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믿음 신문
바른믿음 아카데미
앤아버 정착
미시간대학교 대학원
다국어 성경
<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color:">예언이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메시지이다. 국제전화를 걸듯 약간의 정성과 시간을 투자하여 직접 또는 간접으로 하나님께 접속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예언을 풍성하게 얻도록 교회는 최대한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은 예언을 기본적으로 해야 하고, 강도사 고시나 목사 고시 같은 것 보다는 예언 고시를 신설하여 가장 중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통하여 필요한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고 성경적으로 인정될 없다. 예전에는 이를 당연시하였고, 어디서 예언하는 사람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 결코 떳떳하게 할 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디서 예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유명한 분들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인 예언을 믿거나 받았음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례들을 나에게 보내주시면서 예언에 대해서 질문하신 분들이 있었다. 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b>예언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b>

어떤 분이「내려놓음」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하였고, 지금은 몽골의 국제대학에서 교수로서 선교하고 계시는 이용규 선교사님에 관하여 메일을 보내셨다. 이용규 선교사님이 자신의 책을 출판한 규장출판사에서 예언의 은사를 가지신 분을 만나 예언을 받으셨고, 그것이 선교사역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용규 선교사님은 2011년 9월 28일에 ‘새로운 사역으로의 부르심 3’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술하신 내용이다.

“가족과 같은 대학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믿음 가운데 도전해 보고 싶은 소망이 내 안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자카르타의 교회 쪽에서는 내가 와서 사역을 하게 된다면 어떤 모양이든지 내가 바라고 그리는 그림대로 사역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맡겨주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간 약속된 집회로 뛰어다니느라고 집중적으로 기도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규장 출판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여러 차례 나를 위해 대언해 주셨던 선교사님과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기도 가운데 나온 첫 말씀은 ‘내가 이 사역을 위해 너를 오래도록 준비시켰다’였다. 그리고 ‘이 사역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이다’라고 했다. 예언의 말씀은 보다 구체적으로 계속되었다. 나는 아틀란타에 있는 동안 중앙아시아 선교 역사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나오는 말씀은 ‘그 일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사역을 위해 준비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을 놓고 개인적인 확증을 놓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규장출판사는 신사도운동을 홍보하는 그릇된 서적을 여러 권 출판하여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원성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니 그곳에 예언하는 분들이 자주 출입하면서 모임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이용규 선교사님도 그곳에서 만난 예언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의 삶과 사역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또 어떤 분이 한 홍 목사님의 책「기도, 하늘의 능력을 다운로드하라」에 수록된 예언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셨다.

1)한 홍 목사님이 예언으로 유명한 IHOP의 마이클 비클 등의 설교와 글들을 통하여 자신의 책을 위한 묵상과 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점(p.13).
2)영성이 깊은 미국 목사님들이 몇 년 전 한국의 자신의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예언의 은사가 있으신 어떤 분이 하나님께서 어린아이같이 기도하는 한 목사의 기도를 기뻐하시니 계속 그렇게 기도하라고 했다는 예언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p.30).
3)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예언기도 사역자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면서, 하나님 지금도 직접 예언을 주시는 것을 당연시는 내용(p.206).
4)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기 두 달 전 미국에서 많은 영적 지도자를 만났으며, IHOP의 리더들을 비롯한 몇몇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개척할 새로운 교회에 대한 동일한 예언의 말씀을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는 내용(p.269).
5)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네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예언자들이 예언하여 주는 미국 캔자스시티의 국제기도의집(IHOP)에서의 경험한 것들과 그 단체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들.

한 홍 목사님은 이전에 온누리교회의 대표적인 부목사님이셨고, 한국교회의 차세대를 이끄실 유능한 지도자 감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분이다. 그러나 한 홍 목사님의 책에 이와 같은 예언에 대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다면서 과연 이러한 예언 사상이 성경적인지 물으셨다. 이러한 질문을 주신 성도님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은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며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한 홍 목사님과 같은 유명하고 신학에 있어서도 탁월하신 목사님께서 직통으로 나타나는 예언을 인정하고 신앙과 목회의 중요한 자료로 삼을 정도로 신뢰한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또 어떤 분은 휴스턴에서 가정교회 사역을 하시는 최영기 목사님의 교회의 홈페이지에 남기신 글을 보내시면서 질문하셨다. 다음은 최영기 목사님께서 교회의 홈페이지에 ‘내가 거짓 예언자일까’(2010년 8월)라는 제목으로 모든 성도들이 읽도록 남기신 글이다.

“‘내가 거짓 예언자일까?’ 저 자신에게 최근에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폴 케인(Paul Cain)이라는 목사님 때문입니다. 케인 목사님은 1929년에 텍사스에서 태어나서 16세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사역 가운데 많은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성령 사역자들이 변질되고 순수성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사역을 접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성령의 바람이 다시 불 때, 순결과 거룩을 추구하지 않으면 능력을 거두어가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1987년에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다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분의 예언의 능력은 전설적입니다. 처음 본 50명의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출생한 주(州)를 맞추어서 참석한 목회자들을 놀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생명의 삶 공부에서 성령의 은사의 예로서 소개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분이 술 중독에 빠졌고 동성애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여 거짓 선지자로 밝혀졌다는 글을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충격이 너무나도 커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분이 거짓 예언자라면 나도 거짓 예언자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보면 최영기 목사님은 이 당시에 성경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예언현상이 당연히 존재하고 성경적이라고 믿으셨다. 신약성경이 언급하는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폴 케인이라고 하는 예언자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직통으로 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예언자가 오늘 날에도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의 예언을 가급적 많이 받아야 신앙생활이 풍성하여 지는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b>‘온전한 것’(고전13:10)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 없다</b>

과연 오늘 날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예언현상은 가능할까? 오늘 날의 예언의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일까? 오늘 날 예언이 과연 성경적인 현상인지에 대해 논의를 할 때 가장 먼저 펼치는 성경구절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8-10)

여기서 바울 사도는 ‘온전한 것’이 오면 예언과 방언과 같은 은사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느라 많이 고생했다. 그러나 일치된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해석이 두 가지로 갈라져서 평행을 이루고 있다. 한편에서는 계시의 완성, 즉 성경의 완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또 한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완성을 온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완성되었으니 예언이 종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온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역사의 끝까지 방언과 예언이 지속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바울이 무슨 뜻으로 ‘온전한 것’이라는 말을 했는지 천국에 가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으로 예언과 방언이 현재에도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인지를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b>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예언이라고 한다</b>

성경전체가 예언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구약성경이 예언을 무엇이라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사람들은 예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장래 일을 점하는 행위를 연상한다. 세상에서 예언이라는 말은 그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예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그 속에 미래에 일어날 일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의 일부이지 예언의 본질은 아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백성들에게 일시에 동시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셔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죄인들이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명기 18장 16-18절을 보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죄인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자신들 중에서 특별한 한 사람을 택하여 그에게 먼저 말씀하여 주시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주기를 원하였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이 좋다고 여기셨고, 그때부터 백성들 가운데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선지자, 중보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겔 25:1,2)

구약의 예언자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예언이 무엇인지, 예언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 그 자체가 예언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먼저 받은 선지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을 ‘예언한다’라고 구약성경은 표현하고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되는 특별한 체험 가운데 주시는 말씀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특별한 꿈과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선지자들에게 예언의 말씀이 임하는 수단이었다(민 12:6,7). 그래서 신약의 성령강림을 미리 예언한 선지자 요엘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예언, 꿈, 환상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것이다(욜 2:28). 이는 실제로 신약의 성도들이 예언하고 꿈과 환상을 볼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에게 보편적으로 임하시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신약성경도 같은 차원에서 예언을 설명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이미 기록된 구약성경을 예언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전한 말씀이라고 하였다. 구약성경이 설명하는 예언에 대한 내용을 신약성경도 그대로 일치하게 확언하고 있는 것이다.


<b>신약에서는 사도들이 구약의 선지자의 위치를 대신했다</b>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믿는 신약시대에도 구약성경의 예언과 같은 방식으로 주어진 예언의 말씀들이 있다. 정경으로 확립된 27권의 신약성경이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예언을 받아서 전하였지만,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특이한 사실은 신약성경에 선지자라는 직분이 등장하지만 그들에 의해서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사도는 아니었지만 사도들과 함께 동행하였던 누가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저술하였고, 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이미 기록된 신구약 66권의 예언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God-breathed, inspired by Holy Spirit)하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적기원을 가지며,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기준이고, 모든 교훈과 책망의 근거이다. 또한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은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짐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되는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말씀이다.

중요한 사실은 오늘 날 누구도 감히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 날 하나님께서 직접 감동하셔서 즉각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다는 예언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지금의 예언이 성경에 필적하거나 동급이 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은사주의자들, 신비주의자들, 피터 와그너를 비롯한 많은 신사도운동가들, 그리고 매우 수준있는 예언자들(?)을 구비하고서 원하면 누구든지 즉석에서 예언을 듣게하는 IHOP의 마이크 비클까지도 오날의 예언이 성경처럼 권위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치하게 오늘의 예언은 성경의 권위 아래 판단되어야 할 낮은 수준의 예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려하는 것처럼, 계시는 전혀 포함되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교훈, 책망의 말씀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이런 류의 예언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과 인생과 가정이 피해를 입었고, 다수의 교회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것이 문제이고 현실이다.


<b>신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오늘의 예언의 근거라고 한다</b>

이러한 예언사상의 근거는 무엇일까?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감동으로 예언하였으나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예언을 전하였던 신약의 선지자들의 사역이 그 근거로 지목되고 있다. 사도행전은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다고 기록하고 있고(행 15:32),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고(행 21:10), 예언하였던 빌립의 네 딸도 선지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행21:8)이 있다. 오늘 날에도 이들과 같이 예언의 은사를 발휘하는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크게 주창하여 예언운동가들에게 발판을 제공한 대표적인 신학자는 웨인 그루뎀(Wayne Grudem)이다. 웨인 그루뎀의 예언에 대한 가르침의 많은 부분은 다른 정통신학자들과 거의 동일하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위치와 역할을 대신한 신약의 사도들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예언을 전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서 나타나는 선지자들은 동일하게 성령의 역사로 예언하였으나, 그 내용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다고 한다.

웨인 그루뎀은 신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즉각적으로 그 선지자들의 마음에 떠오르거나, 선지자의 의식 속에 심어지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그것을 ‘계시’(고전 14:30,31)라고 표현하였지만, 그것이 성경 수준의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의 하나님과의 교통을 뜻하는 용어라고 한다. 또한 그 내용 속에는 오류도 있었으므로 바울은 성도들에게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살전 5:20,21),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고전 14:29)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오늘에도 예언이 나타난다면 성경의 권위, 완전성, 충족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 웨인 그루뎀은 동의하지 않는다. 위험성이 있어서 예언을 배척해야 한다면, 성경공부를 인도하다가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으므로 성경공부까지도 폐지시켜야 할 것이라고 반문하였고, 성경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하나님이 지금 행하시는 일을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주장을 한마디로 요역하자면, 한편으로는 예언을 추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b>오늘의 예언은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위험한 일이다</b>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오늘에도 직통의 예언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분명히 지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오는 말씀은 계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계시가 아니고 개인에게 주시는 위로의 메시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주신 직접 주신 말씀이라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절대적으로 순종을 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더 큰 모순이다.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면서 그 내용에는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망치는 그릇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자로 세움을 입었고, 그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생각이나 마음에 메시지로 다가오는 예언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이미 신적인 기원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 속에는 절대로 부정확이나 오류가 있을 수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의 예언운동가들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직접주신 예언일지라도 스스로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우리들의 단 하나 뿐인 영혼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인가?

이런 조잡하고 유치한 이론에 근거하여 우리 한인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언열풍을 일으킨 IHOP의 마이크 비클와 그 거지같은 예언자들이 계속 사람들에게 예언하도록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 것인가. 그 외에도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김종필 목사도 엘리야 기도운동을 한다면서 사람들에게 쉽게 짤막짤막하게 예언을 해 주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한다. 인터콥의 이지애, 강요한 선교사도 선교훈련을 빙자하여 선교캠프, 간사훈련 등의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예언을 해 주었는데, 예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들의 예언을 받았다고 한다. 무당주의를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파한 이런 거지같은 예언자들의 사례가 수 없이 많다.

한국 교회에 큰 혼란을 준 두 가지 사례를 좀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오늘의 예언운동의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허접하고 유치한지 살펴보자. 데이비드 오워라고 하는 아프리카 예언자가 한국에 와서 전했던 예언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수년 전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부들’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통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앞장서 초청하였고, 인천의 방주교회(박보영 목사)의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장소에서 그 사람이 예언을 풀어놓게 하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 데이비드 오워가 한국 교회에 전한 예언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 직후부터 수많은 목회자들이 회개를 강조하게 만들었다. 또한 수많은 성도들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회개하자고 아는 사람들에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냄으로 사회적인 큰 불안이 조성되었다. 오워의 예언을 통역한 뉴욕의 밴자민 오 목사가 그 다음 주일 자신의 교회에서 ‘회개할 기회’(2011년 7월 14일)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에 오워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제가 아무에게나 선지자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습니다. 진짜 선지자들을 만나보았기 때문에, 예언한다고 다 선지자가 아닙니다. 예언하는 사람은 많지만 ... 우리가 소위 선지자라고 할 사람을 많지 않습니다. 이 분은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중략)... 저는 그 분을 잘 몰랐지만 통역하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선지자가 있었나. 이 분이 지금까지 예언했던 것을 보니까 대단하더군요. 들어보셨지요.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미국의 카트리나, 뉴 올리언즈를 초토화시켰던 카트리나를 케냐의 집회 중에 예언을 했더군요 ... 두 달 채 안 되서 카트리나가 도시를 황폐화 시켜버렸지요. 6년 전에는 올해 터진 아이슬란드 화산 폭탈을 예언했고, 6년 만에 성취되었고, 쓰나미, 중국의 지진, 아이티의 지진, 칠레의 지진, 최근의 켈리포니아의 지진 ... 모든 지진들을 다 예언했고, 빠르면 두 달 안에 어떤 것은 6년 안에 성취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선지자입니다. 아직까지는 이 분의 예언은 완벽합니다 ... 그러면서 그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국에 대해서 메시지를 주셨다!’ 자기의 예언을 가볍게 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네 번에 걸쳐서 말씀하셨습니다 ...(중략) ... 바다의 항공모함이 미사일을 맞아서 격파되고, 미사일을 장착한 군용트럭에서 미시일이 발사되어 남한의 전력공급하는 곳이 파괴되고, 길거리의 탱크들이 즐비하여 주님께 물었더니 주님께서 ‘전쟁이 터졌다!’라고 하셨습니다.”

오워의 이런 예언이 한국 교회가 덕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이 이후 한반도에는 아무런 전쟁의 조짐이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휴전선 전방부대에서에 몇 발의 총성이 일어났을 뿐이다. 오워의 예언을 신뢰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조급해진 사람들은 그것과 오워의 예언을 연결시키려고 시도했었다. 차라리 조금 더 기다렸으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인데, 성급하게 휴전선에서 일어난 몇 발의 총성을 오워의 예언의 성취라고 홍보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소재를 이용하지도 못했다. 결국 오워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소통으로 한국교회의 신앙은 더욱 우스워졌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체면이 서지 못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직접 예언을 주신다는 사상의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또 하나의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자. 이 사례로 인하여 그 당사자와 여러 사람들이 아픔을 경험하였으므로 또 언급하기가 매우 미안하다. 그러나 지금도 이러한 예언에 빠져들면서 인생과 신앙과 교회를 망치는 사람들이 많기에 언급하고자 한다. 진심으로 양해를 바란다. 다음의 영상에서 등장하는 목회자는 IHOP에서 기도하면서 예언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교회에서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그 예언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embed src="http://www.cantoncrc.com/billboard/ahnmin.wmv" width="320" height="312" showstatusbar="true" autostart="false"></embed></center>

“제가 아직은 이 강단에서 누가 예언을 해 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분들과 나누는 것(share)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난 몇 달간 경험한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니까 어떤 성도님이 말씀하주셨어요. ‘우리 교회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는데 뉴욕으로 번지고 땅 끝까지 번지는 것(환상)을 보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거는 믿을만한 사람(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막 내뱉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제가 기도했던 캔자스시티에 IHOP이라고 하는 영성제단이 있고 기도제단이 있습니다. 그곳의 예언자(prophet)의 예언이 상당히 셉니다. 거기의 리더가 되는 team이 우리 교회의 리더쉽(당회?)에 와서 예언 사역을 하고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리더들에게 주어졌던 이야기(예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이 제단을 엄청나게 사용하시려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깨끗하셔야 됩니다. 정결하십시오. 준비하십시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요번에 제가 캔자스시티 아이합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캔자스시티 예언자들의 팀장을 맡고 있는 그 분이 저를 아니까 저를 딱 보더니 ‘나와 함께 저 방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라고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겠습니다!’하고서 그 방에 들어갔더니 예언사역팀원 10여명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팀장이 ‘이 분을 위해서 예언하십시오. rapid prophecy!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딱딱 생각나는 대로! 환상을 보여주시면 보여주시는 대로! 음성을 들려주시면 들려주시는 대로!’ ...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믿음 갖지 않으면 이것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믿음의 스탭(step)을 떼 놓는 것입니다. 그들이 뭐라고 예언하였냐 하면 ‘당신은 목회 차원이 아니라 이제는 운동, movement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예언자)이 돌아가면서 이야기(예언)를 해 주는데 ‘당신은 이제 pastorship(목사의 사역)이 아니라 apostleship(사도적인 사역)이 될 것입니다. 목회적인 차원의 목회자가 아니라 사도적인 위치에서 교계를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 주위에 커다란 두 천사가 있어서 한 천사가 당신을 보호해 주고 있고 한 천사는 당신이 하실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데반(초대교회의 집사. 행 7:2)이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했던 것처럼, 그 지도자들(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 서게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사역에 엄청난 경제적인 부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사역을 통하여 도움(이 분의 사역을 따르면 부를 얻는다는 의미)을 받게 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분은 IHOP의 거짓된 선지자들에게서 받은 예언이 하나님에게서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의심치 않고 믿었다. 그러면 과연 그 선지자들에게서 내용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을까?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내용이 성취되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과연 예언을 받은 대로 이 교회를 통하여 뉴욕으로, 세계로 부흥의 불이 전파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과연 이 예언을 받으신 분이 일반 목회자의 차원이 아니라 사도적인 차원에서 특별한 사역을 시작하시게 되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과연 두 능력의 천사들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서 스데반처럼 대적자들 앞에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아무도 이 내용이 이루어졌다고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 예언으로 말미암아 이 분의 목회는 극도의 어려움에 봉착했고, 교회까지도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엄청난 환난과 아픔만 일어났다. 그가 받았던 예언의 내용 중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이것이 거짓된 예언임을 판단하는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자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예언자로 세우시고 그를 성령으로 감동시키시어 메시지가 임하였고, 그가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전하였다면 그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 누가 아무리 그럴싸하게 예언하였을지라도 성취되지 않으면 선지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를 특별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이 정도로 멈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제 마음대로, 또는 사탄에게 미혹되어 거짓된 예언을 남발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가 가증하게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실한 예언인 성경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정말 진실하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친히 거짓 선지자를 일으켜 거짓된 예언으로 시험해 보시기도 하신다고 하셨다.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 너희는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를 죽이라”(신 13:3-5)

성취되지도 않는 거짓 예언으로 미혹하고 가정들과 교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예언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이 명확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사탄의 종들이다. 구약 시대에는 그러한 자들을 돌로 쳐 죽어야 할 사탄의 가증한 자들로 규정되었다. 신약시대에는 직접 죽일 수는 없으나 ‘이단’(딛3:10)으로, ‘가라지’(마13:25)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고후11:4)을 전하는 ‘광명의 천사’(고후11:14)로 규정하고서 엄히 경계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언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없어요. 처음부터 예언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예언을 무턱대로 다 믿지 말고 잘 분별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지금도 예언을 하는 사람들과 예언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 모든 부작용과 혼란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피해 버린다. 참으로 간편한 논리이고 무책임한 짓이다. 언제부터 기독교가 그런 유형의 느물거리는 종교였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면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거역한 것이니 나쁜 짓이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권위가 서고,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에도 질서가 선다. 그런데 그 예언의 내용을 순진하게 믿는 많은 사람에게 망신만 초래된다면, 대체 뭐가 어찌된 것인가? 그래도 예언하는 사람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원래 그런 것이니 조심하면서 계속 하자고 한다. 이렇게 믿을 수 없고 무책임한 것이 바로 오늘의 예언사상이다.


<b>예언을 지지한다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b>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러한 거짓 예언사상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의 진실이 심히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직통의 예언이 여전히 있으나 오류가 있으니 그 내용을 분별해야만 한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다음의 이 성경구절이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

이 구절이 모든 엉터리 예언자들이 돌 맞지 않고 탈출하여 피해가는 통로이다. 그러나 여기의 “분별할 것이요”라는 문구는 성경원문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권위있는 성경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약성경의 사본들에게서 “분별할 것이요”라는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내용은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에 의해서 추가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예언운동을 지지해 주고, 수많은 엉터리 예언자들이 사기꾼으로 몰리지 않고 계속 사기를 치게 해 주는 그 성경적인 근거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 허위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별’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선지자가 전하는 예언의 내용을 분석하고 판단하라는 뜻이 아니다. 당시 복수의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려고 할 때에 누가 먼저 예언을 하게 할 것인지 그 질서를 잡으라는 의미이다. 오늘 날의 예언운동은 그 근거가 되지도 못하는 엉뚱한 것을 기대고 서 있었다는 것이다.


<b>맞아도 안 맞아도 예언을 비성경적인 현상이다</b>

그러면 간혹 정말 기가 막히게 맞는 예언을 하는 사람은 과연 진짜 성령의 예언자일까? 어떤 사람이 IHOP에 가서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보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맞았다고 하며,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말들이 그 예언자를 통하여 흘러나왔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있지만 진짜 예언자도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즉시로 비록 IHOP의 그 거짓 선지자의 예언이 정말 맞았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탄이 부분적으로 맞는 예언을 주면서 치밀하게 미혹한다는 것을 왜 사람들은 모를까?

귀신들의 말을 많이 들어본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심심하면 점집을 드나드는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라. 점하는 귀신들도 기가 막히게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알아낸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맞추지 못한다. 하물며 고도의 전문성으로 세계의 교회를 미혹하고자 장난하는 IHOP이나 그 비슷한 곳의 귀신들이 그 정도도 못할까? 다음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소문난 보수적인 신학교인 달라스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로서 활동하며 그 명성을 세계교회에 떨치었던 잭 디어(Jack Deere)가 1987년 마이크 비클이 소개하는 예언자들에게서 들었던 예언의 내용이다.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8일전 당신에 관한 꿈을 꾸었지요. 꿈을 꾸다 보니 새벽 3시였지만 왠지 중요한 내용 같아서 종이에 적어 놓기까지 했는걸요. 당신에 관한 꿈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에 관한 어떠한 말씀들을 하셨는지 알고 싶다면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군요.’ 부드러운 남부 사투리가 억양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기도제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간절하군요. 평생간직해온 소원이기도 하구요.’ 말을 마친 그는 오늘 아침 호텔에서도 그 기도 제목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실 그 기도 제목은 거의 매일 아침 내 기도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그가 맞았다. 이 기도 제목은 내 평생소원이자 꿈이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꿈은 바로 하나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소원하게 하신 꿈이기에, 그 기도 제목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크군요.’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돼! 아버지에 관해서만은 제발!’이라고 외쳤다. 이것만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이제껏 그 누구도 내 아버지에 관한 상처를 들먹인 적은 없었다. 도대체 내 아버지에 관해서 어떻게 아는 것일까?”

잭 디어는 이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도 직접 예언을 주신다고 확신하고서 빈야드 운동가로 변해버렸다. 마이크 비클이 소개해 준 예언자가 자신의 내면과 과거를 정확하게 아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내면과 과거를 이처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하나님이 그 자리에 오셔서 마이크 비클이 소개한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을 직접 주셨다고 믿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이렇게 변해버렸다.  

“나는 칙칙한 방을 나서 고운 색을 자랑하고 있는 가을 하늘 아래로 걸어 나왔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의 예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뿌듯했다. 예언자적인 목회에 푹 빠져버렸다.”

저명한 세계적인 신학교 교수였던 사람이 사탄에 대해서 왜 그렇게 무지했을까? 귀신들이 사람의 속을 꿰뚫어 읽고, 과거를 맞히면서 달려든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약 5년 뒤에 한국을 방문한 마이크 비클이 IHOP의 예언에 대해서 묻는 기자에게 IHOP의 예언과 특이한 현상의 80% 정도는 가짜라고 답변하였는데, 잭 디어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잭 디어는 예수께서 거짓 선지자들이 때로는 맞는 예언을 한다고 인정하신 것을 왜 몰랐을까? 거짓된 예언으로 크게 세를 떨치면서 인기와 명성을 누렸던 거짓 선지자들이 천국의 문 앞에 도착 할 때에 예수께서 싸늘하게 박대할 것이라고 하셨다. 언제나 틀린 예언만 남발했으면 땅에 길게 선지자 노릇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기가 막히게 맞는 예언도 했기에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으며 길게 선지자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신도 속았고, 그의 예언을 믿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사탄에게 속았던 것이다. 기가 막히게 맞는 예언을 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고 믿으면 안 된다. 그러면 크게 망친다. 맞으나 안 맞으나 모든 예언현상은 거짓이고 비성경적이라고 확신해야 한다. 차라리 초장부터 안 맞으면 그 사람에게 복이다. 그러면 일찍 실망하고 더 이상 예언에 빠져들지 않기 때문이다.


<b>어떠한 경우에도 신약의 선지자의 예언이 오늘의 예언운동의 근거는 아니다</b>

이상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근거로 오늘 날에도 예언이 있다는 사상의 이론과 실제가 얼마나 허황되었는지를 충분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지 못한 예언을 전한 신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여 할까? 두 가지 관점에서 신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그들의 예언이나 성경으로 기록된 사도들의 예언이나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비롯된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단지 차이는 성경에 포함되었느냐 포함되지 못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당시는 신약성경의 사본도 충분하게  전파되지 못했었고, 심지어 신약성경의 목록조차 확정되지 않았던 과도기였다. 많은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일으키시고 성령으로 감동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다고 본다. 그러나 그 상황은 초대교회의 임시적인 모습이었고, 성경이 완성되고 교회의 다스림의 체계와 질서가 확립되면서 선지자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신약의 선지자이 예언을 이처럼 보는 것에는 어떤 성경구절을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체포되어 고난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행21:10-14). 그러나 바울은 그의 예언을 무시하고 기필코 예루살렘으로 가서 체포되었다. 만일 아가보의 예언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직접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바울은 그것을 무시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또한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행 15:32)라는 구절은 당시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직통의 메시지가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성도를 권면하고 안위하는 믿음의 말이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약의 선지자의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사도들의 예언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또 하나의 관점은 신약의 선지자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God-Breathed)이나 성령의 영감(inspired by Holy Spirit)으로 직접 주어진 정확무오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하심을 받아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세웠던 권면의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성령의 조명이란 기록된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과 신약의 사도들의 가르침과 예언을 기억나게 하고, 그 뜻을 깨닫게 하며,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의 조명을 받았던 신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해석자들이었고, 각기 다른 상황에 처했던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적용시켜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교회의 다스림의 체계가 세워지자 임시직분이었던 선지자는 사라졌고, 성경적 원리에 의해 세워진 장로와 그 뒤를 이은 오늘 날의 목사 등을 중심으로 성령의 조명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역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 날의 설교가 초대교회의 예언을 계승한다는 말은 바로 이 관점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을 받아 확신 가운데 전하는 권면하는 말과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나타나는 예언을 전하는 현상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성령의 조명으로 마음에 생긴 확신을 말하면서 예언이 임했다고 그릇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성령의 조명이 마치 우리의 내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모든 종류의 역사하심을 전부 부인하고 오직 성경의 뜻만 바로 알아서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b>이제 더 이상의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은 없다</b>

분명한 것은 이제는 예언자가 없고,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도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한 홍 목사가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는 HOP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나, 최영기 목사가 지목한 폴 케인 같은 사람이 전하는 말이나, 이용규 선교사가 규장출판사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예언이다. 성령의 조명을  따라하는 권면의 말은 아니다. 신약 초기의 선지자들처럼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해 마음과 생각에다 하나님이 심어주는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이다. 많은 그릇된 사례를 통하여 본 것처럼, 성경의 예언에 대한 신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예언현상은 지금의 기독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건전하고 성경적인 현상으로 인정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그러한 예언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77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지막 하루 2018-03-30 23
76 누가 이 엄청난 사실을 외쳐 벼랑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할까? 2017-11-11 204
75 방언이란 무엇인고 예배, 기도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인가요? 2017-06-21 350
74 여전히 비성경적인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강순영 JAMA 중보기도 대표 2017-06-02 274
73 교단과 신학교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지를 분별하는 기초항목 2017-04-11 514
72 한결같기 2017-03-18 435
71 낭떠러지 2017-02-04 664
70 뛰어들기 2016-12-03 641
69 진리소통 2016-11-13 701
68 칭의를 주신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2016-10-03 1040
67 그런 뜨거운 체험은 접신인가? 성령세례인가? 2016-09-27 1192
66 사랑의 교회 중보기도 학교는 성경적인가요? 2016-09-27 1095
65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의 열쇠 2016-02-24 1887
64 '4차원의 영성'은 다른 종교의 사상 2016-02-18 1965
63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1925
62 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2016-01-28 2324
61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1817
60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257
59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034
58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1921
57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255
56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357
55 부활복음은 십자가 모르는 김성로 목사의 목회브랜드 2015-11-27 3242
54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036
53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부활복음(간증운동) 성경적인가요? 2015-11-22 3565
52 성경은 예언의 내용을 분별하라 한적이 없다 2015-09-08 2579
51 명성교회 특새소리는 한국 교회 초상치는 소리 2015-08-31 3188
50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2015-08-28 2976
49 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2015-08-21 2804
48 주기철,손양원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춤추는 날 2015-08-18 3114
47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533
46 남침례교단 방언관련 선교 정책 변경은 그릇된 일 2015-08-17 2812
45 성령을 조종하는 안수기도는 불가능 2015-08-17 2728
44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375
43 성령운동과 기독교 신앙 2014-01-04 5395
42 성령운동가들의 이상한 인생 패턴 2014-01-02 10665
41 앤아버 반석교회가 CRC 교단을 떠나는 이유 2013-09-29 9208
40 비성경적인 이스라엘 사상, 이제는 분별할 때 2013-08-15 8387
39 "알파코스"-제3의 물결의 거짓부흥2 2013-08-13 17141
38 Promise Keepers(아버지학교)-제 3의 물결의 거짓 부흥운동 2013-07-24 13050
37 방언(3) -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계시를 보조했던 방언 2013-07-22 8048
36 방언(2) - “이방인도 성령받았음을 증거했던 방언” 2013-05-21 6109
35 손기철 장로,「알고싶어요 성령님」에 대한 서평 2013-04-27 49423
34 '신기'를 부르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 2013-03-16 6956
33 방언(1) - "십자가 복음이 완성된 구원계시임을 증거했던 방언" 2013-03-02 7126
32 예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중보기도운동 2013-01-12 6344
31 중보기도 사상은 비성경적 2012-12-10 7563
30 인터콥(최바울)의 변함없는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 2012-11-02 6784
29 요즘 유행하는 이상한 기도 2012-09-08 8001
» 예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가? 2012-08-17 11236
27 방언(4) - 릴리리리 우알랄라! ... 성경의 방언일까? 2012-07-29 29896
26 인터콥(최바울)의 신사도 운동 2012-07-23 11040
25 찬양 속에 흐르는 사탄의 술수 2012-07-14 9028
24 에스더기도운동 측의 반론에 대한 보충설명 2012-06-19 6158
23 에스더기도운동의 신사도운동 2012-05-29 7359
22 배교의 징조 - 동성애자 안수 2012-05-22 6044
21 에스더기도운동의 중보기도 운동 2012-04-30 5852
20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신사도운동 2012-03-04 17762
19 송만석 장로 등의 이스라엘 운동은 그릇된 사상 2012-02-07 7850
18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은 부채도사인가? 2012-01-24 8831
17 이방 종교의 영성과 유사한 손기철 장로의 이적 2012-01-06 7371
16 방언,성령춤도 주는 귀신들 2012-01-03 9336
15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의 정체 2011-12-23 5578
14 신사도운동의 거짓부흥 2011-11-22 6072
13 손기철 장로의 신사도 운동 2011-11-22 6077
12 IHOP의 끝이 보인다! 2011-06-03 7941
11 IHOP의 24/365 중보예배 2010-12-15 10197
10 IHOP의 선지자와 예언 2010-12-02 5809
9 IHOP의 사도적 리더쉽 2010-12-02 8273
8 신사도 운동의 빗나가는 기도 2010-06-05 6640
7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2010-05-12 6557
6 신사도 운동의 쓰러뜨림 2010-02-21 6811
5 신사도 운동의 기름부음 2010-02-10 8941
4 신사도 운동의 Back To Jerusalem 2010-01-30 8198
3 신사도 운동의 예언 2009-12-14 6384
2 신사도운동의 회개 2009-12-03 6239
1 신사도 운동의 금이빨 2009-11-24 10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