로 상호간에 내주하시면서 존재하신다. 예수님은 미리아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되시었다. 출생하여 지상에서 사시는 동안 내내 예수 안에서 성령이 함께 거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우리처럼 죄인으로 태어난 분이 아니므로 성령으로 중생하시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하신 분이었으며 결코 우리처럼 성화의 단계를 거치시지도 않았다. 그런 분에게 왜 두 번째 성령세례가 필요하겠는가? 왜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의 상태인 기름부으심인지 뭔지를 받으셔야 했겠는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하고 또 필요하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으로 태어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중생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되어 차츰차츰 신앙와 영혼이 업 그레이드(up grade) 되어지는 우리 죄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출생하였을지라도 다시 성령의 권능의 기름부으심을 받야 구속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이론은 예수와 우리 죄인들을 동일시하는 오류이다.  


<b>예수의 요단강 세례는 공생애의 출범식</b>

예수의 요단강 세례는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기름부으심이 아니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협력에 의해 예수께서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임직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을 모르고 성령의 권능받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식한 용맹이다. 우리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하는 의미의 세례였다. 그 순간부터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승인식으로 해석할 사안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메시야 대관식’이라고 한다.  

기름 부음이란 실제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우리들의 노력, 경건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금식기도를 오래 한다고, 뜨겁게 찬양을 부른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서 기름 부음을 받아온 사람에게 이마를 들이밀어 얻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런 것은 귀신의 능력을 전수받는 무섭고 끔찍한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다. 신약 성도의 기름 부음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을 뜻하는 상징저인 말일 뿐이다.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죄 씻음 받은 정결한 성도에게 하나님이 보내시는 예수의 영을 기름 부음이라고 성경은 표현한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

성령은 지상을 떠나 승천하신 예수를 대신하여 오셨다. 구약의 기름부으심의 의미를 다 성취하신 예수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오셨으므로 우리도 기름부으심을 받은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수를 대신하여 오신 성령으로 되어진 일이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으심’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쓰러뜨리고, 자는 사람 가슴을 압박하면서, 이상한 소리가 주절주절 나오게 하면서 하나님이 기름 부음을 억지로 준다는 이야기는 성경적인 기독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것은 전부 마귀가 기름부으심이라는 거짓을 통해 밀어 넣은 ‘신기’이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사도 요한은 오직 우리 속에 거하시는 예수의 영, 성령을 의미하면서 기름 부음이라는 말을 썼다. 성령으로부터 특별하게 풀려나오는 권능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 타령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항상 권능, 능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쓰러짐, 울음, 눈물, 괴이한 방언, 방언찬양, 성령춤 ... 이런 것들과 엮어놓는다.

어떤 도시에서 만난 한 젊은 목사는 이런 사상이 거짓이면 비성경적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하였다. 기름부으심이라는 말은 예수의 피로 깨끗해진 성도에게 하나님이 보내시는 또 다른 예수인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없다. 진정한 기름 부음 받음의 증거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수긍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사탄이 장난하여 주절거리는 소리가 나오게 하거나, 혹 그가 교인들에게 손을 댈 때 쓰러지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그 길로 곧바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b>‘기름 부음’은 영지주의를 대적하며 했던 말</b>
    
사도 요한이 영지주의를 대적하면서 ‘기름 부음’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성도들은 ‘미혹케 하는 자들’(요일 2:26)이 나타나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들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을 ‘적그리스도’(요일 2:22)라고 하면서 대적하였다. 영지주의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100% 인간이고 100%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예수가 단지 한 인간이었을 뿐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직전 하나님의 영이 예수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떠나갔다고 하였다. 결국 인간 예수만 십자가에서 죽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적이 없다고 가르쳤다.

오직 한 인간 예수만 죽었기에 우리 구원의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사탄은 이렇게 거짓 사설로서 성도들을 신앙으로부터 이탈시키려 하였으나, 요한 사도는 안심하고 있었다. 진리의 영이시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참된 성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진리를 따르도록 성도들의 마음을 진리로 조명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는 그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사도 요한의 말을 다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아! 너희 속에 진리의 성령님이 거하시면서 역사하심으로 너희가 영지주의 사설에 미혹당하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설 것을 나는 확신한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오직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확실하게 거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오늘 날 어이없게도 이 말씀이 악용되고 있다. 미혹의 장난을 부채질하고 포장하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기름 부음은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일 뿐이다. 한번 받으면 영원하고 충족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더 많이 기도하여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부흥사들의 집회에 가서 더 받는 것이 아니다. 신학을 모르고,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찬양하다가, 뭔가를 느끼고 기분이 달라지니 멋모르고 만들어 낸 말이 기름부으심이라는 말이다. 귀신이 더불어서 역사하여 기름부으심이라는 큰 홍수가 나타났고, 나중에는 광범위한 신기가 되었다. 신기있는 교인들이 많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힘써 찬양을 부르며 이마 뜨거워지고 가슴이 시원해진다. 그것을 기름부으심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아니다. 오신 성령은 한 번 임하시면 영원히 떠나지 않고 내주하신다. 만일 성령이 밀물과 썰물처럼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분이라면,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기존에 임하신 것 위로 더 임하시는 분이 아니다. 떡시루의 시루떡 같이 오늘의 성령, 내일의 성령이 더해지고 쌓여가면서 지층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번 성령이 임하시면(기름 부음) 더 이상 성령이 또 임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시작한다. 성령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이다. 그리고 예수를 닮아가는 ‘성화’가 시작되고, 교회를 섬기도록 은사가 나타난다.    

“성령세례는 물세례와 마찬가지로 한 번만 받지만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넓고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여러 번 받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더 큰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기름부으심을 이미 받았으면서, 더 많은 받고 싶다고 말하는 손기철 장로의 말은 모르는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드는 고약한 말이다. 기독교를 오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께서는 시제로 기름 부음을 받은 적이 없다. 예수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하나님에게 기름을 붓겠는가? 단지 구약의 기름의 예식의 의미를 다 성취하셨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우리도 또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것이 요단 사도의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요일 2:27)이라는 말의 전부이다.

그릇되고 모호한 개념을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상에 빠져서 끌려다니는 신앙생활을 ‘신기’이다. 나는 어떤 교회의 몇 사람이 친히 성령의 기름 부음을 다른 사람에게 발라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손바닥으로 기름을 포근하게 바르는 시늉을 하면서 노래에 젖어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신기였다. 그런 사람들이 더 나타나지 않으면 좋겠다.그런데 아직도 기름 부음이라는 말을 멋대로 쓰면서 강의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중보기도자의 영성관리’, ‘중보자의 삶’, ‘중보기도의 실제’, 그룹 워크샵 등이 개설되며, 이용희 대표가 인도하는 저녁 강의 ‘주님의 음성듣기’, ‘기도의 기름부음’, ‘영적권위, 정직과 순종’ 등은 열린 강의로 등록 없이도 들을 수 있다.”

이 내용은 지난 2월에 개최된 에스더기도운동(이용희)의 ‘제 12기 기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의 내용이다. 그 동안 신사도 운동과 관련하여 많은 지적과 권면을 받아 많이 개선되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직도 기름 부음이라는 말과 개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이제 더 이상 기름 부음이라는 그릇된 개념을 말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동하도록 이말 저말하시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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