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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쉽 시리즈 6: "연개소문"

조회 수 5957 추천 수 151 2010.12.10 11:28:37
<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font color="blue"; 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height:150%">한글학교 소식지에 싣도록 요청받고 쓴 글입니다. 이점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font></p><P align="justify" style="width:620px"><font style="font-family:굴림;font-size:10.5pt;line- height:150%">    나는 역사의 영웅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고, 그리고 주어진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운 모험이고 또 처음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유명한 인물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많은 교훈이 있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과는 다르지만, 그들의 발자취는 내가 어찌 살아야 의미를 남기는 인생을 살다 갈 것인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해 준다. 그래서 역사의 인물들의 생애를 살펴보는 일은 언제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구려의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에 대해서 한 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중국이 한심한 동북공정의 작태를 아무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계속하여 진행하는 지금 특히 더 생각하게 하는 우리의 역사의 영웅이다. 북한이 무너지는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는 지금 “북한의 북쪽의 땅의 일부를 내 놓으면!” ... 라며 중국이 미국과 협상을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드는 요즘 더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연개소문이다.

   우리의 영토의 삼면은 바다에 둘러 쌓여있고 위로는 넓게 펼쳐지는 넓은 대륙과 닿아있다. 그래서 언제나 바다에서 올라오는 위협과 대륙에서 내려오는 위협이 끝이지 않았다. 이순신은 23전 23승의 신화를 창조하여 바다를 통해 올라온 적들에게 통곡과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한 바다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동쪽의 바다까지 영토를 넓히고자 대륙의 오만을 시원하게 조롱해버린 북방의 영웅이다.

   역사가들은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황금기가 당나라 때였다고 한다. 당나라의 군대는 당시 세계에서 최고로 강한 군대였고 가장 효율적인 군대였다. 그런데 그들의 군대가 오직 지구상의 어떤 한 나라에서는 가장 전투력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무능하고 힘이 없는 집단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언제나 꼴등하거나, 가장 실력이 없는 집단을 “당나라 군대”라고 놀린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백성들에게 “당나라 군대”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할 자격을 이미 부여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과 문화에는 중국 역사의 흔적이 많다.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는 불과 30여년 만에 다시 무너졌다. 다시 수 많은 영웅들이 각축을 벌이는 혼란이 일어났고 결국 항우와 유방이 중국의 주인 자리를 다투는 싸움으로 압축되었다. 우리가 즐기는 장기는 한나라의 유방과 초나라의 항우의 싸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가 두 번때 통일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도 중간에 한번 다른 성씨에게 정권을 탈취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만 후에 다시 유방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되찾는다. 그래서 역사는 처음 세워진 나라를 전한이라고 하고, 나중에 다시 등장한 나라를 후한이라고 한다.

   후한이 멸망하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삼국지>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역사가 전개되었다. 황건적의 난 등으로 천하가 혼란과 도탄에 빠지자 “쇠락한 한을 재건하여 천하를 태평하게 하자!”라는 깃발을 들고서 수많은 영웅들이 출현하여 각축을 벌였다. 그 중에 유비( 유비를 따랐던 관우, 장비, 조자룡, 공명 ...)도 있었고, 조조도 있었고, 손권도 있었다. 베일 먼저 유비가 죽었다. 그리고 조조의 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듯했지만, 그의 아들 때에 성씨가 다른 사람에게로 그 나라가 넘어가 버렸다. 결국 삼국지의 주인공 세 사람이 다 고생만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훗날의 소설 <삼국지>의 이야기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당시의 나라들의 각축과 경쟁의 역사를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흥망을 반복했는지 몰른다. 서기 581년에 수 나라가 일어나 중국을 세 번째로 다시 통일시켰다. 그런데 또 안타깝게도 약 30년 만에 수나라가 다시 무너지고 혼란이 도랬다. 또 많은 야심을 가진 호걸들이 대결하고 싸우는 혼란이 벌어졌다. 서기 618년에 다시 중국을 네 번째로 통일하면서 등장한 나라가 당나라였다.

   바로 이 당나라를 우리는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나라 시대의 중국인들이 우리 조상들의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의 아픔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당나라 시대의 중국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피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전까지 당당하게 싸워서는 단 한 번도 우리 조상들을 이긴 적이 없었던 그들이 내분을 조장하는 이간책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당나라의 성공은 신라라고 하는 한반도 내부의 협력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고구려는 천하중심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나라였고, 중국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움이 없는 당당한 대국이었다. 광개토대왕 시절 고구려의 힘은 지금의 북경 근처에까지 미쳤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27대 영류제가(서기 618-642) 제위에 오르면서 당나라에게 머리를 숙이는 굴욕외교가 시작되었다. 중국대륙과의 오랜 긴장과 전쟁 때문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고구려 내부에서 언제까지나 더 큰 나라와 싸움을 계속할 수 없으니 대룩을 섬기면서 화친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두된 것이다. 연개소문이 격변을 일으키며 중요인물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영류왕은 당나라의 요구대로 이전 전쟁 때에 붙잡은 포로 1,000명을 보내주고, 중국의 학문을 수입하기 위해 유학생을 파견하고, 중국의 종교인 도교를 수입하여 백성들에게 전했다. 그렇게 중국의 비위를 맞추면 평화가 지속되고 당나라도 겸손한 고구려에게 예의를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나라는 점점 더 교만해졌다. 이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여 대패하여 몰사한 군사들의 시신을 매장한 한 자리에 서 있는 고구려의 전승기념비 경관을 허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고구려의 군사기밀 지도인 “봉역도”를 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는 당나라가 자신의 지방정권들에게나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영류제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당나라의 요구를 모두 따랐다. 당나레게 저하게 머리를 숙이고자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전처럼 당당하게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신하가 바로 연개소문이었다. 영류제는 연개소문을 천리장성 축조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변방으로 보내고자 했다. 이는 왕들이 귀찮은 장수를 따돌리는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임지로 떠나기 위해 연개소문이 왕에게 인사를 드리러 올 때 기습하여 제거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행하게도 이 사실을 연개소문이 다 알아버렸다. 왕에게 개처럼 죽을 것인가? 왕을 제거하고 고구려를 위한 뜻을 펼쳐 볼 것인가? ... 연개소문은 깊이 고민했다.

   그는 과감하고 단호한 지도자였다. 허무하게 죽기 위해 왕의 비수을 기다리고 앉아 있기에는 고구려에 대한 그의 사랑과 충성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오래 전 조상들 때부터 지켜온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에 있는 천손의 나라라는 자존심이 허물어지는 것을 방관하기에는 그의 피가 너무 뜨거웠다. 그는 고구려를 향한 자신의 뜻을 펼치기로 결단했다. 그는 로마의 율리어스 카이사르처럼, 프랑스의 나폴레옹처럼 혁명을 일으켰다. 왕의 정책에 동조하는 대신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왕도 제거해 버렸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왕은 상황을 파악하고 스스로 자결했다고도 한다.

   이 일에 대해서 역사가들을 매우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신채호는 "4천년 역사의 최고의 영웅"이라고 했고, 김부식은 “임금을 시해하고 정권을 포탈한 역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채호는 일제에 맞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몸을 던졌던 행동하는 민족주의 사관을 가진 역사가였고, 김부식은 당나라를 끌여 들어 백제와 고구려 땅을 차지한(통일) 신라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구의 말을 더 들어야 하겠는가?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정치와 군사를 통솔하는 대막리지의 자리에 올랐다. 나라의 기강을 새롭게 하였고 당나라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면서 전쟁에 대비했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에게 함께 반도의 평화를 구축하여 대륙을 도모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춘추라는 신라인은 연개소문의 집에 장기간 머물기까지 했으면서, 끝내 연개소문의 원대한 비젼을 외면하고 신라와 당나라가 밀약을 맺도록 외교를 펼쳤다. 당나라의 황제 앞에서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군사를 파병해 달라고 애걸했다. 그리고 후에는 신랑의 왕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찝찝한 역사가 대한민국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나라는 예상대로 3년 후에 대군을 일으켰다. 이렇게 다시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을 시작되었다.  664년 당나라의 30만 대군이 요동벌판으로 몰려드었다. 연개소문은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고 성을 몇 개씩 내어 주고 뒤로 물러나는 전략을 폈다. 서서히 적의 힘을 빼자는 것이었다. 연개소문과 고구려는 훗날의 이순신이 남해 바다에서 창조한 신화같은 전쟁을 바로 그곳에서 안시성에서 만들어냈다. 고구려가 낳은 위대한 영웅이었던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 더 이상의 자세한 신상에 대한 정보가 전해지지않는 그가 단독으로 그 전쟁을 지휘했는지, 혹시 연개소문도 그곳에 함께 있었는지 ... 자세한 내막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그 당시에 가장 오만했던 나라의 군대를 사정없이 뭉개버린 세계적인 명장들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안시성에서 3개월의 대접전을 펼쳤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모든 힘을 모두 소진해 버린 당나라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패하고 떠날 때에도 당의 황제는 양만춘에게 장수 답게 잘 싸웠다면 비단을 상으로 주는 허풍을 부렸다. 그때 양만춘이 화살 하나를 당의 황제에게 보냈는데, 정확하게 왼쪽 눈에 박혔다. 당의 황제는 두 눈으로 왔으나 애꾸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비극은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었을 뿐이다. 연개소문의 군대로 인해 안전한 퇴로를 잃어버린 당의 군대는 요서지역의 늪지역을 통과해야만 했다. 속도가 느려진 당나라의 군대는 추격하는 연개소문의 군대에 의해 참살당해야 했다. 그리고 더 많은 군사들이 질퍽이는 진흙에 빠저서 허우적거리다 지쳐서 죽었다. 중국의 역사는 이때 살아서 돌아간 짐승이나 사람이 열에 하나 정도였다고 기록했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기록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때 당나라의 황제가 용도성이라는 곳에서 연개소문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했다는 다른 기록이 있다. 그리고 양만춘과 다른 장수가 수만의 기병을 이끌고 당의 수도 장안을 공격하여 입성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가들은 금시초문이라고 한다. 고구려를 침략하여 연개소문에게 죽을 정도로 혼줄이 난 그 황제는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이후 당은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라와 밀약하고서 군대를 보내 백제를 무너뜨렸다. 연개소문이 버티고 있는 고구려는 건재했지만, 북쪽의 당의 군대와 남쪽의 신라의 군대로 인하여 백제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연개소문은 당의 군대에 짖밟히는 백제를 안타까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당나라는 661년 44만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다시 침략했다. 이것이 제 2차 고당전쟁이다. 그러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있는 고구려는 여전히 당나라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나라의 대표장수 방효태가 황해를 건너 사수(청천강)에 상륙하여 진을 치자 연개소문을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격하였다. 방효태와 그의 13명의 아들들이 모두 연개소문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이순신  때문에 남해가 언제나 조선의 바다였던 것처럼, 그 옛날 연개소문이 버티고 있던 땅은 다 고구려의 영토였다. 그로 인해 당나라는 수 차례 절망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고구려를 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눈물을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665년 연개소문이 죽는다. 그 순간 고구려는 이전과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연개소문이 잘못한 일이 있었다. 고구려를 이끌 적임자를 세우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운 것이다. 그의 아들들 중에는 그만한 그릇이 되는 인물이 없었다. 혼란이 시작되었고 먼저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지키던 12개의 성과 군사들을 데리고 신라에 투항해 버렸다. 고구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개소문의 아들들도 서로 싸웠고 장자 연남생이 살고자 당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그리고 기가막히게도 조금 후에 당나라의 군대 장수가 되어 고구려 군대 앞에 나타났다. 고구려는 그렇게 무너졌다. 마지막 영웅 연개소문이 죽을 때 고구려도 함께 죽었던 것이다.

   연개소문은 꼭 필요한 때에 단호하게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중요한 때에 미적거리는 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결단하고서 군대를 루비콘 강을 건너게 했던 것처럼 연개소문도 하는 수 없이 혁명을 일으켰고 성공했다. 그가 그렇게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는 싸움도 하지 않고 당나라의 신하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남의 노예로 살기를 기뻐한 적이 단 일초도 없다.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 일제의 압박을 받았지만, 본토와 미국, 중국, 만주, 러시아, 대만, 심지어 적국인 일본의 심장부에서도 ... 도처에서 광복을 위해 목숨을 내 던진 독립투사들의 의기를 전 선계가 보고 인정했다. 우리보다 수 십 배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일제에 고통당할 때 그들의 최대의 문제는 나서서 싸우려는 백성의 수가 딸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운동의 활동이 그들에게 교과서가 되었고, 우리의 독립군들의 그들의 교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중국은 숨기지 않는다. 이는 연개소문과 같은 피의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민족 속에는 많기 때문이다.  

   영웅은 어려울 때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조국과 가정과 교회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단호히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연개소문과 같은 영웅이다. 우리의 영원한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의 소중한 가족들과 우리의 소중한 교회를 바르게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개소문처럼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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