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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방언은 뭔가요?

조회 수 3196 추천 수 0 2015.08.21 18:38:24

질문>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목사님이 쓰신 칼럼을 보게 되었고 궁금한 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궁금한 것들인데, 한두 가지만 여쭈어 보고 싶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방언은사 부분도 저는 많이 헷갈립니다. 요즘 시대에는 방언도 없는 것인가요? 성령이 주시는 오순절 다락방의 방언 말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찬양과 경배 시간 기도하면서 제 몸이 뜨거워지면서 간절한 회개가 일어난 후 혀가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말로 나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방언이구나!” 했고, 그날 저는 세상이 달라보이고 너무나 기쁜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불같은 성령이 임하신다는 그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것인가 했는데, 제가 그때 받았던 방언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아닌지? 알수있는 방법이 있나요? 이 시대는 방언 은사가 사라진 때인가요?
 

답변>

  
 정이철 목사

방언 문제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은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가 더욱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것은, 이미 거짓 방언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위해 성경 해석까지 각색하게되는 흐름을 타기 때문입니다. 비성경적인 현상이 자신에게서 나타난다는 사실은 곧 귀신의 농간을 받았다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끔찍하게도 회피하고 싶은 본능에 잡히게 됩니다. 그뿐이 아니고, 이후 신앙의 여러 부분이 교묘하게 비틀어지면서 성경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 부분에서 사탄에게 잡히면 그 영향이 여러 곳으로 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 소수에게서 깨닫고 버리는 결단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현대 방언의 정체와 성경의 방언의 의미를 이해하는 문제는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무의미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방언 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면 신앙의 이해와 말씀에 대한 성숙도가 엄청 달라집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죄인들에게 거는 주술이 얼마나 달콤하고 심각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방언 은사에 대한 연구는 바른믿음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치고 통과해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바른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입니다. 방언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일평생 귀신의 주술을 달고 살거나 간접적으로 당하며 살게 됩니다.


저도 방언을 연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귀신의 주술로서의 거짓 방언과 성령의 은사로서의 참 방언이 지금 교회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세하게 연구하지 않고 그런 글을 써서 어떤 신문에 올렸는데, 수만명이 그 글을 보고 좋아하였습니다. 현대의 거짓 방언에 포로된 사람들에게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인정해 주는 격이니, 좋아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나중에 현대 방언의 실상을 알고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 글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지웠습니다. 이후 귀신의 방언주술에 잡힌 사람들의 많은 비판과 욕설을 마주대하면서, 사탄의 주술인 거짓방언의 실상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 문제는 관련된 성경의 말씀 해석, 그리고 방언과 관련된 교회의 역사를 통해 접근하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관련된 모든 성경구절을 첨부하면 좋겠으나, 시간상 그리할 수 없으므로 기억을 좇아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방언과 관련된 말씀 해석


신약성경의 최초의 방언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마가복음 16장에서 하셨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서 ‘새 방언’을 말하는 현상과 놀라운 치유이적 등이 나타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보증수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절은 이후 실제로 제자들이 복음을 전도할 때 ‘새 방언’을 말하는 현상과 다른 특이한 표적들로 인해 복음이 확실하게 증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당시 사람들이 저주스럽게 여겼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큰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방언을 말한다'는 내용은 배우지 않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성경해석의 상식과 다른 모든 것에 맞습니다. 새 방언을 말하는 것을 비롯하여 특이한 치유 이적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하게 믿도록 만드는 수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첫번째 방언 사례에서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갈릴리 지역 밖으로는 전혀 나가보지 않았던 촌 사람들(제자들)이 먼 곳의16개국 언어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는 '새 방언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 불치병이 낫고 죽은 자가 살아가는 사건과 새 방언을 말하는 이적은 거의 비슷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의 전도의 현장에서 함께 일하신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그날 삼 천명이나 되는 유대인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변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방언을 말하는 이적은 이런 것이었고, 이렇게 이해하고 해석하면 아무런 의문 사항이 없고 깔끔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한참 후 사도행전 10장에서도 방언이 또 등장하였습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베드로의 전도를 받았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같이 취급하면서 상종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이방인들을 그리 여기신다고 믿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던 고넬료와 그 가족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주셨다는 사실은 베드로 등이 사도행전 2장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방언 이적이 고넬료 등에게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을 높이고 설명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므로 자연스럽게 인정되었습니다(행 11:15).


이 사건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어 자녀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새로운 신학이 공인되는데 가장 큰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선교운동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사도행전 19장의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에서 또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방언은 이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코 흔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틀어 불과 세 번이었는데, 요즘에는 골목의 개들이 짖는 소리처럼 방언이라는 것들이 흔하니, 이것부터가 성경의 방언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의 방언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이방이들을 하나님이 자녀 삼으시고 성령을 주셨다는 증거로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이 그때 말한 방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었고, 교회설립을 박해하였던 인근의 완악한 유대주의자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었고, 자신들은 버리워졌다는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방언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유대주의자들이 많은 곳에서 더 출현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에디오피아 내시 등에게 성령이 임할 때에는 방언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그 주변에 지켜보는 유대인들이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되는 일입니다


요약하자면, 신약 성경의 방언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1)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친히 후원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복음선포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배우지 않은 남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적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 불치병자가 치유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놀라운 일로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친히 후원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증거로 이해되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효과적인 보충 설명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성경의 방언의 내용은 날씨, 정치, 경제 등에 대한 내용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의 최초의 방언을 들었던 유대인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도록 길을 여셨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방언이 나타나면 반드시 회개가 많았고, 새로 믿는 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3)방언은 예수님을 박대하는 유대인들에게 심판의 경고장과 같았습니다.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고 증거하는 방언이 나오는 것을 보고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믿지 않은 자신들을 버리고 믿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구하사는 이방 나라 바벨론의 군대로 악한 유대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하나님은 이방인을 자녀로 삼으시고 교만한 유대인들을 버리시는 영적인 심판을 단행하셨습니다. 십자가 복음 이후부터는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이 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방 나라의 군대의 창칼에 도륙되는 육신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유대인들에게 임했음을 그들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성경의 방언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채워진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이적이었고, 방언 때문에 실제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구별되지 않는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방언의 의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언제부터 이 방언이 그치게 될 것이라고 명확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없이 하나되는 교회가 탄생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특히 유대인들과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방언으로 그 사실을 확증할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설명하는 성경이 완성되었으므로 방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충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성경의 방언 보기가 더의 불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이 더 방언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는 외국어로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은사가 지금도 있다면 좋은 것이니, 사모하는 것까지도 막지는 말아야 합니다. 저도 늘 성경의 방언을 사모합니다. 


문제는 고린도에서 나타난 이상한 방언입니다. 성경은 고린도에서 참된 방언이 나타났다는 명확한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주의자들의 피박이 많았으며, 유대인 회당의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복음을 믿었다는 기록이 성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성려의 방언도에서도 나타나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고린도에서는 전혀 종류가 다른 이상한 옹알거리는 방언이 나타났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심히 어지러워졌습니다.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이 사람이 듣도록 하나님께서 말하게 하시는 방언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사람의 영혼이나 그 사람 속의 성령이 아무도 알라듣지 못하는 비밀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전혀 성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이상한 방언이어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옹알거리는 변태 방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마귀에서도 나오는 미혹인데, 지금 속이는 신학이 퍼져서 그것을 '은사방언', '대신방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이론입니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고전 14:4)라는 내용을 근거로 들면서 옹알거리는 변태적인 소리가 그 자신의 덕을 세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상한 귀신 방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옹알거리는 변태방언으로 많은 영적인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혀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는 말씀을 근거로 들면서 옹앍리는 변태적인 방언이 당장 자신들의 마음에는 어떤 메시지나 느낌을 주지 않을지라도 영혼은 다 알아듣는 소중한 기도의 언어라고 합니다. 완전히 틀렸습니다. 귀신의 변태방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허튼소리를 하면서 근거없이 우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논리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경의 번역에는 바울의 의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이상한 옹알거리는 소리현상, 사도들이 가르치지 않았던 괴상한 기도의 은사(?)를 이제 사람들이 '은사방언', '대신방언'이라고 부르면서 숭상하고 자랑하고 있으나, 고린도교회에서 나타난 그 변태적인 방언은 사탄에게서 나온 주술이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거짓 사도들, 궤휼의 역군들, 광명의 천사들을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여 가르치게 했다고 심히 책망하였다는 사실입니다(고후 11장 참조). 대체 그 거짓 사도들과 광명의 천사들이 고린도교회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했겠습니까? 바울이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그 변태적인 방언이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이 점에 대해서 잘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바울 사도가 그 거짓 방언을 추방하면서 가르친 말들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경은 옹알거리는 변태방언을 성령의 역사로 인정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면 안되나 집에 가서는 해도 된다고 했다!"라고 바울이 가르쳤다고 우깁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왜 집에서는 해도 되겠습니까? 바울이 그 정도로 엄히 금지한 것을 왜곡하여 "교회에서는 하지 말고 집에서는 해도 된다!"고 우기며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답답하고, 또 실제로는 교회에서 더 큰 소리로 해대고 있으는 예수님이 곡하실 일입니다. 


성경의 방언은 딱 한 종류입니다. 배우지 않은 외국어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요즘 간혹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짧게 구사면서 다른 사람의 이름, 국적, 직업 등을 알아맞추는 귀신들의 여사가 있어서 지금 성경의 방언이 다시 나타난다는 허황된 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마귀의 주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방언의 내용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이해하게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귀의 주술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굉장히 황홀하고, 그때부터는 하나님(?)과 교회(?)에 엄청난 열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다음으로 능력이 있는 영물인 마귀가 주술을 걸기 때문입니다.


방언기도의 은사로 인해 신앙과 인생이 변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체험한 하나님은 마귀가 조작한 거짓된 하나님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 어떤 사도나 제자가 방언으로 기도했다는 언급이나 설명이 단 한 줄도 없는데, 왜 지금 그런 일을 하면서 삶이 변화되는 역사를 하나님이 하시겠습니까? 불교 승려의 강의를 듣고 이혼을 단념하고 자살을 번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러면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일까요? 영들에게는 나름 능력이 많습니다. 마귀에게도 구원과 진리가 아닌 범위에서 크게 역사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방언주술을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미혹하는 마귀의 대표적인 종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저항할 수 없고,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2. 방언과 관련된 역사조망


이제 옹알거리는 비성경적 방언이 어떻게 확산되었고, 오늘 날 교회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대 방언의 역사는 곧 이단의 역사"입니다. 고린도에 나타난 변태적인 방언이 거짓 사도들에 의해서 시작된 비성경적 현상이라고 바울은 직간접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교회사에서 나타나는 방언운동은 몬타누스라는 이단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몬타누스도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어 그 신앙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옹알거리는 방언이 나타났으나 다 변두리의 사이비 운동이었습니다. 아무도 정통신앙의 계승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방언 자체가 논쟁의 깜도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시대 이후 성경의 방언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800년도 중반에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이라는 사람을 통해 방언운동이 살짝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이단 계열로 낙인찍혔고, 정통신앙 계승자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00년대 초에 미국의 이단 찰스 펄햄과 그의 제자 윌리엄 세이모어에 의해 다시 방언 운동이 불붙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선구자들인데, 이들도 완전 이단들이었고 사기꾼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오순절 운동 목회자들 다수가 인정합니다. 이들은 방언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1800년대 말 종말부흥 이단이상에 빠져서 헛된 것을 좇아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말의 대부흥을 믿으면서 사도행전 2장이 다시 교회에서 재현된다는 사이비 사상을 신봉하였고, 오매불망 사도행전 2장의 현상을 추구하다가 속이는 마귀의 주술에 걸려들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모두 자신들에게서 나타나는 방언들이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라고 자신있게 가르쳤고, 선교사가 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외국 여행이 흔하지 않아 외국에 가서 실험하여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그때는 통했습니다. 나중에 이들이 죽은 후 그 방언을 받은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실험해 보니 소리는 외국어 같으나 전혀 실제 외국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다시 이론을 수정하여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어이지만, 고린도교회의 아무도 모르는 하늘의 비밀의 언어인데, 이제는 그것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은사방언', '대신방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서 정말 비밀의 언어가 나타나기라도 한것처럼 오늘 날 더 오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명한 것처럼, 고린도에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현상은 궤휼의 역군들과 광명의 천사들에 의해 퍼진 마귀의 주술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것은 방언운동에 대한 정확한 진실입니다. 현대 방언은 분명히 마귀의 주술입니다. 걸려들면 영적인 바보천지가 되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됩니다. 절대로 그런 마귀의 주술에 걸려서 똑똑한 바보천치가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대천덕 신부 같은 사람이 방언하고 권장했다는 말 등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도 성경과 같을 수 없습니다. 대천적 신부의 조상인 토레이부터 성령에 대해 잘못 가르친 것이 많습니다. 오직 성경을 연구하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을 주시어 마귀의 주술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복된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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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인터넷처럼 하나님께 접속하는 예언 2015-08-17 2768
33 (고)한경직 목사는 성자였나? 배교자였나? 2016-01-25 2713
32 (영상)현대 변태방언과 현대 교회의 신앙이탈 2015-12-04 2708
31 예언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전한 말씀 2015-08-17 2604
30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2016-01-09 2508
29 '전설의 고향'같은 피터 와그너의 '통치신학' 2015-11-22 2387
28 '4차원의 영성'은 다른 종교의 사상 2016-02-18 2341
27 김성로 목사는 예수님의 땅과 하늘의 이중제사 주장 2016-01-12 2255
26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 2016-01-12 2236
25 환상과 스쳐가는 그림이 성령의 역사인가요? 2016-02-09 2147
24 성령이 주시는 믿음이 기독교 신앙의 열쇠 2016-02-24 2140
23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비성경적인 사술 2016-01-25 2128
22 성령은 말씀의 영입니다 2019-03-29 1745
21 그런 뜨거운 체험은 접신인가? 성령세례인가? 2016-09-27 1628
20 칭의를 주신 분은 반드시 성화를 이루신다 2016-10-03 1319
19 방언이란 무엇인고 예배, 기도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인가요? 2017-06-21 957
18 여전히 비성경적인 중보기도를 주장하는 강순영 JAMA 중보기도 대표 2017-06-02 945
17 진리소통 2016-11-13 878
16 낭떠러지 2017-02-04 872
15 뛰어들기 2016-12-03 811
14 조나단 에드워즈 2018-05-27 699
13 넓은 의미의 성례(Sacrament) 2019-05-22 690
12 한결같기 2017-03-18 640
11 누가 이 엄청난 사실을 외쳐 벼랑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할까? 2017-11-11 632
10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 2018-08-04 587
9 "기뻐하라 너히 상이 큼이라" 2019-03-29 563
8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니 2019-03-27 519
7 데모데 에드워즈,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버지 2018-06-26 440
6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마지막 하루 2018-03-30 337
5 철저한 칼빈주의자 에드워즈 2018-12-18 333
4 에드워즈의 할아버지, 리처드 에드워즈 2018-06-02 326
3 오직 택하심과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2018-12-18 285
2 무릎 꿇고 기도하셨나요? 2019-03-24 272
1 영원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2019-03-24 215