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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 미주 뉴스앤조이에서도 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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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중보기도 운동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중보기도 운동을 전개하는 많은 단체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은 “에스더기도운동”(Esther Pray Movement, 이용희 교수)이라는 단체인 것 같다. 에스더기도운동은 2007년 4월에 약 3000명이 “오산리 최자실 금식기도원”에서 3일간 단식하면서 나라의 죄악을 회개하는 기도를 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에스더기도운동은 동성애, 낙태, 북한의 인권문제 등에 큰 힘을 쏟고 있으며, 2009년부터 매년 두 차례 “Jesus Army Conference”를 개최하면서 젊은이들의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는 미주와 중국, 뉴질랜드에서도 Jesus Army Conference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b>중보기도 운동이 신사도운동의 서곡이었다</b>

에스더기도운동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중보기도 운동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보기도 운동 그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서곡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사도운동의 신학체계를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자신의 책 「Dominion」의 제 1장 “New Wind: The Second Apostolic Age”에 2001년부터 제 2의 사도시대가 개막되기까지의 신사도운동의 태동과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피터 와그너는 1970년대에 신사도운동의 태동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중보기도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중보기도의 직분(the office of intercessor)과 중보기도의 은사(the giff of intercessor)에 대해서 무지하였던 교회들이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 선지자의 직분(the office of prophet)과 은사(the gift of prophet)에 대해서 교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 사도의 은사(the gift of apostle)와 직분(the office of apostle)에 대해서 교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중보기도자들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그들의 주된 사명이 하늘과 땅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길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보기도자들은 하나님의 주신 영적권세로 혼돈을 일으키는 사탄의 능력을 무력화하고 결박시키는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중보기도자들이 자신들의 사역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이 땅 위에 더욱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font>

피터 와그너는 하나님께서 왜 중보기도자들을 가장 먼저 교회에 보내시고, 다음에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들을 보내셨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탄의 능력을 결박하는 영적권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스더기도운동과 관련된 자료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이 나타나는 사례들이 많았다. 중보기도에 대한 이런 이론이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은 모든 신사도운동 교회들과 단체들에게 지금 만연해 있다. 그래서 신사도운동 성향을 띠는 모든 단체들은 중보기도 스쿨, 중보기도 세미나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 이러한 중보기도 훈련 프로그램들과 세미나들이 사람들을 신사도운동으로 유인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신사도운동 교회인 큰 믿음 교회에서도 중보기도학교를 일찍부터 운영하였고, 그리고 그 교회의 김옥경이라는 분이 미국의 한인교회들에게 까지 찾아와서 그 교회의 중보기도학교를 운영하였다. 신사도운동 성향이 농후한 선교단체 인터콥(최바울)에서도 중보기도는 매우 강조되었다. 내가 미시간에서 비전스쿨을 들었을 때에는 인터콥의 유소리 선교사는 분이 중보기도에 대해서 강의하였고, 또 다른 대표적인 인터콥의 선교사였던 이지애라는 분도 여러 지역에서 크게 환영을 받으면서 중보기도 스쿨을 인도한다는 뉴스를 자주 보았다. 신사도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김종필 목사도 미국에서 엘리야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중보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에서 중보기도 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미주와 해외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하는 에스더기도운동에 대해서도 신사도운동 시비가 이미 오래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왜 중보기도 운동을 뜨겁게 전개하는 곳마다 신사도운동 시비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신사도운동은 중보기도의 물결과 함께 태동되었기 때문이다.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켰던 대표적인 두 사람 신디 제이콥스(Cindy Jacobs)와 피터 와그너의 경우를 보자. 이 두 사람은 한국의 성도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한 인터넷 싸이트를 보니 다음과 같이 신디 제이콥스가 소개되고 있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신디 제이콥스를 아시나요! 신디 제이콥스는 여교사이다가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받아 세게 여러 나라에 중보기도 특공대를 이끌고 있는 중보기도자의 용사이다. 그녀의 기도는 성령의 이끌림으로 기적적이며, 때로는 큰 대회를 앞두고는 사탄과 직접 대면하여 기도로 싸우기도 한다. 기도 중에 손을 들거나 적을 쳐부수는 동작을 상징적으로 취하기도 하며 깊은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기도하기도 한다. 그녀의 기도에 세계가 달려있기도 하고, 그녀의 기도에 하나님의 대회가 달려있기도 하다. 한국의 신디 제이콥스를 꿈꾸는 여교사들과 많은 중보기도의 용사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길 기도해 본다.”</font>

많은 사람들이 중보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직접 사탄을 대적하고, 구약의 모세처럼 하나님과 직적 대화하는 사람이 중보기도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는 세계의 역사는 이 시대에 존재하는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를 통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보기도 사상이 더욱 위험스러운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배하는 사역(?)을 하다가 보니 하나님의 즉각적인 계시와 예언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많은 유명한 중보기도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음성, 환상, 계시, 예언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신사도운동의 세계로 빠져들아가는 현상이다.
    
중보기도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신디 제이콥스와 피터 와그너의 경우를 보자. 신지 제이콥스는 지금 신사도운동을 대표하는 거짓된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고, 가장 대표적인 거짓 예언자이다. 교회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보기도 운동의 역할과 필요성을 설명하는 유명한 책「방패기도」(Prayer Shield)를 비롯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며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킨 피터 와그너도 사도이며 신사도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특히 그는 신사도운동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전 세계의 거짓 사도들의 네트웍인 “국제사도연맹”(ICA,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의 중심인물이다. 중보기도 운동과 신사도운동을 이렇게 맥을 같이 한다. 중보기도 운동과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세계 교회들이 일찍 엄히 경계했다면 신사도운동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의 피터 와그너의 말도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하나님의 목적이 충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보기도자들, 선지자들, 사도들이 모두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직분이 모두 등장하여 한 곳에 모이게 되면서 제 2의 사도시대가 본격화 되었다”</font>


<b>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기도하신다</b>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 중재자(중보자, mediator)를 세우시고 일하셨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도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 중보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수여하실 때에도 모세라는 중보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왜 하나님은 인간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시고 중간에 중재자를 두셨던 것일까? 타락한 인간이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자신의 죄로 인해 멸망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하는 사람을 세우셨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대제사장들과 같은 인간 중보자들은 온전하지 못했다. 단지 참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온전한 중보자가 되신 이유는 그 분이 하나님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대변하면서 중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중보자들은 그 자신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하지도 대변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입장과 하나님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대변하는 100% 온전한 중보자였다.  

구약의 인간 중보자들은 죄인을 처벌하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동시에 구원을 얻어야 할 죄인들의 절대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아 죽으심으로 인간에 임한 하나님의 저주를 해결하셨다. 동시에 인간의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도 만족을 주셨다. 하나님과 인간 양편을 100% 만족시키시는 온전한 중보자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중보자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시고, 오직 그의 기도만이 중보기도이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에 중보 기도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중보 기도하는 은사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누구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 없다. 어떤 성도가 아무리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잘할지라도, 결코 중보자가 아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타인과 국가와 교회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칠 뿐이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되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참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에만 기도할 자격이 생기고, 기도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지금 여전히 중보기도, 중보 기도팀, 중보기도자, 중보기도 운동이라는 용어들이 만연해 있다.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애써 설명하지 않고 관습적으로 중보기도라는 말을 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보기도에 대한 그릇된 이해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최근에 경험한 한 가지 사례를 이야기 하고 싶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지역의 영적회복을 위한 연합 중보기도 집회가 열렸다. 그날 설교하시는 목사님은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기도”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기도를 하려면 기도하는 동안 동시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이나 예언적인 감동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 중보기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느끼고 또한 즉각적으로 감 잡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형식의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보기도라는 말도 쓰지 말고 바로 잡아야 하는데, 게다가 불건전한 예언사상을 접합하여 가르치지 것이었다. 그러니 성도들에게는 얼마나 오해와 혼란이 심하겠는가? 그 뿐이 아니었다. 중보기도회(?)를 인도하는 동안 내내 마치 한국의 70년대의 삼류 카바레의 밴드처럼 찬양팀이 노래(찬양)을 연주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중보기도를 가르치고, 그런 식의 노래를 곁들이는 대표적인 곳이 캔자스시티의 IHOP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음이 정말 불편했었다. IHOP의 마이크 비클(Mike Bickle)은 2011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중보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고 우리가 다시 그것을 주님께 말씀드려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 때 그 분이 손을 펴시고 능력을 베푸셔서 이 땅 가운데 그분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우리를 통해서 풀어 넣어 주신다. 지금도 이 방법대로 움직인다. 과거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문화를 이 땅 가운데 이뤄야 한다고 확신한다.”</font>

비성경적인 중보기도 이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그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중보기도자들을 구하고 있고, 중보기도자들은 역사를 변화시키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아가 얻지 못한 고로”(겔 22:30)

그러나 이 말씀은 장차 오실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각 시대의 인간 중보기도자들에 대한 말씀이고, 또한 진정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 성취되었고, 지금 성취되고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 지금 교회에 중보기도 운동이나 중보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중보기도에 대한 별의별 소리들이 횡횡하고 있다. 인터콥의 비젼스쿨(유소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지성소에 들어감으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한 존재가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에덴을 거닐었던 존재로 회복되어서, 그리스도의 자리에서(자리에 앉아서), 하늘과 땅의 일들을 통일시키고, 하늘과 땅의 일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행위”가 중보기도라고  가르쳤다.

인터콥의 중보기도 강의를 인도했던 또 다른 유명한 강사 이지애라는 여성은 시리아 등지의 사탄의 진지를 찾아다니면서 사탄을 결박하는 중보기도를 하였더니, 얼마 후에 뉴욕 월가(Wall street)에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고 강의했었다. 이지애 총무라는 여성이 그런 괴이한 중보기도 사상을 강의했던 곳이 에스더기도운동의 금요철야 기도회(2009년 6월 19일)시간이었다.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에스더기도운동이 바른 기도운동을 전개하는 곳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서로 비슷하지 않으면 어찌 그런 사람을 강사로 불렀겠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과 땅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사실을 간과하거나, 기도를 잘한다고 하여 자신이 참 중보자이신 그분 옆 자리에 걸터앉을 수 있는 영적인 실력과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사탄에게 포로되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조종하거나 중재하는 권한과 권세가 있는 중보기도자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사탄이 더 착각하도록 재미나는 일들을 더해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사탄이 아닐 것이다.

중보기도의 권세를 가졌다고 착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망상증이 보인다. 인근 한인 마켓에 못 보았던 어떤 외지 목사의 설교 CD가 등장했다. 타주에서 활동하는 그 목사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갖다가 놓는 모양이다. 그 목사는 자신이 어떤 도시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자꾸 사탄이 막는다고 했다. 자신이 기도하고 지나가기만 해도, 자신이 땅을 밟기만 해도 도시에 영적인 변화가 일어날 텐데, 갈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신사도운동의 땅밟기 중보기도 사상에 빠져 망상증이 심각한 목사였다.  

성경적인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서 오직 그를 의지하며 드리는 기도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되게 기도하는 성도는 기도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인다. 자기가 기도의 내공이 강해져서 기도의 장군이나 되는 듯이 행동하는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하나님의 때를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이 나타나면 더욱 감사드리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기도를 더 할수록 믿음이 이상해지고, 어쩌다가 기도의 응답이 나타나면 자신의 기도의 영험함에 스스로 놀라서 앞으로 뭐든지 자신이 기도로 건드리면 다 될 것같이 들뜨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유일하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성경적인 믿음의 결과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참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중보자가 될 수 없다는 것, 인간 자신에게는 영적인 권세가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 오직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 때에만 하나님의 영적인 권세와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 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것을 놓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람을 중보기도자로 세우고, 사람들의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키는 집단은 성경의 이 진리를 거역하고 허무는 자들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보기도라는 말 대신 “남을 위한 기도”, 중보기도회라는 말 대신에 “합심기도회”, "연합기도회" 등으로 바꾸어 가야 한다.


<b>이용희 교수의 중보기도 사상은 성경에서 벗어났다</b>

어떤 분이 에스더기도운동의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이용희 교수의 중보기도학교 강의안을 소개하면서 그의 중보기도 이론이 성경적인지 물으셨다. 그래서 이용희 교수의 중보기도학교 강의안을 보게 되었다.

이용희 교수는 제 4강의 초반부에서 “중보기도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본받는 사역”이라고 정의한다. 본받는 다는 것은 그 정신과 원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따른다는 의미이다. 이용희 교수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mediate)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 사역을 따라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신약의 성도들이 참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다른 사람의 형편을 아뢰면서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중보자가 되어서 직접 중보하는 기도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에스더기도운동의 영향을 받는 성도들의 신앙의 변질이 예상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2:1,2절에서 성도들이 다른 성도들과 정부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그 내용이 결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mediator)가 되어 기도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께 기도할 자격을 얻게 된 성도가 타인과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권하는 단순한 내용이다. 이용희 교수의 중보기도학교 강의안을 디모데전서 2:1절의 “도고”(헬라어 “앤튝시스”)라는 단어를 많은 영어성경들이 "intercession"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고, 이 단어가 한국말로는 흔히 “중보”라고 번역함으로 성경이 성도들에게 중보하는 기도를 명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고라는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인 기도를 의미하는 말이지 결코 중보기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 단어가 딤전 4:5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앤튝시스)로 거룩하여 짐이니라”에서도 등장한다. 대부분의 영어성경들이 이때에는 “payer”라고 했고, 우리말 성경은 “기도”라고 번역하였다. 나는 좀 더 분명하게 디모데전서 2:1절에 등장하는 기도의 종류를 이해하고자 진목연의 신학자문이신 서철원 교수(전 총신 신대원장)에게 주해를 부탁드렸다. 다음은 서철원 교수께서 딤전 2:1절에 관하여 서설명하여 주신 내용이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딤전 2:1에 기도의 종류들이 나와 있습니다. δεήσεις(데에세스, petitons), προσευχὰς(프로슈하스, prayers), ἐντεύξεις(엔튝시스, intercessions), εὐχαριστίας(유아스티아스, thanksgivings). 첫 번째 “데에세스”는 간청 혹은 간절한 부탁이고, 두 번째 “프로슈하스”(단수로는 프로슈헤)는 그냥 통상 기도를 나타내고, 세 번째 “엔튝세스”(단수로는 엔튝시스)는 청원, 탄원, 기원이고, 마지막 “유하시스티아스”(단수로는 유하리스티아)는 감사, 감사함입니다.

그러면 엔튝시스는 청원, 탄원, 기원이지 도고가 아닙니다. 도고로 전혀 번역할 수 없는 단어이지요. 칼빈도 이 구절을 주석하기를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였지 도고는 전혀 아닙니다. 단지 라틴어 번역에 그렇게 intercession 으로 옮겨진 것이 있다고 하였을 뿐입니다. 주석의 왕자라고 할 벵겔은 그냥 재난의 방지를 위해서 하는 기도라고 주석하였어요. 화란의 주석가인 바우마는 그냥 부름, 기원으로 주석하였어요. ICC 주석 중 딤전 2:1은 단지 왕에게 내는 청원으로 쓰인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께 내는 청원이지 도고는 전혀 없어요. 라틴어로 intercessio 라고 한다고 하였지만, 불가타 성경에는 그냥 청원을 나타내는 단어인 postulationes (1Ti 2:1 VUL) 라고만 썼어요. 결론은 엔튝시스는 청원이고 결코 도고가 아닙니다.”</font>

이제 에스더기도운동의 모든 회원들이 중보기도하는 사람, 또는 중보기도의 은사가 지금의 교회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중보기도라는 개념으로 기도운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공로로 기도할 자격을 얻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 외에도 이용희 교수는 에스겔 36:36,37절과 에베소서 6:18,19절 등을 예로 들면서 성경이 성도에게 중보기도를 명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신약 성도에게 중보기도 할 자격이 있다거나 중보기도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은 아니다. 단지 기도를 가르치고 강조하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이용희 교수는 “중보자 요건”으로서 1)사죄의 확신, 2)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음, 3)말씀 안에 거해야 함, 4)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를 해결 함, 5)경건의 능력을 가져야 함 등의 요소를 강조했다. 또한 “중보자의 권세”로서 1)왕 같은 제사장: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대속자, 2)예수 이름의 권세: 예수 이름의 사용권을 부여 받음, 3)영적인 권세: 땅에서의 기도로 하늘의 영적세계를 움직이는 권세, 사탄을 제어하는 권세, 4)의인의 권세: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워진 의인의 권세(거룩과 능력)를 가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볼 때 이용희 교수는 한국 교회가 참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에서 관습적으로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조정과 중재의 차원에서 중보기도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로 이러한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중보기도 운동을 펼치고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세우는 집단이 자연스럽게 신사도운동과 성향이 같아진다는 사실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b>에스도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에는 신사도운동 성향이 심하다</b>

실제로 이용희 교수와 에스더기도운동은 어떻게 중보기도 운동을 벌이고 있을까? 우리가 일일이 그들의 현장을 찾아갈 수가 없으나 에스더기도운동이 힘을 다하여 추진하는 Jesus Army Movement의 핵심적인 프로잭트인 Jesus Army Conference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이야기 하도록 하자. 다음은 2009년 2월에 강남중앙침례교회와 이 교회의 양수리 수양관에서 개최된 에스더기도운동의 “제 1차 Jesus Army Conference”를 소개하기 위해 에스더기도운동이 만들어 배포한 영상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신사도운동교회의 변승우 씨가 등장한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한국 C.C.C 대표하셨던 김준곤 목사님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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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영이 깨어난 젊은이들이 일어나셔야 합니다. Prayer general! 기도의 장군들이여! 그들이 가면 기도의 그룹이 만들어지고, 묶고 푸는 역사가 일어나고, 돌파가 되고, 변화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중보의 장군의 옷을 입으십시오. 기도로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십시오.”</font>(박호종 목사, 한국 HIM 디렉터)

유명한 한국인 2세 신사도운동가이며 유명한 사도로 이름이 난 체안(Che Ahn, 안재호 목사)이 설립한 신사도운동 교회들과 사역자들의 네트웍인 HIM(Harvest Internal Ministry, 국제추수선교회)의 한국 디렉터라고 소개되는 박호종 목사는 이렇게 설교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신사도운동의 중보기도 사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피터 와그너와 신사도운동가들은 중보기도자들에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권세가 있으므로 그들의 중보기도가 훼방하는 사탄의 능력을 결박하고 파괴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들은 자연히 탁월한 기도장군이 되는 것이다. 기도를 부지런히 하다가 저런 망상증에 빠지게 되는 것은 기도에 대한 기본 사상이 성경의 가르침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간절히, 쉬지 말고, 겸손히 기도하라고 하셨지 기도장군이 되어 침투하고, 돌파하고, 직접 영들을 묶으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 영적인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이루는 (군대), 신랑 예수를 고대하는 신부의 군대, 신랑 예수를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신부의 군대, 예수의 군대의 함성으로 온 열방이 뒤 흔들릴지어다!”</font>(이용희 교수, 에스더기도운동 대표)

이용희 교수는 지금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가 등장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군대가 어디서 등장하는 것일까? 자신의 에스더기도운동과 Jesus Army Conference를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를 육성한다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신사도운동의 황당한 요엘의 군대(Jeol’s Army) 사상이다. 요엘의 군대라는 개념을 언제 누가 최초로 사용하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대표적인 신사도운동의 거짓 선지자 폴 케인(Paul Cain)이 젊은 시절에 본 환상에서부터 요엘의 군대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신사도운동가들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지상 교회를 개혁하고 영적완성을 이룩할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키신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군대이고, 그 이름을 Joel’s army(요엘의 군대)라고 하였다. 80년대에 캔자스시티에서 예언운동을 시작했던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의 대화가 기록된 “어니 그루웬 문서”에는 두 사람의 대화에 요엘의 군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종말의 때에 30만 명이 하나님의 종말의 요엘의 군대의 리더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발탁되었다.”

“그는(밥 존스)는 상자 가득한 종말 군대를 위한 징병 통지서를 봅니다. 주께서 거기에는 30만 명의 소집 통지서가 있으며, 이들을 다음 세대에 전국으로 보낼 것이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것은 그때 내보내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 30만 명은 지구상의 10억이 넘는 회심자들을 이끄는 주된 리더쉽이 될 것이다.”</font>

약 30만 명이 요엘의 군대로 부르심을 입어 마지막 시대의 대 부흥과 대 추수를 이루어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신사도운동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다. 거짓 사도 타드 밴틀리의 목에 Joel’s Army라는 글귀가 새겨진 군인들의 군번문신이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유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신사도운동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는 군대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img src="/up/Tod.jpg">

신사도운동가들은 이런 황당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구약성경 요엘서 2장을 활용하였다. 불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이방 나라의 군대가 메뚜기 떼로 비유되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이 대부흥과 대추수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종말군대라고 해석한다. 정말 황당한 성경해석이다. 이용희 교수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라고 외치는 내용은 요엘서 2장 2절의 “이 같은 것이 자고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의 이미지이고, 또한 이용희 교수가 “예수의 군대의 함성으로 온 열방이 뒤흔들릴지어다”라고 외치는 내용은 외국군대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요엘서 2장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사실 성경 어디에도 종말에 대 부흥과 대 추수가 일어난다는 말씀이 없으며, 그러한 일을 추진하는 하나님의 군대에 대한 말씀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시대에는 신사도운동과 같은 거짓 복음의 운동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다음은 2009년 2월 강남중앙침례교회와 양수리수양관에서 개최된 제 1차 Jesus Army Conference의 홍보지에 나온 내용이다. 여기에서 신사도운동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거로 삼는 요엘서 2장의 내용이 이용희 교수가 추진하는 Jesus Army Movement 비전임을 말하고 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마지막 때의 전 세계적인 영적 부흥과 대추수를 위해 요엘서에서 예언된, ‘이 같은 것이 자고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욜2:2).’ 하신 권능의 군대가 곧 ‘Jesus Army’입니다. 군대 장관이신 예수님의 소집 명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강한 용사로 기름 부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font>

그리고 Jesus Army Movement의 비전을 설명하는 이용희 교수의 다음의 말도 그의 사상이 신사도운동의 요엘의 군대 개념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에스더는 Jesus Army의 모판이었다. ‘에스더가 결국 Jesus Army로 끝나겠구나.’ 요엘서 2장에는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가 나온다. 마지막 때를 위해 이미 성경에 예언된 군대 운동이다. 이것이 에스더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에스더기도운동이 Jesus Army Movement로 이어지고, 이 무브먼트가 세계적으로 연합해서 모든 나라를 뒤덮으면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font>  

신사도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일어나자 IHOP을 인도하는 마이크 비클은 요엘의 군대의 개념을 부인하고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였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정체성을 가진 “신부”의 개념을 창안하였다. 신부라는 더 세련된 용어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그 중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교회를 개혁과 역사를 영적으로 완성하는 종말운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성취하는 특수집단을 의미하는 비성경적인 개념이다. 소위 신부운동이라고 하는 이 운동이 전 세계에 퍼졌고, 신사도운동권에서는 요엘의 군대 개념보다는 신부의 개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위의 영상에서 이용희 교수도 “신랑 예수를 고대하는 신부의 군대, 신랑 예수를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신부의 군대”를 외친다. 에스더기도운동의 비젼을 설명하는 다른 글에서도 신사도운동의 신부의 개념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마지막 세대는 신랑 예수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부의 세대,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순교의 세대, 주님의 권세로 용사처럼 달리며 거침없이 사탄의 진영을 초토화시키는 예수 군대의 세대입니다.”</font>

초기 신사도운동의 요엘의 군대 개념, 요엘의 군대 개념이 조금 세련되게 변모한 후기 신사도운동의 신부의 패러다임이 이용희 교수에게서 모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사도운동권에서 요엘의 군대의 개념을 신부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 IHOP의 마이크 비클이다. 이용희 교수와 에스더기도운동의 행적을 살펴보면 IHOP에서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에스더기도운동은 2007년 7월에 3주 동안 IHOP의 Leadership Summit을 주관하였고, 1-4차 IHOP Conference를 주관하였었다.

그리고 2009년 8월에 이용희 교수가 미국에 방문하였을 때에 캔자스시티의 IHOP을 방문(8월 24일)하였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Jesus Army 홈페이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이용희 교수가 Jesus Army Movement의 비젼을 설명할 때 미국 IHOP을 언급하고, IHOP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확산된 신사도운동의 24/7 기도운동을 언급하기도 한 것을 보면, 이미 초창기에 마이크 비클과 IHOP의 사상이 에스더기도운동에 들어갔던 것이 분명하다.  


<b>이용희 교수는 선포기도에 매우 능하다</b>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 ... 예수의 군대의 함성으로 온 열방이 뒤 흔들릴지어다!”</font>

이용희 교수는 이렇게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변질된 기도를 일찍부터 시행하였던 모양이다. 이러한 기도가 주로 신사도운동가들이 시행하는 괴상망측한 선포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신사도운동 신학의 대가 피터 와그너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영적인 권세를 받은 중보기도자가 간구하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선포하는 기도를 시행하면 보통의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널리 퍼져서 도처에서 선포하는 기도가 시행되고 있고, 신앙지식이 부족한 많은 성도들이 선포하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인 줄로 오해하고 있다.

신사도운동의 요소가 많이 나타나는 온누리교회의 손기철 장로도 이러한 선포기도를 가르친다. 신사도운동 요소가 많아 교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인터콥의 비젼스쿨에서도 이러한 기도를 자주 시행하는 것을 내가 비전스쿨에 참여하는 동안 자주 보았다. 인터콥은 많은 문제들로 인하여 KWMA(한국선교협의회, 대표 강승삼 목사)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불건전한 모습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 참 유감이다. 2012년 2월 26일에 발송된 인터콥의 인터넷 기도소식지 “오늘의 미션”에 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상주의 열방기도의 집의 가족예배에 참석하여 어린이 팀의 간사를 만나 공부하고서 열방기도의 집이 완공되기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소개되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매주 기도의 집에 필요한 레미콘과 철근은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고 나올지어다!”</font>

기도하는 사람(중보기도자)에게 특별한 영적인 권세가 있어 이렇게 선포하면 그대로 된다고 그릇된 신앙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빙자하여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존귀하신 하나님 그 분에게 명령하는 꼴이다. 이런 망령된 짓을 저지르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기도의 거장, 기도의 장군이라고 자부하니 이것이 바로 사탄이 조장하는 변질된 복음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기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최고의 예배이고 경배이다. 그러한 기도를 올리려면 오직 참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며 겸손하고 간절하고 올바르게 기도하여야 한다.

이렇게 씩씩하게 선포하는 기도를 즐기는 분들이 혹시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이 “... 함께 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이 그 근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속히 오해를 풀기 바란다. 그 구절은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 ... 너희 모두에게”라고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하게 받고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이 임하심으로 구약의 아론의 축도와 같은 형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9,30절)</font>

성령의 역사가 풍성했고 또한 매일 생사가 오고가는 치열한 상황을 살았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이용희 교수처럼 “...찌어다!”라고 선포하면 더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면 누구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가장 먼저 그러한 본을 보였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런 짓하지 않았다. 기도하여 죽은 유두고(행 20:9)를 살기도 했고, 기도에 대해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남긴 사도 바울도 이용희 교수처럼 기도하는 본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였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 15,16절)</font>

기도를 바르게 배워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다. 기도를 안 하거나 이상하게 하면 좋은 성도가 될 수 없다. 잘못하면 무당과 비슷해 질 수도 있다. 어린 초등학생이 기도를 저렇게 배우면 그의 믿음의 장래가 어찌되겠는가? 다음은 2009년 7월에 에스더기도운동이 수원의 힌돌산 기도원에서 개최한 “제 2차 Jesus Army Conference”의 홍보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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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목사 릭 워랜이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고, 조엘 오스틴 목사가 몰론교를 기독교로 인정하는 심각한 배교의 물결을 경계하는 것은 매우 좋다. 그리고 북한의 참혹한 영적인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용희 교수가 선포하는 기도를 시행하고 있다.

<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성을 기어오르며, 아무도 당할 자가 없는, 주님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서, 사탄의 모든 영역까지 치고 들어가,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예수의 군대의 함성으로 온 열방이 흔들릴지어다!”</font>

성을 기어오른다는 말은 요엘서 2장의 메뚜기 떼에 대한 이미지이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사나운 외국 군대를 의미하는 말인데, 신사도운동가들은 자신들이 이처럼 세상을 영적으로 정복해간다고 믿는다. 이용희 교수의 비젼과 꿈이 신사도운동의 이론과 감성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서 사탄의 모든 영역을 치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있는 중보기도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 이용희 교수의 목표임이 드러나고 있다. 정말 큰일 날 일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그런 분인데, 인간 중보기도 자들에게 그런 능력과 권세가 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를 초월하는 괴이한 사상이고, 신사도운동의 중보기도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이용희 교수는 선포하는 기도를 거침없이 발하고 있다. 자신의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시행되게 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자신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용희 교수는 자녀가 “나에게 용돈이 생길지어다!”라고 외치면 기뻐하면서 용돈을 주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만일 내 아들이 내가 용돈주기를 바라고 그런 소리를 외친다면 “‘어디서 그 따위 말을 배운거야? 아버지! 용돈 좀 주십시오!’라고 바르게 말해!”라고 단호하게 나무랄 것이다. 에스더기도운동의 집회에 참여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괴이한 믿음과 사상이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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