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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의 인물은 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올바른 관점’과 ‘객관적 자료’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고)한경직 목사에 대한 위의 영상과 어떤 신문의 기사를 읽다가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게 되었다. 위의 영상에서 (고)한경직 목사의 성품과 생애를 아름답게 기술하는 내용은 많으나, 그의 신앙의 심각한 오점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은 느껴지지 않게 매우 조금 밖에 기술되지 않았다. 그에 관한 또 다른 신문의 기사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경직 목사님의 성품과 신앙 속에 누구나 동의하고 존경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시에 그의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와 경계심을 가지게 만드는 자료들도 존재하고 있다. 한경직 목사의 일생을 이야기하며, 우리 후세들이 진정으로 유익을 얻고 귀한 교훈을 얻게하려면, 이런 모든 내용들이 함께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1902년에 평안남도 공덕면에서 출생하였고, 평양의 숭실대학, 숭실전문대학에서 공부항 후 미국으로 유학길(1926년)을 떠나 캔자스 주 엠포리아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구하였다. 1932년에 귀국하여 평양 숭인상업학교, 평양 숭실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33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목회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5년 공산당의 탄압을 피해 월남하여 과거 일제의 ‘천리교 경성교구본부’ 부지를 매입하여 ‘베다니전도교회’를 설립하여 목회를 시작하였다.


1946년 베다니전도교회가 ‘영락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후 영락교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하였다. 영락교회의 목회활동을 통해 한경직 목사도 한국 교회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기게 되는 큰 목회자가 되었고, 1973년에 은퇴하여 영락교회의 원로목사가 되었다. 은퇴 후에도 아세아연합신학교 이사장, 군복음화운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1992년에는 ‘노벨종교상’으로 불리어지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였다. 199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공로장을 수훈받았고, 2000년 4월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사람들이 (고)한경직 목사를 한국 교회의 성자로 높이면서 근거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무엇일까? 2013년에 김은섭 박사가 한경직 목사의 신앙과 리더쉽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용을 전하는 신문 기사를 통해 (고)한경직 목사를 한국 교회의 성자로 추앙하는 분위기의 주된 근거가 무엇인지 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그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도자로 꼽혔던 여러 사역자들의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면서 ‘과연 우리 기독교에는 청담(스님) 같이, 김수환(추기경) 같이, 사회로부터 존경과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없는가. 여기 한경직이라는 인물이 있다. 비록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한 사람이건만 그는 무소유했다. 얼마든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누릴 수 있었으나, 바보 같이 그는 그러지 않았다’고 전했다.”(김은섭 박사)


이 내용이 김은섭 박사가 한경직 목사의 신앙과 리더쉽을 평가하는 강의를 전하는 기사의 마지막 문단이다. (고)한경직 목사를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1922-2009), 불교의 청담승려(1902∼1971)와 더불어 한국의 불신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독교 지도자라고 하였다.


기독교 지도자가 불신자들에게서 김수환 추기경이나 불교의 고승들처럼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성경적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죄의 사하심을 받지 못하여 죽자마자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믿는다. 이 사실에 대해 충실한 기독교인이 불신자들에게 진정으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능할까? 이런 근본적인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 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불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고 의탁해야만 살길이 열리는 시한부 사형수라고 말해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다. 과연 어떤 불신자가 이와 같은 성경적 사상으로 무장된 기독교 지도자의 정체를 알면서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존경할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 청담승려, 법륜승려 ... 등은 불신자들이 죽자마자 뜨거운 지옥의 형벌에 들어간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 자신도 그 진실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비성경적인 종교인들이었다. 어떤 기독교 지도자를 그런 비성경적 거짓 종교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해야만 당연한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김은섭 박사는 한경직 목사의 어떤 면을 그리 귀하게 보았을까? 그는 한경직 목사가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바보같이'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했다.


“한경직과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신행일치·언행일치의 삶을 살았다고 회고한다.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남을 도우라고 설교를 하고 자신은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말씀 그대로 남을 도왔다. 옷도 주고, 구두도 주고, 돈도 주고,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줬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존경해서 가져온 돈이나 물품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냥 줬다”(김은섭 박사)


과연 이런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목사로 부르심 받았던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고 요약하는 중요한 내용이어야 할까? 이런 내용은 생명의 복음이 없는 김수환 추기경, 청담 승려 등의 일생을 평가하고, 그들이 불신사회로부터도 존경을 받는 착실한 종교인으로서의 자질 수준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옷, 구두, 돈 등을 줄 수는 있어도, 복음과 거듭남을 주지 못한다. 불신자들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한국 교회 역사의 보석이라 추앙되는 (고)한경직 목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유치하기만 하다. 김은섭 박사는 또 다음과 같은 말로 한경직 목사의 신앙과 일생을 높이 평가했다.


“한경직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아이에게도 말을 높였다. 항상 주일날 새벽기도와 1부 예배를 드린 다음에는 본당에서 내려오는 계단에 앉아 주일학교 선생들이 오면 인사하고, 아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자신의 아내에게도 ‘오마니’라고 부르면서 존칭을 사용했다”


“어린아이와 아내에게까지 존칭을 사용했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한경직은 교회에서 당회와 같은 회의를 할 때도 억압적으로 한 적이 없고, ‘아니오’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한다. 회의를 할 때 누군가의 의견이 맘에 안 들면 ‘일리가 있네요’라고 했다. 영락농아인교회의 어떤 장로의 증언에 의하면, 교회에서 갈등이 일어나 청년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한경직은 청년들에게 무릎을 꿇고 ‘내가 잘못했다. 내 잘못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가 적어도 60은 됐을 것이고, 큰 교회 목사가 청년들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섬김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고)한경직 목사가 주일학교 어린이에게도 인격적인 존중의 자세를 가졌고, 한 청년에게도 무릎을 꿇기까지 하는 겸손을 가진 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청담승려와 김수환 추기경 같은 생명의 복음을 모르는 종교지도자들이 불신사회에서 존경을 받기에 좋은 종교인 자질에 대한 이야기 수준이 아닐까? (고)한경직 목사에 대해 이런 내용 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것이 참 아쉽다. 김은섭 박사는 또 다음과 같은 말로 한경직 목사의 신앙과 일생을 높이 평가했다.


“이철신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한경직은 현직에 있을 때 항상 어떤 조직이나 모임의 부회장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이 조직한 기구나 모임에서조차도 의장이나 회장은 다른 사람을 세우고 자신은 부회장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김은섭 박사)


“한경직은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가장 잘했던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빌리 그래함 목사가 와서 집회를 할 때,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던 무명의 젊은 김장환 목사를 불러서 통역을 시켰다. 그 뒤에 김장환 목사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계침례교연맹의 회장도 됐다. 김장환 목사는 한경직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곽선희 목사 또한 그러하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유명한 목사들이 무명의 젊은 목사 시절에, 한경직이 불러서 부흥회 강사도 시키고 한국교회를 위한 굵직굵직한 일들을 맡기고 하면서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고 고백한다”(김은섭 박사)


(고)한경직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종으로서 가장 중요한 본연의 사명에 대쪽같이 충실했으면서 이렇게 했다면, 이런 내용도 그를 좋게 평가하는 자료로서 더욱 빛이 났을 것이다. 문제는 한경직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에 합당한 신앙의 정결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인간적이고, 종교인 수준의 성품과 겸손의 본을 잘 보였다는 것이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펑크나고 더럽혀진 상태에서, 이런 인간적인 겸손과 사랑이 풍성했으니,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보시었을까? 


(고)한경직 목사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에 동참했다고 스스로 고백하였다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시절에는 신사참배하지 않고 살기가 어려웠으므로 모두가 주기철, 한상동, 손양원 목사처럼 신사참배를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일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리한 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도 (고)한경직 목사가 비슷한 배교의 길을 걸어갔다는 심각한 사실에 있다.


그가 생전에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를 잘하고, 후배들 앞에서 겸손하였고, 어린아이들과 자기 부인에게까지도 존칭을 사용하는 예의바른 사람이었다는 사실보다 그의 신앙와 일생을 평가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아무 생명의 위협도 없는 종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를 상황에서 십자가를 배반하는 배교의 길을 선택했다는 역사적, 객관적 사실이다.


1955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로 현재의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될 때, 한경직은 십자가를 배반하는 길을 선택했다. 당시 WCC 가입에 반대하는 측은 박형룡을 중심으로 뭉쳤고, 찬성하는 측은 한경직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 결과 현재까지 로마천주교, WCC 중심의 종교일치 운동에 대히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예장 합동과 로마천주교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면 종교통합에도 삳당히 오픈된 자세를 취하는 예장 통합으로 나뉘게 되었다. (고)한경직의 신앙과 목회노선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것은 가장 중시되어야 할 객관적인 사실이다. 왜냐하면 일제시대처럼 그에게 배교와 거짓을 선택하도록 권력에 의한 강요와 위협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배교의 물결 앞에 섰을 때, 한경직은 WCC 가입에 찬성하는 신앙이 길을 택했고, 그 무리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이 사실은 과거 일제시대 신사참배 죄악에 동참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배교의 죄악이었다. 그 어떤 신체적 위협, 강압이 없는 상황에서 순전히 자기의 신앙의 선택, 판단, 양심을 따라 결정한 일이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 WCC가 참 기독교 신앙에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고)한경직 목사 본인도 공개적으로 한국 교회에 WCC를 끌어드린 죄악을 범한 것을 참회하였으므로 WCC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 논쟁을 여기서 더 할 필요도 없다.


  
  
  


위의 사진들은 한국 교회의 일련의 목회자 무리들이 한국에 방문했던 로마천주교의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를 환영하면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장면(1984년)이다. 당시 교황을 환대하면서 자신들의 영혼과 한국 교회의 신앙을 더립힌 무리들의 중심에 (고)한경직 목사가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독교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마귀의 전략을 구사하여 많은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그는 천주교 중심의 세계의 모든 종교들간의 일치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력하에 유대교, 이슬람, 영국 성공회, 동방 정교회와 천주교 간의 대화운동이 시작되었고, 1999년에는 루터교회와 천주교 사이에 ‘의화교리 합의’가 탄생되었다. 루터교와 천주교의 ‘의화교리 합의’는 이후 감리교와 천주교의 의화교리 합의, 천주교와 미국의 CRC, PCUSA 등의 주요 기독교 교단들의 ‘세례협정문’ 체결로 이어졌다.


기독교를 배교하게 만드는 사탄의 효과적인 전략 무기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환영하고, 한국 교회와 로마 천주교 사이의 협력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경직 목사 앞장섰다. 이는 오래전 신사참배로 더럽혀진 그의 영혼의 불결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었음을 보여 준 사건이다. 그의 영혼에는 여전히 배교의 피가 흘렀고, 이후 통합 교단의 그의 유력한 후배들이 같은 배교의 길을 답습하였다.


(고)한경직 목사를 평가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하고 객관적인 자료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를 잘하고, 어린이들에게도 존칭을 사용하고, 후배 목회자들을 키우는데 힘쓰고 ... 그가 성자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복음과 진리 앞에서 그의 영혼이 불결했고, 그의 신앙의 척추가 여지없이 부러졌으니, 무슨 좋은 말 할 것이 더 있을까?


사람들은 (고)한경직 목사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신사참배의 죄악과 WCC와 종교통합 운동을 한국 교회에 끌어들인 죄악을 회개했으니, 더욱 더 위해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경직 목사의 배교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는 그 유명한 '탬플턴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종교영역의 노벨상이라고 알려진 ‘템플상’(Templeton Prize)에 대해 우리는 잘 몰랐다. 한국에서 무슨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목사가 나왔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템플상을 받은 목사라면 결코 복음에 합당한 목사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종교다원주의 추진 기관인 ‘세계종교의회’(Council for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의 창립 멤버였던 영국의 템플경이 제정한 이 상은 공로가 많은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로마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대표들을 포함하는 심사위원들의 지지을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독교 외에도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의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탬플상이 수여되고 있다. 과연 (고)한경직 목사가 이런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 자신과 한국 교회의 영광이었을까?


한경직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 허름한 양복 몇 벌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더 존경하였고 칭송하였다. 청빈하게 살았다는 사실과 탬플상을 받기에 적합한 신앙노선을 걸었다는 사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고)한경직 목사의 신앙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더 중요한 객관적인 자료일까?


신사참배 죄악을 범했다고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자리가 하필이며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받는 탬플상을 수상하는 자리였다는 것은 정말 아니러니하다. 템플상이 뭔지 모르고 받았던 것일까? 그 자리에서 신사참배 죄악뿐 아니라 WCC를 끌어들인 죄악도 언급하면서 반성했다고 알려졌는데, 템플상 받는 자리와는 전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위의 사진은 영락교회의 ‘한경직목사 기념사업회’가 2014년 4월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 한경직 목사’라는 주제로 기념강연회를 개최했을 때의 장면이다. (고)한경직 목사의 업적을 발표하고 평가가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 조계종 총문원장이었던 송월주 승려, 원불교 교정원장 이성택 원로교무, 천도교 교령 박남수 선도사 등이 중요 인물로 참석했고, 또 다른 불교의 유명인사 법륜스님이라는 이름도 플랭카드 우편 끝 부분에 보인다.


(고)한경직 목사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경멸하는 종교다원주의자였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생전의 업적을 기리는 자리에 이렇게 쟁쟁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그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공로가 많은 '기독교 배교자'들에게 수여되는 템플상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날 이 자리에 모여던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한경직 목사를 ‘성자’였다고 칭송하였을 리가없다. 과연 그는 한국 교회의 성자였을까? 예수님께서 눈엣가시같이 여기신 가증한 배교자였을까? 우리들은 (고)한경직 목사를 거울삼아 바른믿음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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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7941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197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5809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8273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6640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557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6811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8941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8198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384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239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0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