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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 운동의 예언

조회 수 6622 추천 수 105 2009.12.14 13:39:02
<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9:09)</font></p><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 height:150%">   사탄이 우리 시대의 교회 속으로 침투하는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예언이다. 사탄은 예언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효과적으로 잘 변질시키고 있다. 이것은 신사도 운동이 교회에게 주는 가장 심각한 선물이다. 신사도 운동의 피해는 이전의 자유주의 신학운동(Liberal Theology)과  종교다원주의(Pluralism)보다 더 무섭다.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 바이스러는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성경을 파괴하는 증상이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 바이스러는 감염 초기에는 더 뜨거운 기도, 또 열정적인 찬양, 은혜에 대한 더 간절한 자세 ... 이런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해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영적 엘리트 코스로 인도하는 특별한 은혜로 보여지기 쉽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1980년부터 신사도적 개혁운동이 시작되었고, 2001년부터 “제 2의 사도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 2의 사도시대의 가장 특징은 “사도적 예언”이다. 사도적 예언이란 기록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사역인 설교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하나님께로부터 직통으로 증거할 메시지를 받아서 기름부음 받은 권능있는 설교의 모양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말씀을 의미한다.

   말이야 엄청 화려하고 대단하지만 그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직접 받아 왔다는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확증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출처와 진실성과 성분을 알 수 없는 말들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그 개인의 신비적이고 주관적인 주장 하나에 근거하여 온 교회에 증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스러운 일인지 설명하려면 하루가 짧다. 하나님은 교회가 신앙의 규범과 교과서로 삼도록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셨느데, 그들은 그것이 Up Date되지 않는 케케묵은 말씀이라고 한다. 지금 자신들이 직통으로 따끈따끈한 새 계시를 날라온다고 한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도적 예언"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직통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그들의 교회에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말씀은 지금 그들의 딴근따근한 생방송 말씀과 비교가 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큰 일을 칠 심각한 문제이다. 녹화방송과 생방송, 어떤 것이 더 흥미있겠는가? 어떤 것이 더 청취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말씀을 받아 전한다는 그 괴설이 등장하는 순간 그 교회의 성경은 치명적인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안 그럴 수 있겠는가?  

   서울에 떠들썩했던 신사도 운동 교회가 있다. 한 동안 잘 나가다가 지난 해 대표적인 6개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판정되고 추방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척한지 불과 3년 만에 교인이 3천명에 육박했던 교회이다. 나는 그 이단 목사님이 미국에 부흥회하면서 했던 설교 3편과 서울의 그 교회의 주일 설교 몇 회를 들으면서 신사도 운동의 기본 골격을 배웠다. 그 이단 목사님의 최고의 주특기는 “즉흥설교”였다. 준비한 원고 없이 예배의 현장에서 직통으로 말씀을 받으면서 동시에 전하는 영적 기술에 대해서 자주 자랑하셨다.

   그러면서 원고를 준비하는 나 같은 목사들을 얼마나 무시하시던지 ... 참 민망했다. 말씀을 직통으로 받지도 못하면서, 그 흔한 제자훈련이나 강해설교나 미국유학 ... 이런 흔한 세상 유행에 집착하며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은 기독교 지식으로 밥을 벌어먹는 비루한 자들이라고 하셨다.  

   성도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그대로 믿는다. “다른 목사들은 지식으로 풀어먹는 초보 선생이고 직업인이야! 저 사람만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온 목사야!”라고 생각한다. 그 교회의 홈 페이지는 그 이단 목사님의 즉흥설교가 모두 인터넷에 올라가 있었는데, 들어보니 참 한심했었다. 성경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설교의 기본이 없었다. 한 번도 십자가나 보혈이나 ...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논하는 것을 거의 못 들었다. 성경을 다루는 것 같은데, 금방 누구의 환상, 누구 선지자의 예언, 다른 교회 비방 ... 그러다 조금 복음적인 내용으로 돌아온다 싶으면 결국 또 이상한 해석과 적용 ... 그 이단 목사님이 원고 없이 직통으로 받아서 전하는 기름부음 받은 그 설교의 실상은 그랬다.

   그러나 목소리와 분위기 휘어잡는 기교는 배우고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 그런 교회에서 감동 받으면서 성장하는 성도들이 신앙이 과연 정상일까? 생각하면 불쌍하다. 이것이 바로 신사도 운동 교회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기름부음 받은 설교인 사도적 예언이다.  

   신사도 운동 교회에는 사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도 있다.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직접 메시지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언하는 예언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환상, 꿈, 입신, 음성의 방편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예언사역을 한다고 자부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밥 존스, 폴 케인, 샨 볼츠 ... 이런 사람들이다.

   사도와 선지자는 성경과 교회가 완성된 지금 여전히 존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은 성경을 기록하고 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계시의 신적도구였다. 비록 인간이었지만 그들은 "계시의 신적기관"이었다. 이들이 지금 다시 등장했다면 필연적으로 성경에 가감이 일어나게 되고, 교회에도 변화가 오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고, 지난 2000년 동안의 교회 역시 마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인류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지 못하면서 더 온전한 은혜를 기다리는  불완전한 그리스도의 몸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사도와 선지자의 존재를 운운하는 자들은 이단이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직통으로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도와 비밀의 계시를 보고 전하는 선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랑함으로 인하여 신사도 운동 교회들에서는 지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도와 선지자임을 자처하는 그들은 성도들에게서 엄청난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계시의 통로가 되는 분들이니 오죽할까? 까딱 밑 보이면 자기 영혼에 해가 미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 성도들에게 작용하지는 않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없다. 그들을 보면 목회가 의외로 참 쉽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홈 패이지를 보면 “2010년을 향한 0000선지자의 예언” ... 이런 제목으로 외국 선지자들의 예언의 내용들이 잘 번역하여 올려 놓는다. 성도들이 언제든지 읽도록 한다. 성경 못지 않게 중시하게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도들의 신앙의 구조가 급격하게 변질되고 있다. 허황한 예언의 세계 속으로 빠지면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들은 믿음을 비상하게 하는 날개를 단 것처럼 기뻐하고 좋아한다.

   미국 이민 교회들 중에서 가장 앞장서서 신사도 운동을 전개하는 어떤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의 설교를 인터넷 상에서 들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연스럽게 예언이 나오는 것 믿으시지요? 지난 해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예언해드렸지만, 오늘을 여러분들끼리 서로에게 새해를 향한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령이 역사하시면 서로가 서로에게 예언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의 일부가 정말로 이랬다. 이처럼 신사도 운동 교회들에게는 예언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모든 성도들이 예언을 접하고 듣고 사랑하고 친숙하게 한다.   

   이들의 예언의 실상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어졌다. 이제 그 동안 숨기면서 예언기도 받으러 다녔던 성도들이 당당하게 다니기 시작한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스스로 기도하기 전에 예언하는 사람부터 찾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님도 신사도 운동의 전진기지인 캔자스시티의 IHOP 기도원에 가서 예언 받고 확신을 얻었다면서 나에게도 가 보라고 권했다. 세계 교회를 향한 신사도 운동의 가장 실질적인 공헌은 “친근하고 일상적인 예언사역”을 널리 전파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크리스찬 무당복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사사기의 시대를 도래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그들의 업적이다. 신사도 운동의 예언사역을 접하는 성도들의 신앙이 점점 얕아지고 가벼워진다. 가능한 빨리 예언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한다. 힘든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여전히 고생스러운 상황의 아픔과 무게를 견디면서 묵묵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성경은 그것을 강조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도들 ... 다 그랬다. 그 과정이 믿음의 연단이고 견고함이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쉽게 빨리 하나님과 접선할 수 있도록 해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마치 국제전화 거는 정도의 일로 간주한다. 인간의 본성은 고통 중에서 인내하기를 싫어한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꾸준한 기도와 묵상 보다 예언자를 통한 빠른 소통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인다. 지금 부흥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사도 운동에 문을 활짝 연 교회들이다. 그들은 그것을 부흥이라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짓된 부흥이다. 진리의 말씀이 드라이브하지 않는 교회의 부흥은 결코 참 부흥이 아니다. 다만 사람이 모이는 것이다. 무엇이 사람을 그리로 모이게 하는지는 그들이 더 잘안다.  

   신사도 운동 교회들이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예언자를 통해 직통으로 빨리 하나님과 선을 연결하는 신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믿음의 진실한 내공이 쌓이지 못한다. 고난과 상처와 좌절과 아픔은 우리의 영혼과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루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 과정을 묵묵히 견디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치유가 임하기까지 기도의 씨름을 다 하는 자세는 정말 귀하다. 그를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더욱 단련되고 성장한다. 그래서 고난과 인내는 하나님의 자녀를 온전하게 하는 축복이다.

   예언을 들으면 그 순간 근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느껴진다. 그런 것이 없으면 누가 예언에 중독되겠는가? 그러나 그 당장의 효과가 더 귀한 영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믿음의 어른으로 크지 못하고 늘 어린 아이의 자리에 머물게 된다. 실제로 한번 예언을 통해 위안과 도움을 받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유사한 상황을 만나면 또 예언을 듣고자 한다. 습관이고 영적인 중독이다.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더욱 크게 성장하기 위한 믿음의 정도는 절대로 아니다.  

   예언을 받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반드시 그 예언사역이라는 것은 점점 미아리의 점집 스타일의 예언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처음에는 고난에 대한 성령의 위로와 권면 등으로 시작하지만 횟수가 늘면 반드시 장래사에 대한 예단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예언을 받고자 하는 성도는 "~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될까요? 어찌해야 할까요?" 라고 시작하고, 에언자는 그에 대한 답을 해야만 한다. "그런 것은 묻지 마세요!"라고 하는 예언자는 거의 없다. 맞아도 문제이고 틀려도 문제인 미아리식의 예언사역이 전개되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을 살피면, 신사도 운동에 빠져서 이런 종류의 예언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회에 다니다가 회의를 느끼고 빠져 나온 사람들의 글이 적지 않게 있다.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환상을 기대하며 현실성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몇 년을 들떠서 보냈다! ...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 교회의 성도들은 더 성장하고 뜨거운 성도가 되는 것 같지만, 실은 속빈 강정처럼 허무한 믿음이다. 신사도 운동의 예언사역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둘째로 삶이 항당하게 변질되고 파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언의 내용은 결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내용은 예언이 정확하고 믿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한 말이다. 설령 어떤 사람의 예언이 정확하다 할지라도 실상 장래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예언자들의 예언은 틀리고 황당하다. 그들의 예언에 자신을 맡겼다가는 정말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신사도 운동의 선지자들의 가장 재미있는 특징은 너무나도 틀리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인테넷을 검색하면 밥 존스, 샨 볼츠, 폴 케인 ... 이런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어떤 집회에서 했던 예언들을 그대로 듣고 녹음하고서 훗날 그 내용을 검증하여 글을 올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거짓된 예언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신사도 운동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지를 보여주는 단 하나의 예만 들어보겠다. 밥 존스라는 사람은 그들의 세계에서 "이 시대의 최고의 선지자"이다. 그런 최고가 얼마나 어이없는 예언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는 최초로 사도 안수식을 한 제1호 사도 타드 밴틀리를 양아들로 맞는 사람이다. 타드 밴틀리가 잠시 플로리다 부흥이라고 하는 부흥집회를 떠들썩하게 인도할 때에 밥 존스는 그 부흥운동이 장차 온 세상을 뒤 덮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타드 밴틀리는 아내 몰래 다른 여인과의 동거생활에 빠져 있음이 드러나면서 순식간에 침몰하고 말았다. 인간은 누구가 부족하고 연약함으로 타드 밴틀리를 조롱할 수는 없다. 누구나 다 그럴 가능성은 있다. 그를 조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어찌 하나님의 특별한 예언의 영이 내주한다는 선지가가, 그것도 그 세계에서 가장 격찬을 받는 최고의 선지자의 눈이 그렇게 어두울 수가 있는가? 이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속에서 진행되는 죄로 인하여 확실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그의 황폐한 영혼의 성벽을 어찌 선지가가 몰라보았을까?

   사람들이 얼마나 그런 일에 대해서 잘 기억하고 잘 계산해 내는지 모른다. 밥 존스가 타드 밴틀리의 부흥운동을 높이 뛰우고, 플로리다에서 일어난 그 부흥이 온 세상을 뒤 덮을 것이라고 예언할 때에 이미 그는 그 여인과 동거생활을 시작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선지자는 그것을 전혀 몰랐다. 그 최고의 선지자의 예언과 사도 타드 밴틀리의 떠들썩했던 부흥 운동이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더 이상 타드 밴틀리를 존경하거나 그의 집회에 가 보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없다. 온 세상을 덮기는 커녕 플로리다 한 구석도 덮지 못하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소위 최고의 선지자라는 사람의 예언이 이 모양이었다.

   밥 존스에게는 황인종 아들도 하나 있다. 한국에서 신사도 운동의 기치를 들고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급성장시킨 변승우라고 하는 인물이다. 밥 존스는 그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 엄청난 예언을 자주했었다. 그 내용을 들었을 때에 기록해 두지는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분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존귀한 하나님의 위대한 추수의 종이 되어 엄청난 일을 하게 될이고, 그 교회는 규모와 모든 면에서 한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예언을 한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인물은 한국 교회로부터 된서리를 맞고 침몰하고 말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6개의 교단들이 이단으로, 또는 결코 교류할 수 없는 불건전한 자로 규정하고 모든 관계를 단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그의 소속 교단은 그의 목사직을 박탈하고 교단의 회원자격을 정지시키는 제명출교라는 한국 기독교 100년사에 처음보는 무거운 책벌을 감행했다. 이단 그룹들이 늘 그렇듯이 아직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교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다 사라졌다. 과연 최고의 선지자 밥 존스가 그를 향하여 전하였던 예언은 앞으로 이루어질수 있을까? 최고라고 하는 사람의 예언이 이러하다면, 보통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과연 어떨까?  

   그러고도 여전히 선지자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이 시대는 정말 누구든지 선지자 노릇 하기 좋은 종교의 시대인 것  같다. 수 없이 틀린 예언을 하고서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변명한다. "이 시대의 예언은 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은 듣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 예언의 내용을 중도에 변경하십니다!", "구약시대처럼 예언이 꼭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런 웃기지도 않는 사기꾼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망해도 싸다. 스스로의 부패하고 미련한 마음으로 자기자신을 심판 한 것이다. 그래도 좋다고 따라가겠다는데, 누가 그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신사도 운동 교회들의 한심한 목사들은 그런 거짓된 예언을 성경처럼 믿도록 가르친다. 어떤 선지자라는 사람의 예언을 설교의 중심 주제로 삼기도 하고, 홈 페이지에 버젓이 그 내용을 실어 모든 성도들이 읽게 한다. 그러데 읽어보면 그 대부분의 내용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들이다. 000선지자가 예언하기를 "하나님이 다른 목사에게 없는 특별한 영적은사를 나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교회가 서울의 대표적인 교회가 될 것이고, 나를 마지막 시대의 대추수의 사령관으로 쓰신다고 하셨다", "성경을 가장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영감을 주시고, 교회들의 틀린 교리를 고치는 은사를 주신다고 하셨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에 함께 하였던 고위직 천사가 나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였다” ...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앞날을 예언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경계의 대상이다. “성령의 감동”이라는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주로 다루시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신앙과 삶을 다듬고 훈련하시는 분이 성령이다. 그래서 미래를 따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자연히 복되고 건강한 미래를 주시는 분이 성령이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항상 현재가 아름답다. 성령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을 따르는 신앙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서울의 신사도 운동하는 교회에서 몇 년을 신앙생활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떠난 분이 올린 글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 교회는 교인들에게 예언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언사역팀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 분도 그들에게서 자주 예언을 받았고, 당연히 성령의 예언이라고 믿었다. 그 교회의 이단성을 깨닫고 서 떠나기로 결심했고, 다른 사람들이 속지 않도록 인터넷에 그 예언의 내용을 일부를 올린 것이다.  

   언제가 신문기사에서 그 교회에서는 예언을 받을 때에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녹음하도록 한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보았다. 성령이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반복하여 듣고 그 뜻을 새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분도 핸드폰에 녹음된 예언을 다시 글로 옮겼다고 하였으니, 거짓이나 과장은 없어 보인다.

   다음은 그 분이 신사도 운동하는 그 교회의 선지가 학교를 통하여 배출된 예언자에게서 받았던 예언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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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핸드폰으로 거짓 예언을 참 예언으로 알며 녹음까지 하며 참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000 전도사의 선지자 학교와 사도 학교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에게 예언을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참으로 감동과 눈물로 눈앞을 가렸습니다. 내용이 워낙 많아 이곳에 다 올릴 순 없지만 일부 받은 내용들을 올리겠습니다.

   <예언 1>
   “안녕하세요 집사님이세요?” “아니오! 청년입니다!” “네 ... 지금 하늘에서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형제님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큰 축복이 넘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형제님이 더욱 더 기도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형제님께서 예수님과 눈물로 포옹하는 장면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형제님께서 힘드시지만 더욱 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참고 기다리시면 곧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축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예언 2>
   “지금 일곱 가지의 빛이 나는 교회가 보여지고 있는데요 ... 그 일곱 개의 교회가 형제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형제님께서 큰 사명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하나님께 기도로써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지금 엠블란스 사고 현장인데요 ... 지금 어떤 죽어가는 환자가 피를 계속 흘리고 있는데요 ... 형제님이 안수하시니까 피가 멎는 환상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지금 물질을 계속 구하시죠? 더 구하십시요 지금 여러 나무에 열매들이 열려 있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물질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지금 자가용을 타고 있는 모습이 ... “혹시 결혼하셨나요?”, “아니오”, “지금 여자분과 공항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앞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언 3>
   “지금 커피 서빙하는 모습이 ... 혹시 커피 서빙 아르바이트 하신 적 있나요?”, “아니오”, “아 ... 지금 커피가 엎질러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앞으로 신앙 생활 하시면서 많은 위기가 찾아올 건데 ... 더욱 더 기도로서 나아가십시요!”

   <예언 4>
   “형제님이 아파트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게 아니라 껑충 껑충 한 번에 쉽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볍게 나아가실 것입니다. 형제님이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기도로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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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 2>에서 교회가 이 형제에게 절할 것이라는 내용은 너무나도 우습다.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말 장난일 뿐이다. 그래서 웃을 뿐이다.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예언을 받은 형제가 장차 교회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 어마어마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일곱은 완전성과 전체을 상징하는 수이니, 온 세상의 모든 교회의 존경과 경배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귀신들린 사람의 맹랑한 말 장난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그들의 예언이라는 것의 실상이 이렇다.

   그리고 이렇게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인 이들도 그렇게 많이 기도를 강조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기도로 나아가십시오!" 예언을 할 때마다 기도로 나아가라고 한다. 이들의 영적인 세계가 이리도 혼잡란 아수라장인데, 늘 기도를 강조하고 들먹인다. 다만 기도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믿음의 진정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별 희안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별 웃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기도를 하면서 또한 기도를 강조한다.</fo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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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지막 하루 2018-03-30 336
76 누가 이 엄청난 사실을 외쳐 벼랑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할까? 2017-11-11 626
75 방언이란 무엇인고 예배, 기도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인가요? 2017-06-21 953
74 여전히 비성경적인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강순영 JAMA 중보기도 대표 2017-06-02 942
73 교단과 신학교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지를 분별하는 기초항목 2017-04-11 3878
72 한결같기 2017-03-18 640
71 낭떠러지 2017-02-04 872
70 뛰어들기 2016-12-03 810
69 진리소통 2016-11-13 878
68 칭의를 주신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2016-10-03 1314
67 그런 뜨거운 체험은 접신인가? 성령세례인가? 2016-09-27 1619
66 사랑의 교회 중보기도 학교는 성경적인가요? 2016-09-27 8277
65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의 열쇠 2016-02-24 2136
64 '4차원의 영성'은 다른 종교의 사상 2016-02-18 2341
63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2147
62 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2016-01-28 2840
61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2125
60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712
59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255
58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2235
57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506
56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708
55 부활복음은 십자가 모르는 김성로 목사의 목회브랜드 2015-11-27 8860
54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387
53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복음(간증운동) 성경적인가요? 2015-11-22 3917
52 성경은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라 한적이 없다 2015-09-08 2770
51 명성교회 특새소리는 한국 교회 초상치는 소리 2015-08-31 3553
50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2015-08-28 3506
49 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2015-08-21 3193
48 주기철,손양원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춤추는 날 2015-08-18 3356
47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767
46 남침례교단 방언관련 선교 정책 변경은 그릇된 일 2015-08-17 3088
45 성령을 조종하는 안수기도는 불가능 2015-08-17 3823
44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603
43 성령운동과 기독교 신앙 2014-01-04 5710
42 성령운동가들의 이상한 인생 패턴 2014-01-02 22541
41 앤아버 반석교회가 CRC 교단을 떠나는 이유 2013-09-29 9660
40 비성경적인 이스라엘 사상, 이제는 분별할 때 2013-08-15 9795
39 "알파코스"-제3의 물결의 거짓부흥2 2013-08-13 21595
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4926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407
36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436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51196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7567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545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797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8105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7180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11911
28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2176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32850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2095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617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13187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8381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613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6175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9135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8475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10516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823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10349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6804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371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494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8150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578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6069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11893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7007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925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7297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9513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9013
»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622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675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